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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Q열전] 음악만 빼고 다 하는 밴드, 밴드 사이시옷 조회수 : 6597
붕어빵에 붕어는 없다.
밴드 사이시옷에는 음악이 없다.
음악 안 하는 밴드,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언젠가 음악을 하겠지’라는 생각으로 만들었지만 당장은 음악을 할 생각이 없는 밴드.
그럼 음악 안 하고 뭘 하냐고?
에코백도 만들고, 버스 여행도 하고, 릴레이 소설도 쓰고, 영화 상영회도 한단다.



2012년 말, 이상준(29) 씨는 ‘밴드 사이시옷’을 만들었다. 기타 연주를 할 수 있는 곡은 3곡뿐이었지만 막연히 밴드 활동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이름은 ‘밴드 사이시옷’으로 정했다. 사이시옷이라는 발음이나 모양이 마음에 들었고, 굳이 의미를 붙이자면 단어와 단어를 이어준다는 그 역할이 좋아서였다나. 그리고 SNS를 통해 지인들을 불러 모았다. “우리 밴드 해볼래?”


‘게으르고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이 모토인 음악 없는 밴드
“음악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 ‘밴드’라고 부른다는 게 재밌잖아요. 처음 SNS 모집을 통해 모인 17명 중 음악을 할 줄 아는 친구는 한 명도 없었어요. 다들 지금 당장 음악을 할 수는 없어도 언젠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모인 거죠.”

음악을 할 줄 모르는 사람들만 모인 밴드. 그래서 이들은 그냥 ‘사이시옷’이 아니라 곧 죽어도 ‘밴드 사이시옷’이라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강조한다. 음악도 안 하면서 꿋꿋이 ‘밴드’라고 스스로를 칭하는 것이 더 재미있기 때문이란다. 가입 조건도 간단하다. 자신이 밴드 안에서 맡을 역할 하나만 가져오면 된다. 음악성에 대한 평가도 없고, 악기의 유무도 중요하지 않다. 가입 조건이 너그러워서인지, 멤버들의 수도 계속해서 늘고 있다. 처음에는 17명의 멤버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30여 명이 넘는 인원이 밴드 사이시옷의 멤버로 속해 있다.

“역할극처럼 닉네임을 만드는 거죠. 자신이 이 밴드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정하는 거예요. 수석 디자이너, 매니저, 트라이앵글러, 장구이스트부터 어중간함, 막내, 풋내기 등의 역할을 담당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밴드 사이시옷은 ‘게으르고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을 모토로 한다. 때문에 멤버들은 절대로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않고, 리더 이상준 씨도 적극적인 참여를 권하지도, 원하지도 않는다.

“저도 대학생 때는 굉장히 바쁘게 활동했어요. 알바와 인턴 경험도 있고, 앰배서더 활동도 열심히 했죠. 생각해보면 그런 활동은 다 목적 지향적이에요. 회사에 들어와 보니 일하는 것도 똑같더라고요. 어떤 목적을 갖고 일하는 거죠. 우리는 항상 목적이 있는 일만 하는데, 한번쯤 목적이 없는 일을 해보는 것도 재미있다고 생각했죠. 밴드 사이시옷에서 그런 아이디어를 던져보는 자리를 갖는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언젠가 음악하게 된다면 장난기 빼고 진지하게
강요가 없으니 멤버들의 참여도 자유롭다. 귀찮은 정기 모임도 없이 대부분 SNS에서 소통한다.

“시간 되는 사람끼리 만나자는 의미로 모임을 4번 정도 가졌던 것 같아요. 아직 한 번도 얼굴을 못 본 멤버들도 있고요. 저희는 모일 때도 ‘몇 시까지 모여라’가 아니라 ‘몇 시부터 모여라’예요. 6시까지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니라 6시부터 모임을 할 테니 편한 시간에 오면 된다는 거죠.”

첫 만남은 2013년 초였다. 어색하게 마주앉은 이들은 앞으로 밴드 사이시옷이 어떤 활동을 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해서 정해진 것은 릴레이 소설 쓰기, 하이쿠 백일장, 고구마 캐기, 버스 여행, 영화 상영회 등이었다.

일단 온라인에서 먼저 활동을 시작했다. 멤버들이 돌아가며 릴레이 소설을 쓰고, ‘하이쿠 백일장’이라는 이름의 비정기적인 시 쓰기 대회를 열었다. 온라인 활동의 높은 참여도에 힘입어 오프라인 활동도 도전했다. 가장 먼저 했던 것은 고구마 캐기 여행. 함께하면 좋고, 아니면 말고의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정말로 아무도 참여하지 않았다. 결국 이상준 씨는 자신의 지인 몇 명을 불러 강화도로 고구마 캐기 여행을 다녀왔다. 이후 야심차게 버스 여행도 기획했다. 멤버들은 SNS상에서만 높은 호응도를 보여줬다.

“버스 여행은 날짜와 버스 노선 한 개를 정한 뒤 시간, 장소 상관없이 타고 싶을 때 타고 여행하는 것이었어요. 우연히 만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죠. 하지만 절대로 만날 수가 없더라고요. 한 개의 노선이라고 해도 하루에 운행하는 버스가 한두 대도 아니고, 정류장도 굉장히 많고요. 누가 참여했는지도 집계가 안 돼요. 저는 참여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함께 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어요.”

가장 호응도가 높았던 것은 영화 상영회. 연희동 SF&판타지 도서관에서 ‘청년 레오 다시보기’라는 주제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초기작 3편을 함께 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2만 원 씩 회비를 모아 진행했는데 멤버들과 지인 총 30여 명이 참석할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때문에 조만간 한 번 더 자리를 마련해 상영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최근에는 밴드 사이시옷의 로고가 새겨진 에코백, 배지, 팔찌 등을 제작해 멤버들과 나눠 갖기도 했다. 게으르고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이 모토라더니, 은근히 이것저것 열심히 한 흔적이다. 그래서일까, 앞으로의 계획을 물으니 한두 달은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놀 생각이란다.

“우리끼리 돈을 조금씩 모아 사진집을 재미있게 만들어 내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일단 몇 달은 그냥 쉬고 싶고요. 얼마전에는 음악을 만들어주겠다는 제의가 들어왔어요. 새로 들어온 멤버 중에 음악 하는 친구들도 몇 명 있고요. 마음만 먹으면 지금도 음악을 할 수 있는 상황이죠. 하지만 쉽게 음악을 시작하고 싶지는 않아요. 지금까지 우리의 활동이 장난처럼 가벼운 것이었다고 해도 음악만큼은 진지하게 해보고 싶거든요.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 음악을 하게 되는 날이 오겠죠. 그때가 되면 이름도 ‘밴드 사이시옷’이 아니라 ‘사이시옷’으로 바꿀 거예요. 진짜 밴드가 되는 거니까요. 비틀즈가 자신들을 ‘밴드 비틀즈’라고 부르지는 않는 것처럼요.”


글 박해나 기자│사진 이승재 기자
온라인에디터 jobnj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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