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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Q열전] ‘흑석동의 모든 것’ 운영자 차승학·황도연 조회수 : 7127



“흑석동은 굉장히 특이한 곳이에요. 이곳만의 고유한 색이 변질되지 않고 지켜지고 있는 곳이죠. 중앙대학교병원을 중심으로 절반은 대학생, 절반은 지역 주민으로 채워져 있어 대학 문화와 지역 문화가 반반씩 공존하는 곳이기도 하고요.”

두 남자의 흑석동 예찬은 끝이 없었다. 길에 널려 있는 쓰레기조차 아름답고, 좁은 달동네 골목은 운치 있으며,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키는 밥집과 술집들이 정겨운 곳. 그곳이 바로 흑석동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흑석동 토박이들만 알 법한 흑석동의 숨은 역사에 대해서도 술술 읊어댔다. 이쯤 되면 흑석동 홍보대사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

“그런데 저희가 흑석동 주민이 아니에요. 개포동, 역삼동에 살고 있죠. 많은 분들이 흑석동에 살 것이라고 생각하시다가 아니라고 하면 은근히 배신감도 느끼시더라고요. 그런데 살고 있는 동네보다 흑석동에 대한 애착이 큰 것은 사실이에요. 술 마시고, 토하고, 연애한 추억은 모두 흑석동에 있으니까요.”

겉모습만 봐서는 흑석동 자취생 같은 느낌이지만 알고 보면 ‘강남 남자’인 차승학(중앙대 사회학과 졸업 예정), 황도연(중앙대 사회 4) 씨는 ‘흑석동의 모든 것’(이하 흑모것)이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주요 활동은 페이지에 흑석동 맛집이나 풍경 사진, 주민 인터뷰 등을 업로드하는 것. 처음에는 친구들끼리 즐기는 소소한 추억 상자 정도의 개념으로 시작했는데, 생각지 못한 인기를 얻으면서 지금은 6500명 이상의 ‘흑석커’들이 방문하는 인기 페이지로 성장했다.


촌스럽고 엉망이지만 매력 가득한 흑석동
“사실 처음 흑석동에 왔을 때는 충격적이었어요. 신촌, 홍대 같은 대학가를 상상하며 왔는데 흑석동 대학가는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요. 지방에서 온 친구들도 ‘충청도보다 구리다’라고 말할 정도였죠.(웃음) 그래서 수업 끝나면 강남이나 홍대 가서 놀았어요. 그런데 교환학생을 다녀오고 다시 학교에 왔는데 느낌이 새롭더라고요. 깨끗하게 정리된 동네보다 낡고 오래되었지만 이곳만의 매력을 새로 보게 된 거죠. 그러던 차에 학교가 새로운 건물을 지으며 공사를 시작하더라고요. ‘지금의 흑석동 모습을 기록으로라도 남겨 보자’라는 생각으로 ‘흑모것’이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든 거예요.”

2012년 9월 ‘흑모것’을 개설한 승학 씨는 재미삼아 하루에 한 개씩 흑석동의 맛집이나 풍경을 휴대폰으로 찍어 페이지에 업로드했다. 업로드할 때는 반드시 스마트폰 포토앱의 ‘필터 효과’를 활용했다. 별것 아닌 사진들도 필터 효과만 거치면 근사하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쓰레기봉투도 필터 효과를 거치고, 감성적인 글 한마디만 써 놓으면 마음을 울리는 인기 콘텐츠가 되었다. 두 사람은 인터뷰 중에도 필터 효과를 쓴 흑석동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근사해진다’며 필터 효과를 칭송했다.

