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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Q열전] 그녀는 왜 그렇게 사막을 뛰어다닐까? 오지마라토너 양유진 [꼴Q열전] 조회수 : 11828

[꼴Q열전] 

그녀는 왜 그렇게 사막을 뛰어다닐까 

오지마라토너 양유진 




내가 이러려고 다리가 있나 싶을 정도로, 하고 싶지 않은 운동 몇 가지. 

하나, 발톱이 다 빠지도록 뛰고 또 뛰어야하는 마라톤. 

둘, 숨이 턱 막히는 더위에 15kg 배낭을 메고 달리는 마라톤. 

셋, 가만히 서있기도 힘든 해발고도 3200m에서 질주하는 마라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굳이 이 힘든 운동을 돈까지 내며 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양유진(28·경희대 체육학 4) 씨는 ‘백만불짜리 다리’를 가진 오지마라토너다. 잘 닦인 길을 몇 십 킬로미터씩 달리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그녀는 굳이 사막이며 들판이며 힘든 길만 골라 달리고 또 달린다. 


“대학교 3학년 때 처음 마라톤에 도전하게 됐어요. 대학 졸업 전에 스스로의 한계에 도전해보고 싶었는데 마라톤이 제격이겠다 싶었죠. 한 번도 해본 적 없었고 다들 너무 힘든 운동이라고 하니 도전의식도 생기더라고요. 국내 마라톤부터 시작해 더 힘든 것, 더 어려운 것을 찾다보니 오지 마라톤까지 도전하게 됐네요.” 



체육교사도 정규직 제안도 모두 안녕, 난 그냥 달리련다! 

어릴 적부터 운동신경이 뛰어났던 그녀는 남자아이들 못지않은 실력을 뽐내며 다양한 운동을 섭렵해왔다. 한때 태권도 선수로도 활약했지만 공무원이신 부모님은 딸이 좀 더 안정적인 삶을 살길 바라셨고, ‘체육교사’가 되면 어떻겠느냐 제안하셨다. 착한 아이였던 그녀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장래희망을 체육교사로 고쳐 쓴 뒤 경희대 체육학과에 입학해 교직 과목을 이수했다. 하지만 기분은 왠지 모르게 개운치 않았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불편하고 갑갑했다. ‘가르치는 일은 나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만 늘어갈 뿐이었다. 


양유진 씨는 용기 내 새로운 세계로 도전해보기로 했다. 체육 교사보다 더 멋있어 보이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대기업에 다니는 신여성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래, 드라마에서 나오는 멋진 커리어우먼처럼 성공하리라! 양유진 씨는 경영학을 부전공하고 영어 공부, 자격증 취득 등 스펙 쌓기에 몰두하며 입사 준비를 시작했다. 운 좋게 한 기업의 인턴으로 일할 기회도 얻었다. 커리어우먼으로서의 새 삶에 한 발 가까워지는 듯 했다.



“6개월 동안 인턴으로 일하며 매일 했던 생각은 ‘이렇게 30년을 살면 난 얼마나 불행할까’였어요. 회사 생활은 정말 재미가 없더라고요. 활동적인 제 성향과 너무 안 맞았죠. 아침 8시 30분에 회의하고, 불편한 정장을 입어야 하고, 선임이 퇴근할 때까지는 퇴근도 못하고, 피곤하고 힘들어도 회식에 참여해야하고요. 체육학과라고 술은 또 얼마나 많이 주시 던지요. 체육대회 때는 남자들만 나가는 축구 대회에도 나갔어요. 볼링 대회에서 1등 했을 때 가장 칭찬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웃음)” 


6개월의 인턴 생활 종료 후 정규직 제의도 받았지만 그녀는 미련 없이 돌아섰다. 다시 학교로 돌아온 양유진 씨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하나’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했다. 회사원으로 사는 것도 싫고 체육교사가 되는 것도 싫었다. 그녀는 답답한 마음에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1년 휴학계를 던졌다. 그때 그녀가 결정한 것이 나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도전, ‘마라톤’이었다. 


더 어려운 코스 없어? 사막 정도는 달려줘야지  

3km코스부터 연습하며 실력을 갈고 닦은 그녀는 6개월 만에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장을 던졌다. 운동신경이야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고, 6개월이나 연습했으니 이정도쯤이야 가뿐히 뛰고 오리라 생각하고 운동화 끈을 조였다. 


