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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동 골목길을 바꾼 ‘따뜻한’ 디자인...‘000간’ 송민우 팀장 [꼴Q열전] 조회수 : 20157

[꼴Q열전] 

창신동 골목길을 바꾼 ‘따뜻한’ 디자인

'000간' 송민우 소셜 디자이너


동대문역에서 낙산공원으로 향하는 가파른 언덕길. 이곳은 900여개의 봉제공장이 모여 있는 창신동 봉제거리다. 짐을 가득 실은 오토바이가 하루 수백 대씩 오가고, 종일 미싱 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 이 골목 한 편에는 젊은 청년들이 모여 알뜰살뜰한 ‘작당모의’를 하고 있다는데…. 이름부터 별난 000간(공공공간)의 문을 두드렸다. 


△ 000간 제로 웨이스트 룩북


‘공감’, ‘공유’, ‘공생’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000간’은 지역 재생을 위한 커뮤니티 디자인을 실천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자체 브랜드 제품을 제작해 판매하는 동시에 지역 사회를 위한 공공디자인 프로젝트도 다양하게 진행하고 있다. 


000간에서 만드는 리빙, 패션 브랜드 제품은 ‘낭비 없는 디자인’을 모토로 한다. 000간이 위치한 창신동 봉제골목은 동네의 특성상 매일 쏟아져 나오는 자투리천 쓰레기가 어마어마한데, 이것을 모아 방석을 만드는 것이 ‘낭비 없는 디자인’의 좋은 예다. 여기서 한 발 나아가 아예 자투리 천이 나오지 않도록 패턴을 떠 옷을 만드는 ‘제로 웨이스트 디자인’도 선보여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지역 사회와 함께하는 ‘공공 디자인’의 핵심에는 사람이 있다. 외부인의 시선에서 그저 보기 좋은 디자인이 아니라 진짜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 이들의 목표인 것. 좁은 골목의 이동성을 고려해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 깃발 형태의 간판을 만들거나, 가파른 오르막을 오가는 어르신을 배려해 헌 가구를 업사이클링한 평상을 제작하는 등 이들의 디자인에는 모두 따뜻한 배려가 숨어있다. 


△ 000간의 디자인 팀장을 맡고 있는 송민우 디자이너


디자이너의 사회적 책임이 뭐기에, 다시 또 신입사원으로 리턴

000간은 각기 다른 전문성을 가진 멤버 7~8명(프로젝트에 따라 인원이 달라짐)이 이끌어 나가고 있다. 경영을 담당하는 홍성재, 신윤예 공동대표 외 패션, 그래픽, 설치미술 등을 담당하는 디자이너들이 협업하고 있는 형태인 것. 디자인 팀장을 맡고 있는 송민우(29) 그래픽 디자이너는 000간의 다양한 공공디자인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상명대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한 그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인기 뮤지션들의 공연 포스터 디자인이나 앨범 재킷 디자인 등을 담당했다. 실력을 인정받아 BX(브랜드 경험) 디자인 회사에 취업한 후에는 국내 굴지의 유명 브랜드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착실히 경력을 쌓았다. 나름 실력 있는 디자이너로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하던 때, 송 씨는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사회적기업 000간으로 자리를 옮겼다. 월급은 줄어들었고, 다시 또 신입사원이라는 신분으로 돌아가야 하는 무리수를 두면서 말이다.     


“디자이너라면 한 번씩 ‘디자이너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것을 생각하게 된다고 해요. 내가 하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생각하게 되는 거죠. 저도 그런 고민에 빠져있던 때였는데 우연히 000간의 활동을 알게 됐죠. 굉장히 흥미롭게 느껴졌고 가능성도 보였어요. 큰 조직에서는 각자가 작은 역할을 나눠 담당해야하지만, 이곳에서는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 주도적으로 프로젝트를 이끌어 볼 수 있다는 점도 좋았고요.” 


△ 창신동 봉제골목의 간판 설치 모습. 

깃발 형태의 버전 1(왼쪽 상단)에서 재봉틀 모양을 더한 버전 2(오른쪽 상단)로 업그레이드 됐다. 


용기 내어 새 출발한 그를 기다리고 있는 일은 창신동 봉제골목의 간판 만들기였다. 봉제골목은 900여개의 봉제공장이 모여 있지만 어느 곳 하나 간판이 달려있는 곳이 없는 독특한 곳이다. 송 씨와 000간 멤버들은 화분에 깃발을 꽂은 형태의 개성 있는 간판을 완성했다. 봉제공장이 임대 운영 중이고, 좁은 골목에 오토바이들이 수시로 오가기 때문에 큰 간판을 설치할 수 없다는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것이다. 


깃발 간판은 자리를 차지하지 않아 이동에 불편함이 없고, 공장을 옮기게 되면 깃발이 꽂힌 화분만 들고 이동하면 되니 여러모로 편리했다. 송 씨는 조금 더 아이디어를 보태 새로운 버전의 간판도 기획했다. 봉제라는 아이덴티티를 살려 간판을 재봉틀 모양으로 만들고 사장님이 원하는 문구도 넣어 개성을 더했다.  