필터의 덕분인지, 그가 올린 사진은 인기 만발이었다. 주변 친구들이 ‘좋아요’를 누르면 그 친구의 친구가 ‘좋아요’를 누르고, 또 다른 친구의 친구가 ‘좋아요’를 누르면서 페이지는 금세 입소문을 탔다. 어느새 그들만의 공간은 중앙대 학생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인기 페이지가 되었다. 운영자 승학 씨도 절로 바빠졌다. 취업 준비를 해야 할 시간에 그는 흑석동 구석구석을 누비며 사진을 찍고 글을 올렸다. 혼자 하기에 벅차 도연 씨를 비롯한 후배 2명이 운영자로 합류했다. 이들은 사진뿐만 아니라 흑석동 관련 칼럼이나 주민들의 이야기 등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기 시작했다. ‘포장된 사진’만 올리는 것에 대해 ‘현실을 너무 미화하는 것 아닌가’ 하는 나름의 고민이 생겼기 때문이다. 좀 더 다양한 이야기들이 페이지에 올라가자 흑석동 주민들까지도 관심을 가졌고, 동사무소 아저씨와 베프가 되고 호떡집 아주머니와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가 됐다. 하지만 높은 인기가 늘 행복만을 준 것은 아니다. ‘흑모것’이 인기의 정점을 찍었던 때 큰 충격과 두려움이 같이 찾아왔다.



“‘좋아요’ 숫자가 14만 명까지 찍었던 사진이 있어요. 도달률은 60만 명이었고요. 학교 앞에 있던 떡볶이 아주머니의 노점상이 철거된 사진이었죠. 그저 변화되는 풍경의 하나라는 생각으로 올린 것이었는데 그 사진 하나가 엄청난 파장을 갖고 왔어요. 댓글수가 폭발적이었고, 페이스북 앱의 푸시가 초당 몇 개씩 와서 금방 휴대폰 배터리가 다 달았을 정도였어요. ‘일베’에도 털리면서 난리가 났죠. 댓글에 전혀 개입을 하지 않고 보고만 있었는데 좀 걱정스럽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이제 콘텐츠를 업로드할 때 좀 더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판 키웠더니 방전…재정비 후 시즌2 오픈 예정
‘좋아요’ 숫자가 6천 명이 넘어서면서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모임도 확장했다. 흑석커 사이에서 음악회나 플리마켓을 해보자는 의견이 나왔기 때문이다. 마침 음악 하는 누나를 알고 있어 소박하게나마 음악회도 열었고, 친한 커피숍 사장님께 부탁해 공간을 빌려 플리마켓도 열었다. 나름대로 만족스런 이벤트를 끝내고 나서 이번에는 영화제와 전시회에 도전했다. 하지만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일까. 일이 진척될수록 복잡해졌고, 예산도 만만치 않았다. 다행히 서울시 청년허브를 통해 100만 원을 지원받았고, 지인 찬스를 이용해 프로젝터와 맥주 등을 협찬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부족한 금액은 운영자들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전시회는 성공적이었어요. 이틀 동안 300여 명이 방문했죠. 하지만 돈 문제가 들어가니 복잡하고 어려워졌어요. 재미로 운영하는 것인데, 자비가 들어가니 급 흥미가 떨어진 것 같아요.(웃음) 그래서인지 그 뒤로 약간의 정체기를 겪고 있죠.”

생각지 못하게 전시회에 너무 많은 에너지(그리고 돈)를 소비했고, 방학을 맞아 인턴활동이나 계절학기 등으로 각자의 일정이 바빠진 탓에 페이지 운영이 잠시 정체기를 겪었다. 겸사겸사 재정비의 시간을 갖기로 해 지금은 잠시 페이지 운영을 멈춘 상태. 새 학기가 시작될 즈음 시즌 2로 새롭게 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페이지에 올라가는 콘텐츠는 모두 흑석동이라는 지역을 기반으로 해야 해요. 그러다 보니 이야깃거리가 한정적인 것도 사실이죠. 새 학기에 새로운 사람들이 흑석동에 들어오면 이야기가 많아질 거라 생각해요. 그때 새로운 모습의 ‘흑모것’ 시즌 2로 찾아올게요.”
온라인에디터 jobnj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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