“경기 출전하기 전에 주변 사람들이 만 원짜리 한 장을 꼭 챙겨가라고 하더라고요. 돌아올 때 탈 택시비를 준비하라면서요. 코웃음치며 교통카드만 하나 가져갔어요. 경기 끝나고 저의 어리석은 행동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요.” 



42.195km의 풀코스를 너무 만만히 본 그녀였다. 25km를 넘어서자 고통이 극심해졌다. 물집이 터져 운동화는 피고름으로 젖었고, 발이 너무 아파 신발조차 벗을 수가 없었다. 겨우 몸을 끌고 완주를 했는데 택시비가 없어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아 치료를 했지만 발톱은 두 개나 빠졌다. 마라톤을 만만히 본 대가는 너무나 가혹했다. 


마라톤이라면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의 혹독한 대가였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너 한 번 내가 이겨보겠다’며 독기를 품고 계속해서 국내 마라톤 대회를 섭렵해나갔다. 실력은 점점 늘어갔고, 어느덧 국내 대회가 시시해질 정도가 됐다. 그녀는 해외 대회에도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더 힘들고 더 어려운 코스를 외치던 그녀의 눈에 악명 높은 오지마라톤이 들어왔다. 그 중에서도 힘들기로 소문난 ‘사막 마라톤’은 양유진 씨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돈 주고 뛰라고 해도 내키지 않는 사막마라톤이건만, 준비 비용이 어마어마하다. 기본적인 참가비가 450만 원 정도가 필요하고, 항공료와 장비 구입비 등까지 하면 최소 700~800만 원은 마련해야한다. 가진 건 튼튼한 두 다리뿐인 그녀에게 800만원이 있을 리 없었다. 


양유진 씨는 대기업 후원이라도 받아보기 위해 기획서를 돌렸지만 모두가 읽씹으로 일관했다. 대책이 서지 않던 그때, 기적처럼 그녀에게 찾아온 이벤트 소식. 사막을 다녀온 한 여행자의 책을 가장 많이 홍보한 사람을 뽑아 출판사에서 사하라 마라톤 출전비를 지원한다는 내용이었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양유진 씨는 2주 동안 온갖 인맥을 총 동원해 책 홍보활동을 했고 1등을 거머쥐며 마라톤 출전비를 모을 수 있었다. 


“출판사에서 600만원의 비용을 지원받았지만 장비를 살 돈은 부족했어요. 오지 마라톤을 위해서는 장비 50여 가지가 필요하거든요. 고민하다가 아웃도어 회사의 협찬을 노렸죠. 한 아웃도어 회사에서 지원하는 마라톤 국제대회에 참가해 입에 거품 물고 달려 3등을 했어요. 시상식에서 회사 관계자들을 만나 ‘사막 마라톤 참가를 위한 후원을 받고 싶다. 설득할 시간을 조금만 달라’고 부탁했고, 결국 1년간의 마라톤 참가 물품을 지원받을 수 있었어요.”


하늘의 별을 보라고? 눈 앞에 별이 보인다 

드디어 사하라 사막을 달릴 준비가 됐다. 장장 18시간의 비행(가장 싼 항공권을 사느라 경유를 여러 번 했다)을 마치고 아프리카에 도착했다. 사하라 사막 마라톤은 세계 4대 사막 레이스 중 하나로 침낭, 식량, 장비 등이 담긴 15kg가량의 배낭을 메고 5박 7일을 달려야하는 극한의 마라톤이다. 45km, 50km 등 제한시간 내 달려야하는 코스의 길이가 정해져있고, 이를 지키지 못하면 실격 처리가 된다. 


