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통연구소

‘야생형 마케터’ 조경민, 디제잉하며 세계 여행하는 그날까지 [꼴Q열전] 조회수 : 14218

조경민(30) 씨는 한마디로 명명할 수 없는 복잡한 남자다. 디제잉 장비 회사의 마케터와 여행작가라는 두 개의 명함을 갖고 있으며, 동시에 ‘정말 폰카라니까요’라는 인기 페이스북 페이지의 운영자로 활동 중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서울시 택시기사 자격증, 다이버 마스터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으며 요즘에는 커피에 푹 빠져있다고 한다.   



조경민 씨는 학창시절 공부를 멀리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성적이 꼴찌에서 두 번째(꼴찌는 야구부 친구에게 양보했다)였다고 하니, 얼마나 멀고 먼 사이였는지 대강 가늠이 된다. 그럼에도 그는 설레는 마음으로 대학생이 될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푸른 잔디가 깔린 외국 대학의 캠퍼스에서 영문 마케팅 서적을 보고 있는 스마트가이 조경민의 모습을.  


“졸업 후 마케팅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중학교 때 싸이월드에서 천문 동호회를 운영해 전체 클럽 TOP3까지 한 적이 있거든요. 생각해보니 그런 커뮤니티도 마케팅 활동의 일부인 것 같더라고요. 저는 그런 것을 좋아하고 잘한다고 생각했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마케팅을 배워본다면 얼마나 멋질까 생각했어요. 어차피 국내 대학 중에는 제 성적으로 갈 수 있는 곳도 없었고요. 인터넷으로 해외 대학을 하나하나 알아보면서 갈 수 있는 곳을 찾아봤죠.” 


강간범 수준의 영어실력으로 카자흐스탄 대학에 가다  

오랜 검색 끝에 그가 찾아낸 곳은 카자흐스탄의 키멥(KIMEP)대학교. 입학 성적이 낮은 편이고, 국제 교류가 많아 그가 원하던 ‘세계를 돌며 마케팅 배우기’에 제격인 곳이었다. 조 씨는 무작정 비행기를 타고 카자흐스탄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쉽지 않은 유학생활이었다. 영어를 얼마나 못했는지, 입학시험에서 3번이나 떨어지고 4번째 도전에서 겨우 합격할 수 있었다.

 

“영어를 정말 못했어요. 한 번은 장래희망을 써서 내는 수업이 있었는데 당시 힙합에 푹 빠져있을 때라 랩퍼를 적어냈죠. 그런데 교수님이 저를 따로 부르시더라고요. 안타까운 눈빛으로 한참을 상담해주셨어요. 알고 보니 제가 장래희망을 잘못 적어냈더라고요. 랩퍼(rapper)가 아니라 강간범(raper)이라고 쓴 거죠. 정말 제 영어실력은 강간범 수준이었어요.”


여행을 즐기는 자유로운 영혼, 조경민


영어의 벽은 높았지만 포기는 없었다. 세계를 돌며 마케팅을 배우기 위해서는 교환학생으로 선발돼야했고, 그러려면 성적이 좋아야했기 때문이다. 조씨는 1년 동안 수업이 없는 날도 담당 교수님의 수업을 따라 들어가 예습복습하며 학점관리를 했고 결국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교환학생을 가는 기회를 잡았다. 


꿈에 그리던 유럽에 입성했다는 기쁨은 잠시, 네덜란드의 높은 물가는 그의 즐거운 유학 생활을 방해했다. 숙소의 침대에 누워 어떻게 돈을 벌까 고민하던 그는 호스텔 사업을 떠올렸다. 조 씨는 친구들이 안 쓰는 매트리스 3개를 얻어와 묵고 있던 숙소에 놓고는 근처 호텔 로비에서 챙겨온 무료 팜플릿을 비치해두는 것으로 호스텔을 완성했다. 여기에 현지인 친구 중 작은 보트를 갖고 있는 친구를 섭외해 호스텔 투숙객이 보트를 타고 운하 투어를 할 수 있도록 연결도 해줬다. 조 씨의 호스텔은 한국인 여행객 사이에서 순식간에 입소문이 났고, 문을 연지 열흘 후부터는 예약이 매일 가득 찰 정도로 성황리에 운영됐다. 