△ 재봉틀 모양의 간판을 들고 포즈를 취하는 송민우 디자이너 


공생의 디자인 위해서는 어르신들과 수다 타임이 필수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서울 도봉구 신창시장 공공디자인 프로젝트도 송 씨가 흥미롭게 작업한 결과물 중 하나다. 기존에는 ‘전통시장 활성화’라고 하면 천장을 뜯어 고치고, 거리를 정비하는 등의 하드웨어 바꾸기에 치중했는데, 000간은 매대를 보기 좋게 바꾸고 상점과 고객과의 관계를 바꾸는데 집중했다. 송 씨는 이를 위해 매일같이 직접 시장에 나가 상인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게 하나하나의 스토리에 집중했다. 


그렇게 나온 결과물은 성공적이었다. 젊은 청년 3명이 운영하는 정육점은 ‘놈놈놈 푸줏간’이라 이름 짓고 사장님이 취미로 모르고 있는 피규어를 함께 전시해 눈길을 끌었다. 이름이 없어 찾기 힘들었던 포장마차에는 ‘수다집’이라는 정겨운 이름을 선물했고, 언제 어디서 왔는지 몰라 구입이 망설여졌던 수산물 가게에는 ‘새벽 직송’, ‘제철 보증’, ‘명품 추천’ 등의 수산 마크를 더해 상품의 신뢰도를 높였다. 


△ 신창시장 활성화 프로젝트 결과물. 

'새벽 직송', '제철 보증' 등의 푯말을 달아 고객이 신선도를 체크할 수 있도록 했다.


“시장 활성화 프로젝트를 하면서 상인 어르신을 많이 만났어요. 처음에는 의심의 눈초리로 견제를 하던 분들도 계속 찾아가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정답게 대해주셨죠. 하지만 남모를 마음 고생도 있었어요. 상인들이 ‘옆집은 더 좋은 것 해주는 것 아니냐’며 시기 질투를 하기도 했거든요. 한 도너츠 가게에는 네온간판을 해드렸는데 비싸 보이다보니 주변 분들이 경계를 하셨어요. 결국 새벽에 몰래 시장에 가서 설치하고 왔답니다.(웃음)” 


공공디자인을 담당하다보니 송 씨는 유독 어르신들과 대면할 일이 많다. 어린 나이에 이리저리뛰며 애쓰는 그의 모습을 대견하게 보는 분들도 많지만 어르신들에게 디자인, 브랜드에 대해 이해시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고. 그는 서울노원지역자활센터에서 운영하는 ‘반짇고리’라는 리빙샵을 리브랜딩하던 때를 떠올렸다. 


반짇고리는 자활센터에서 봉제교육을 받은 주민들이 직접 봉제 제품을 제작하고 판매하는 브랜드다. 송 씨는 어떻게 하면 브랜딩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일하고 있는 지역 주민들이 브랜드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는 주민들과 모여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커뮤니티 워크숍을 진행하며 스토리를 모았고,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슬로건 등에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었다. 


△ 서울노원지역자활센터에서 운영하는 ‘반짇고리’ 리빙샵 리브랜딩 프로젝트


“어머니, 아버지 연세의 어르신이 많다보니 ‘브랜드’라는 것이 무엇인지 전달하는 것부터 어려웠어요. 서체 차별화 전략에 대해 설명할 때도 ‘옆에 고기집도, 옷가게도, 슈퍼 간판도 모두 똑같은 글씨체이지 않냐. 손님들 눈에 띄려면 글씨체도 다르게 해야 한다’며 쉽게 설명하려고 애썼죠. 엄마에게 설명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접근했고, 다행이 이런 노력을 알아주셨는지 어르신분들이 많이 도와주셨죠. 나중에 완성된 결과물을 보시고는 굉장히 좋아하셨고요.” 


△ 서울의 주요 명소를 패치에 담은 '콜렉트 서울 프로젝트' 


송 씨는 요즘 ‘콜렉트 서울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다. 서울의 명소를 담아내 자수 패치에 담아내 패치를 모으며 자신만의 즐거운 서울 여행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젝트다. 콜렉트 서울 프로젝트는 지난해 서울 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 은상을 수상하며 서울시의 공식 관광품으로 선정됐다. SNS에서도 반응이 좋아 앞으로는 서울 외 부산, 제주도, 파리 등으로도 확장할  계획이다.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분야의 일을 경험하고 있어요. 하나에 매몰되는 것보다 여러 가지를 접하는 것을 좋아하는 저에게는 딱 맞는 곳이죠. 수습으로 시작했지만 입사 1년 만에 팀장으로 초고속 승진도 했고요. 물론 저희는 수평적인 문화라 직급이 큰 의미는 없지만요.(웃음) 국내에는 아직 소셜 디자인이라는 분야가 생소하지만 000간과 함께 소셜 디자인 분야에 깃발을 꽂는 역할을 해나갔으면 좋겠어요.” 


박해나 기자 phn0905@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 송민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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