“그렇게 힘들 줄 몰랐어요.(웃음) 5일차에는 밤새 80km를 달리는 롱데이 코스가 있거든요. 무릎과 발목을 다쳐 4시간마다 진통제를 먹으며 달렸죠. 약 때문에 몽롱하고 헛것이 보이기도 했어요. 정말 너무 힘든데 옆에 가는 외국인이 ‘하늘을 봐. 여기 별이 너무 예쁘다’고 하는 거예요. 제 눈에는 별이고 뭐고 안보인다고 화를 냈죠.(웃음) 다른 참가자들은 아름다운 풍경도 많이 봤다는데 저는 아팠던 기억밖에 없었어요.”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완주를 하고나니 뿌듯한 마음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언제 힘들었냐는 듯 ‘다음 대회에 나가면 나도 레이스를 즐겨야지’라는 생각도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고통을 즐기듯 그녀는 얼마 후 고비사막 마라톤에도 참가했고, 여성참가자 3등이라는 기록을 세워 세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자신감이 충만해진 양유진 씨는 2014년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 마라톤에 세 번째 도전장을 냈다. 1년으로 계획했던 휴학 기간이 막바지에 접어들어 마치 뒷동산에 오르듯 복학 전에 얼른 하나 더 뛰고 오자는 생각으로 별 고민 없이 결정한 도전이었다. 그녀는 자신감과 도전 정신만 가슴에 품고 비행기에 올랐다. 아타카마가 어떤 곳인지는 전혀 알지 못한 채. 


도착 후 그녀는 몹시 당황스러운 상황을 마주하게 됐다. 아타카마 사막은 그동안 양유진 씨가  갔던 지형과는 완전히 달랐다. 해발고도 3200m부터 시작하는 어마어마한 코스. 다른 참가자들은 고산병을 대비해 3일 전에 도착해 몸을 추스르는데, 그녀는 당당하게 레이스 당일에 도착해 멘붕에 빠졌다.  



“구토가 얼마나 심했는지 몰라요. 물만 마셔도 다 토하고 손가락을 바늘로 찌르면 피가 분출했어요. 고산병 증상이라고 하더라고요. 점점 고도가 높아지는 코스라 증상은 더 악화됐죠. 오기로 계속 달리다가 결국 145km에서 쓰러졌어요.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떠보니 운영본부에 누워있더라고요. 실격처리가 됐고, 돌아오는데 어찌나 패배감이 들었던지요. 기필코 다시 도전하겠노라 결심했고, 한국으로 돌아오고 3개월 후에 에베레스트 등반을 했어요. 고산병을 이겨내려는 연습이었죠. 이제 고산병을 극복했으니 다시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꿈을 싣고 달리는 ‘드림 러너’

오지마라톤 섭렵에 이어 그녀는 얼마 전 또 하나의 도전장을 내밀었다. 스포츠를 통한 나눔 활동, 기부 마라톤을 기획한 것이다. 좋아하는 달리기, 운동을 취미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업’으로 삼기위한 다양한 방식을 고민하다가 나온 결과물이다. 단순히 혼자 도전하고 성취감을 느끼는 것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달리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행복이 된다면 그 보람은 더욱 커지고 달릴 수 있는 큰 원동력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장애우 중 스포츠 선수를 꿈꾸는 친구를 찾았어요. 선천적 하반신 마비가 있는 친구인데 장애인 레이스 국가대표를 꿈꾸고 있더라고요. 하지만 경기용 휠체어가 몸에 맞지 않았어요. 그 친구를 위한 기부 마라톤을 진행했어요. 강원도 고성에서 독도까지 달리고, 저를 응원하는 분들이나 뜻이 같은 분들에게 크라우드펀딩을 받는 방식이었죠. 총 850만원의 기부금을 모았고 휠체어 회사에서 일부 비용을 지원해 1천만 원 상당의 경기용 휠체어를 선물할 수 있었어요.” 


양유진 씨는 이후에도 친구, 후배와 함께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한 85일간의 호주 자전거 횡단을 진행해 총 450만원의 기부금을 모으기도 했다. 



그녀는 지난 2월부터 스포츠를 통한 다양한 기부 사업을 추진할 예비 사회적기업 ‘드림임팩트’를 창업해 활동 중이다. 드림임팩트는 다양한 스포츠 행사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강연 수익이나 행사 기획 비용 등의 전액 혹은 일부를 다양한 분야에 기부하고 있다. 


“예전에는 도전을 하는 것, 도전을 통해 기부하는 활동에만 집중했는데 이제는 수익도 내야해 조금 더 어려워졌죠. 하지만 누군가의 꿈을 위해 계속해서 뛸 수 있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의미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꾸준히 세계 대회에 참가하고, 도전을 이어갈 계획이에요. 내년 초에는 철인3종경기에 도전하기 위해 요즘 맹연습 중이랍니다. 아직 완주를 못한 아타카마 마라톤도 재도전할 거고요. 꿈을 싣고 달리는 ‘드림 러너’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달리고 또 달리겠습니다.”  

     

글 박해나 기자 phn0905@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 양유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