암스테르담 최고 인기호스텔이 된 밤하늘 호스텔의 현지인 보트


“호스텔을 운영하면서 한국의 대학생을 많이 만났어요. 그들의 얘기를 듣다보니 한국으로 가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고려대학교에 방문학생을 신청했죠.”


한국에서도 그의 사업 DNA는 꿈틀거렸다. 유럽에 비해 교환학생 네트워킹 서비스가 부족한 것을 보고 조 씨는 네트워크 플랫폼 사업을 기획했다. 창업을 구상하던 중에 우연히 지하철 옆자리에 한국관광공사 뱃지를 단 사람을 보고는 그 자리에서 사업 관련 PT를 진행해 사업 미팅 기회도 얻었다. 뭔가 될 것 같던 그 때, 갑자기 그를 찾는 급한 연락이 왔다. 카자흐스탄의 본교였다. 


“학교에서는 더 이상 휴학은 불가하다며, 다음 학기에 돌아오지 않으면 학번이 없어진다고 하더라고요. 아쉽지만 학교로 돌아가 준비를 더 하고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했죠. 돌아가서도 싱가폴로 다시 교환학생도 가고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덕분에 졸업할 때는 상위 10명 안에 들어 개교 이래 외국인 최초(CIS국가 제외)의 우등 졸업을 할 수 있었죠.”


개발자는 떠나고 청춘페스티벌 무대에 올랐다

우등 졸업생이 되자 대기업 스카웃 제의가 이어졌지만, 조씨는 모든 것을 마다하고 세계 여행을 떠났다. 대기업에 가서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세계를 돌며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보는 것이 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는 중동 국가를 돌고 이집트로 날아가 두 달 반 동안 스쿠버다이빙을 즐겼다.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아르메니아 등 코카서스 지방도 여행하고 지난 2015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 현재 서울시 택시기사로 정식 등록 중!


귀국 후에는 마케터로서의 내공 쌓기에 돌입했다. 제일 먼저 한 일은 택시기사자격증을 취득하는 것. 그는 “마케팅 조사론에서 ‘상대를 편안하게 해 솔직한 답변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배웠다”라며 “택시만큼 좋은 환경은 없다고 생각해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택시 영업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마케팅에 필요할 경우에는 언제든 출동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조금 미뤄둔 창업 준비도 다시 시작했다. 실력 있는 개발자를 찾는 것이 급선무였는데, 운 좋게도 싱가폴의 개발자는 만날 수 있게 됐다. 


“싱가폴의 한 개발자가 ‘무료로 웹사이트를 만들어준다’고 공지를 했어요. 자신이 유명 IT컨설팅 회사에 입사 준비를 하고 있는데, 포트폴리오가 필요해 좋은 아이템이 있다면 무료로 도와주겠다는 것이었죠. 많은 사람이 지원했는데 제가 뽑힌 거예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바로 싱가폴로 날아갔어요.”


개발자가 작업을 하는 동안 조씨는 마케팅 방안을 준비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알아보던 중 한국의 ‘청춘페스티벌’을 알게 됐고 타깃이 자신의 사업 아이템과 일치한다고 느꼈다. 마침 청춘페스티벌에서 일반인 연사를 뽑는 오디션을 진행해 지원서도 제출했다. 페스티벌의 연사로 뽑혀 자신의 서비스를 멋지게 소개할 계획이었다. 


