특급 족보

[취업 인문학] ③ 한중FTA와 조선의 문호개방 [한국사/인문학/경제칼럼] 조회수 : 7547

(3) 한중FTA와 조선시대 문호개방


이제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해선 ‘인문학’을 공부해야 한다. 2014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삼성 현대차 LG SK 4대그룹 모두 인적성검사에서 역사 등 인문학을 묻는다. 심지어 국민 하나 우리 등 시중은행은 자소서부터 면접까지 모든 과정에 걸쳐 인문역량을 평가하고 있다. 


이젠 영화를 영화로만 봐서는 안 된다. 책꽂이 구석에 ‘짱 박힌’ 국사책도 꺼내야 한다. 전부 인적성 문제고 면접 소재다. 학창시절 누드교과서를 계기로 지금까지도 역사를 ‘아끼고’ 있는 기자가 앞으로 2주간의 시사이슈를 입사 대비용 ‘생각해볼 문제’와 함께 정리한다. 전국의 취업준비생들은 인적성, 면접 대비용으로 쏙쏙 뽑아가길.



지난 11월 10일 한국과 중국간 FTA가 실질 타결됐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 중국인 대상 행사를 펼친 신세계 백화점. 



# 11월10일, 한중FTA 실질적 타결


지난달 10일,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실질적으로 타결됐다. 이번 FTA를 계기로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 중국시장 진출에 대한 의지가 강해진 측면이 있는가 하면 싼 중국산 농산물 개방에 대한 불안감을 가진 농민들을 중심으로 한 일부에서는 격렬한 반대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앞서 산업통산자원부는 구체적인 한중FTA 설명자료를 공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상품의 경우 양국은 품목 수 기준 90% 이상을 개방하기로 합의했는데 중국은 품목 수 91%, 수입액 85%(1371억 달러)를, 한국은 품목 수 92%, 수입액 91%(736억 달러)를 각각 20년 내에 관세철폐하기로 했다.


즉시 관세철폐의 경우 수입액 기준으로 중국은 44%, 한국은 52%로 한국이 다소 컸다. 자동차는 양국 모두 양허제외 됐으며 LCD(액정표시장치)의 경우 10년 철폐로 합의했다.  


농수산물 자유화율은 품목 수 기준 70%, 수입액 기준 40%로 FTA 역대 최저수준으로 합의됐다. 쌀은 한·중 FTA에서 완전 제외하기로 합의됐다. 고추와 마늘·양파 등 국내 주요 양념채소류와 쇠고기·돼지고기·사과·배 등 총 610여개 품목도 양허제외됐다.


문화서비스 관련 협약도 체결했다. 양국 공동제작 영화 및 방송 프로그램에 국내산에 준하는 혜택을 부여하기로 했다. 서비스 분야의 경우, FTA 발효 후 2년 내 상호 개방하지 않기로 합의한 분야를 제외하고 모두 자유화하는 방식인 ‘네거티브 방식’의 후속 자유화협상을 개시하기로 했다. 중국의 우리 기업에 대한 차별법집행 방지도 합의했다. 


# 조선, 강화도조약 체결 후 본격 문호 개방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문호개방은 일본과의 강화도조약 체결(1876년) 직후인 1870년대부터 이뤄졌다. 이후 조선은 1883년 영국 및 독일과도 각각 조영수호통상조약과 조독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다. 


당시의 문호개방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크게는 반대파와 찬성파가 있었다. 이항로, 최익현 등의 이른바 위정척사파들은 반대의사를 펼치고 성리학의 화이론을 바탕으로 조선의 봉건적 질서를 지키고 천주교와 서양문화를 배척하자고 주장했다. 이러한 반대세력은 이후 1890년대 유인석, 이소응 주체 하의 항일의병운동으로 이어졌다.


반대파의 저항에도 문호 개방은 외세의 압력에 의해 급속도로 이뤄졌다. 국내에서도 개방을 찬성하는 개화파가 있었다. 이 개화파는 개화 방식에 따라 다시 온건 개화파와 급진 개화파 두 가지로 나뉘었다. 


김홍집, 김윤식 등을 주체로 한 온건 개화파는 동도서기론*에 바탕을 두고 점진적 개혁을 추구한 반면 김옥균, 박영효 등의 급진 개화파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본받아 정치 및 사회제도까지 개혁해 입헌군주제를 수립하자고 주장했다. 


* 동도서기론 : 전통적인 유교적 가치관과 질서는 유지하되 서양의 기술만 수용하는 방식으로 국가발전을 이루자는 이론


# 입사대비용) 역사를 통해 본 한중FTA의 양면


한 나라의 문을 여는 FTA는 분명 나라 전체에 큰 영향을 가져다 줄 수 있다. 우리는 과거의 사례를 통해 잘못된 전철을 밟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문호개방으로 조선시대에는 의식주 전반에 걸쳐 새로운 문명이 들어왔다. 전신, 전화, 철도, 전차 등이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한 것도 이맘때다. 한중FTA 역시 이번 체결로 중국 현지 제품을 싼값에 들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조선의 이 같은 외교방침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이는 다시 말해 해당 원자재를 제작하던 국내산 기업들이 가격경쟁력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쯤에서 1876년 일본과 맺었던 ‘조일무역규칙’을 참고해볼 만하다. 개항 초기 일본은 유럽산 공산품을 들여와 비싸게 팔고 조선에서 쌀, 금 등을 가져간 데 이어 아예 무관세 조약인 ‘조일무역규칙’을 강제로 제정했다. 


이 규칙을 통해 일본은 자국의 수출입품에 무관세를 적용했고 여기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조선 상인에게 돌아갔다. 조일무역규칙이 무관세에 일방적으로 맺어진 불평등 조약이라는 점에서 차이는 있지만 당시 상인이 입었던 손해는 다시금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반대로 FTA 결과, 한국과 중국 간의 인적, 물적 교류가 더욱 활발해지면서 국내 화물이나 항공 산업은 활기를 띌 전망이다. 우리나라 화장품의 최대 매출처가 중국인만큼 국내산 화장품 수출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역시 문호 개방 후 새로운 문물들이 들어와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앞서 거론한 생활용품 외에도 천주교 등 서양 종교 및 건축물도 등장해 국민들의 시각을 넓혀줬다. 


이도희 기자(tuxi0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