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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Q열전] 버스성애자들, 버스 위한 잡지를 만들다 조회수 : 10303

매일 타는 똑같은 버스, 똑같은 노선. 특별할 것 없는 버스에 낭만을 실어보겠다며 두 팔을 걷어붙인 두 여대생이 있다. 서울의 버스를 주제로 격월간지 <생각버스(Thinking Bus)>를 만드는 이예연·이혜림 씨가 그 주인공. 스마트폰으로 볼 수 있는 버스 노선도를 ‘굳이’ 두 달간 쓰고 그리며 종이로 옮긴 그녀들의 노고 덕분에 세상에 단 하나뿐인 버스의, 버스를 위한, 버스에 의한 잡지가 서울에서 탄생했다.











“작은 영화관 같아서 재밌어요.”
그녀들의 버스 예찬론은 ‘영화관’으로 시작했다. 운전기사님이 감독, 승객이 주인공이란다. 한 행선지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니 ‘버스성애자’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모습이다.

이예연(이화여대 시각디자인 4)·이혜림(이화여대 서양화 3) 씨가 만드는 <생각버스(Thinking Bus)>는 서울의 버스 중 하나의 노선을 선정하고, 노선과 어울리는 키워드를 정해 이야기를 싣는 무가지다. 2절 크기의 종이를 접어 각기 다른 모양의 지면을 만들어 내용을 담고 있지만, 펼친 면에 들어가는 여행지도는 변함없다. 지난해까지 총 10개의 노선을 다룬 매거진을 발행했고, 새롭게 발전된 형태와 내용으로 시즌2를 준비하기 위해 지금은 잠시 휴식기를 가지고 있다.







버스 회사 지원받고 1000부에서 단숨에 1만 부로
두 사람은 고등학교 때 학교 축제 팸플릿을 제작하면서 처음 만났다. 작업 과정에서 서로 출판물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운명처럼 같은 대학으로 입학해 본격 ‘일 벌이기’ 작업에 착수했다. ‘<생각버스>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같이 무엇이든 만들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매일 학교를 오가며 타는 버스를 내용으로 한 출판물을 만드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어요. 재밌는 요소가 많은 버스 안에서 모두 스마트폰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거든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추억을 만드는 공간이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고, 나아가서는 런던을 상징하는 이층버스처럼 서울의 4색 버스가 하나의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으면 했어요.”





주로 기획 일에 관심이 많은 이혜림 씨가 콘텐츠 발굴 작업을 하고, 이예연 씨가 지면 디자인을 맡았다. 1000장의 2절 종이를 손으로 하나씩 접는 것도 두 사람의 일이었다. 여름방학을 오롯이 잡지 제작에 몰두한 결과 2012년 9월, 창간호가 탄생했다.

1호 주인공은 472번 버스. 버스에 대한 두 사람의 생각부터 제작 목적까지 모두 담은, 말하자면 ‘<생각버스> 요약본’이었다. 매거진 발행은 계획대로 진행됐지만, 문제는 <생각버스>의 ‘자리’였다.

“작업물은 나왔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전공 수업 때 견학했던 독립 출판 서점을 찾아갔어요. 조금씩이라도 비치를 부탁했고, 그렇게 하나씩 <생각버스>가 어울리는 장소들을 늘려갔어요. 비영리 목적으로 한 잡지라서 그랬는지 흔쾌히 허락해주시더라고요.”




노선을 알알이 새겨 넣은 이들의 노력을 알아차린 것은 버스 회사였다. 버스 운수 회사 대표가 버스에 매거진을 비치하고, 조합 차원에서 지원을 해주고 싶다며 연락을 해 온 것. 드디어 <생각버스>가 제자리를 찾게 됐다는 점과 함께 1만 부로 부수를 늘리게 됐다는 점, 그리고 이제는 기계로 2절 종이를 접을 수 있다는 점이 그녀들을 들뜨게 했다.

더욱 다양한 활동을 하며 넓은 스펙트럼의 작업을 보여주기 위해 지난해 6월에 "팀원 모집"을 통해 함께할 친구를 찾았다. 그 결과 이수진(서울여대 시각디자인 졸)씨와 정예온(숙명여대 시각디자인 4)씨가 함께하게 됐다. 






100개 노선을 만드는 그 날까지 <생각버스> 운행 
한 버스 노선의 특징을 파악하기 위해서 종점에서 종점까지 왕복하는 것은 당연한 작업 과정. 한 사람은 왼쪽에, 다른 한 사람은 오른쪽에 앉아 창밖을 보며 콘텐츠로 만들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낸다. 때로는 평소 하고 싶었던 키워드에 맞는 노선을 찾아내기도 한다.

“‘이태원 프리덤’, ‘강남 스타일’과 같이 서울의 지명을 말하는 노래들을 묶어보고 싶었어요. 찾아보니 143번 노선이 딱 맞아서 ‘노래’를 주제로 다룬 적이 있어요. 지난해 냈던 4월호는 ‘벚꽃엔딩’이 주제여서 벚꽃으로 유명한 거리를 지나는 260번 버스의 이야기를 담았죠.”

<생각버스>의 한 호가 나올 때까지는 꼬박 두 달의 시간이 걸린다. 버스의 이야기나 콘셉트는 한 호를 마무리하면서 미리 정해놓는 것이 원칙. 그녀들의 작업 과정을 들여다보면 여느 잡지를 만드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획자 역할을 맡은 이혜림 씨가 한 달간 콘셉트에 맞는 내용을 취재하며 소스를 만들면, 남은 한 달 동안 이예연 씨가 디자인 작업을 하고, 그동안 이혜림 씨는 다음 호에 실을 버스 탐색에 나서는 방식. 디자인 작업까지 완료되면 교열을 보고 인쇄에 들어간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왜 해야 하지?’라는 질문은 한 번도 하지 않았어요.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으니까요. 다만 제작비가 걱정될 때가 있어요. 무가지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부딪히는 한계인 것 같아요. 수익원이 불분명하면 자생하기 쉽지 않잖아요.”

재정 문제가 걸리긴 하지만 주변에서 응원해주는 사람이 많은 덕분에 쉬고 있는 지금도 손이 근질근질하다. 한번은 거제에서 <생각버스>를 만들어보고 싶다며 연락을 해왔는데, 거제까지 왕복하기가 쉽지 않아 정중히 거절했다. 다른 지역도 좋지만, 우선 더 많은 서울의 버스에 매거진을 비치하는 것이 목표다.

“이 일이 현재 저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웹 같은 새로운 채널을 접목해서 발전한다면 더없이 좋은 시나리오죠. 서울의 버스가 300개라는데, 지금보다 10배는 더 내야 하지 않을까요?”


<생각버스>가 뽑은 베스트 버스 노선
▶ 7011 - 특화 거리를 많이 지나는 노선. 을지로 자재 거리, 아현역 가구 거리, 이대역 웨딩타운, 염천교 구두거리까지. 창가에 앉아 간판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 110 - 둥그런 모양의 노선. 버스 뒤에 붙는 A와 B의 의미를(시계방향은 A, 반시계방향은 B) 알게 해준 버스다. 정릉부터 해방촌, 홍대까지 서울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볼 수 있다. 

▶ 402 - 일정 규모의 건물 앞에는 공공미술작품을 설치해야 한다는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라 기업의 사옥 앞에는 공공미술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광화문, 강남역 일대를 지나는 402번 버스를 타면 자연스럽게 도심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글 김은진 기자│사진 김기남 기자



온라인에디터 jobnj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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