△ 청중 3만명이 모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청춘페스티벌 무대에 오른 조경민 씨


이번에는 정말 뭔가 될 것 같은 기분에 설레던 그때, 또 다시 그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함께 하던 개발자가 지원하려던 회사에 포트폴리오도 없이 스카우트가 된 것이다. 갑자기 개발자는 떠나갔고, 그는 덩그러니 혼자 남겨졌다. 웃프게도 지원했던 연사 오디션에서는 덜컥 1등까지 하고 말았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청춘페스티벌 무대에 오른 그는 창업하려던 서비스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못하고, 대학, 여행 이야기만 들려주고 내려왔다고 한다.   


‘정폰’ 페이지부터 커피, 디제잉까지! 세상은 넓고 신나는 일은 더 많다 

창업은 물 건너 갔으니 회사에 취직해 마케팅 업무를 시작했다. 여행을 다닐 때는 하루에 수십장씩 사진을 찍곤 했는데, 일에 치여 살다보니 몇 달 동안 한 장의 사진도 찍지 않았다. ‘이건 아니다’싶은 마음에 하루에 한 장이라도 사진을 찍기로 결심했고, 누구나 작가가 되고, 일상은 여행이 된다는 슬로건의 ‘정말 폰카라니까요’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도 만들었다. 페이지에는 누구나 폰카로 찍은 멋진 사진과 영상을 올릴 수 있도록 했고, 페이지는 현재 1만 3천명 이상이 팔로워할 정도로 인기 페이지로 성장했다. 


△ '정말 폰카라니까요' 페북에 업로드한 조경민 씨의 사진. 네덜란드 여행 중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이다.


하지만 그의 헛헛한 마음을 달래주기엔 역부족이었다. 제3의 사춘기라는 스물아홉이라는 나이는 그의 마음을 더욱 싱숭생숭하게 만들었다. 이십대의 마지막에 서있는 그의 모습은 상상과는 너무 달랐다. 일상에 지쳐있는 회사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조씨는 용기를 내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하지만 부모님께는 차마 백수가 됐다는 말을 하지 못해, 매일 거짓 출퇴근을 반복했다. IMF시절 실직자 아버님들처럼 매일 아침 출근하는 척 하고 집을 나와 동네 카페를 전전했다. 그렇게 카페에 출근 도장을 찍다보니 자연스레 커피에 관심을 갖게 됐다. 


“지난 해에는 완전 커피에 빠져 살았어요. 태국의 커피농장으로 여행을 다녀오고, ‘월드 커피 리더스 포럼’에도 참석해 월드바리스타챔피언 3명을 만났죠. 바리스타 자격증 필기시험에도 합격해 지금은 실기 시험을 준비 중이에요.” 


△ 그가 푹 빠져있는 디제잉 장비와 직접 찍은 폰카 사진


또 하나 그가 몰두하고 있는 것은 ‘디제잉’. 다시금 떠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해진 그는 ‘어떻게 하면 돈을 벌며 여행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고, 외국 유명 DJ들을 떠올렸다. 세계를 돌며 디제잉을 하는 DJ는 돈을 벌며 여행하는 최고의 직업이었던 것. 회사 생활이라면 질색하던 조씨가 최근 디제잉 장비 회사에 입사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회사에서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고 있지만 틈틈이 디제잉도 배우고 있어요. 언젠가는 디제잉을 하며 전 세계의 커피농장을 여행할 수 있겠죠? 많은 사람들이 ‘넌 어떻게 그런 좋은 기회가 많냐’고 말하는데, 제가 특별한건 아니에요. 기회라는 방이 굉장히 많은데, 저는 겁내지 않고 그 문을 다 열어봤을 뿐이죠. 가끔은 잘못 열어 후회하기도 했지만 많이 열면 그만큼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어요. 좀 더 많이 도전하면서 자신의 삶을 즐겁게 만들 요소를 찾았으면 좋겠어요.” 


글 박해나 기자 phn0905@hankyung.com

사진 김기남 기자 

장소 제공 크리에이티브커피 

나의 생각 Good Bad

기사에 대한 의견 (0개)

의견쓰기
댓글 : 0 건
이전글장인은 재료를 탓하지 않는다...‘200원짜리 모나미 펜’ 그림 장인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