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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Q열전] 취업 동아리 회장은 왜 입사 대신 애국 청년을 택했나 조회수 : 5552
동해 표기를 바로잡고,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애쓰고 있는 애국 청년 남석현. 그런데 이 남자, 사실 알고 보면 대단한 역사의식이 있는 것도, 끓어오르는 애국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잠깐의 자존심 회복을 위해 시작했던 일이 이렇게 취업도, 결혼도 뒷전으로 만들게 될 줄이야. 누구보다 대기업 취업을 희망했던 그가 애국청년으로 살게 된 파란만장한 스토리를 공개한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열여덟 살의 남석현(28) 씨는 늘 동생과 대중목욕탕 온탕에 들어가 앉아 사회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단골 주제는 그를 괴롭게 했던 ‘영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이 굉장히 많잖아요. 그 시간을 차라리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것에 투자하면 우리나라가 더 강한 나라가 될 거라며 열변을 토했죠. 그러면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해봤고 ‘반도체’ 분야의 연구원이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척 했지만 사실은 영어 공부가 하기 싫었을 뿐이었던 그는 영어와 관련 없어 보이며 어쩐지 촉망받는 직업이 될 것 같은 반도체 연구원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인제대 나노공학부에 입학했지만 막상 대학에 가보니 연구원이 되기 위해서는 박사 과정까지 밟아야 하고, 그 길이 매우 험난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자연히 전공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는데 그쯤 우연히 선배들을 따라 생애 첫 해외여행에 나설 기회가 생겼다. 일주일간의 첫 해외여행 이후 그는 ‘여행병’에 걸렸다. 시시때때로 해외로 떠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했다. 그래서 해외 인턴십, 봉사활동은 물론이고 각종 공모전, 책 읽고 서평 남기기 이벤트 등을 활용해 방학마다 해외로 나갔다. 2010년에는 아르바이트로 여행 경비를 모아 동생과 둘이 유럽 여행도 떠났다. 그리고 그 여행은 예상치 못한 전개로 교내 대기업 취업 동아리 회장이었던 그를 취업은 뒷전인 애국청년으로 바꾸어 버리고 말았다.



‘니하오’, ‘곤니찌와’에 울컥해 한국 알리기 프로젝트
파리 에펠탑을 바라보며 감동에 젖어 있던 순간, 외국인들이 그를 보며 인사를 건넸다. “니하오”, “곤니찌와”. 사실 동양인들이 외국 여행에서 흔히 겪는 일이지만 그는 순간 자존심이 상했다. 그러고는 ‘안 되겠다, 뭐라도 하자!’라는 생각이 들어 곧바로 마트로 달려가 흰 티셔츠를 한 장 샀다. 티셔츠에는 한국, 중국, 일본의 지도를 그렸다. 아시아에는 중국, 일본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이왕 그리는 거 독도도 한번 그려봤다. 그리고 그 티셔츠를 가방에 달거나, 깃발처럼 만들어 들고 다녔다.

“외국인들이 티셔츠에 관심을 많이 보였어요. 뿌듯하더라고요. 덕분에 영어도 많이 늘었고요. 그렇게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는 블로그에 사진을 올렸죠. 그랬더니 더 많은 사람들이 호응을 해주는 거예요. 어떤 분은 ‘나는 독도 홍보대사를 지원했다가 탈락해 무관심하게 살았는데, 아무도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감동받았다’는 얘기도 했죠.”

큰 포부를 갖고 시작했던 일은 아니었는데 의외의 반응에 얼떨떨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밀려오는 칭찬은 그를 춤추게 했다. 내친김에 더 큰 프로젝트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지방대생도 원하는 게 있다면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이다. 취지는 좋았지만 마땅한 아이템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친구가 보여준 기사에 시선이 꽂혔다. 곧 동해 표기를 바로잡는 국제수로기구 총회가 열린다는 기사였다. 그가 티셔츠에 지도를 그려 한국을 알린 것과 비슷한 맥락이면서 독도에 비해 동해 표기를 위해 애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블루오션이었다. 하지만 그는 쉽사리 움직일 수 없었다. 때는 4학년 여름방학이었기 때문이다. 주위 친구들은 모두 취업 준비에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그는 대기업 취업 동아리 회장을 맡고 있었다. 취업이냐, 동해냐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마음은 동해 쪽으로 기울었다. 애국심 때문이 아니라 이왕 마음먹은 거 제대로 해보고 싶어서였다. 생각해보니 서른두 살쯤 결혼하려던 생각을 서른다섯 살로 미루면 취업이 당장 급할 것도 없었다. 취업은 포기가 아니라 조금 미루는 것뿐이라 생각했다.



동해 표기 문제 알리기 넘어 이제는 민간문화외교관으로
“동해를 지킨다는 의미로 ‘동해수문장’을 만들었죠. 해외에 나가 외국인들의 서명을 받아 국제수로기구에 속해 있는 회원국에 보내기로 했어요. 5명을 팀원으로 모아 유럽에 가기로 했죠. 하지만 상황이 열악했어요. 돈이 없었거든요. 학교에서 1500만 원을 지원받고, 알바를 해서 돈을 모았지만 겨우 15일간 유럽에서 머무를 수 있는 비용밖에 안 됐죠. 하지만 현지에서 저희의 이야기를 듣고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2012년 1월부터 4개월간 유럽에서 머무르며 활동할 수 있었어요. 총 1만2000명의 서명을 받았고, 각 회원국에 서명 책자를 복사해 보냈죠. 복사해서 우편으로 보내는 비용만도 400만 원이 들었어요.”

서명을 보내고 난 뒤 이들은 국제수로기구 총회가 열리는 모나코 회의장으로 향했다. 총회에 참석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오가는 이들에게 인사라도 했다. 한 참석자는 그들에게 다가와 ‘보내준 서명을 잘 받았다’며 ‘외교적인 문제라 직접적인 의견을 줄 수는 없지만 포기하지 말라’는 격려를 해주기도 했다. 그곳에서 만난 우리나라 관계자는 ‘다른 국가에서 서명을 잘 받았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학생들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해냈냐’고 대견스러워했다. 하지만 2012년 18차 국제수로기구 총회에서 동해 표기에 관한 문제는 접점을 찾지 못했고 결국 2017년 다음 총회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갑자기 시간이 붕 뜨게 된 거죠. 5년이란 시간이 생겨 버린 거잖아요. 그래서 다시 돌아와 책도 쓰고 재정비의 시간을 가졌어요. 정부에서 주최한 동해, 독도 관련 세미나에도 초청받고, 청년 대표로 참여도 했죠. 활동을 하면서 점점 동해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어요.”

그는 얼마 전 새로운 분야로의 도전을 시작했다. 서명을 받기 위해 유럽을 돌아다니며 만난 한류 팬들과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관리하며 민간문화외교관으로 나서는 것이다.

“너무 일방적으로 우리의 이야기만 하고 도움만 요청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나라를 좋아해 주는 만큼, 우리도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알아보자는 뜻으로 ‘세이울’(세상을 이롭게 하는 울타리)을 만들었어요. 올해는 각 나라별로 한류 팬이 모일 수 있는 지부를 만들고 그 나라로 여행가는 분들에게 각 지자체에서 지원받은 한복이나 부채, 손수건 등의 물품도 전달할 예정이에요.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한국 문화를 알리고, 서로 소통하면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가면 좋겠어요.”


글 박해나 기자│사진 서범세 기자
온라인에디터 jobnj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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