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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Q열전] 혼자 걷는 동아리 ‘나 혼자 걷는다’ 조회수 : 5576
지능 발달 정도를 나타내는 IQ. 감성 지수를 나타내는 EQ. 그리고 꼴통 지수를 나타내는 ‘꼴Q’. 흔히 ‘꼴통’은 머리가 나쁜 사람을 비하하는 말이지만, 이 페이지에서만큼은 ‘평범한 것을 거부하며 자신만의 올곧은 신념으로 살아가는 이들’이라 정의하도록 한다. 용기, 패기, 똘끼로 단단하게 굳어져 남들의 비웃음이나 손가락질에도 흔들림 없는 이 시대의 진정한 ‘꼴Q'를 찾아서…. 당신의 ‘꼴Q’는 얼마인가요?



건국 이래 전례가 없던 혁신적인 동아리 ‘나 혼자 걷는다’. ‘나 혼자 걷는다’는 페이스북 페이지에서만 존재하는 대학생 연합 동아리다. 동아리 회원들은 자신이 홀로 걷는 길의 풍경이나 혼자 걷는 모습(주로 발 사진)을 찍어 함께 공유한다. 특별한 가입 조건도 없고 모임이나 회의, 교류도 없다. 딱 한 가지 규칙만 지키면 된다. 반드시 ‘혼자’ 걸을 것.



“페 이지에 올리는 사진의 구도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셀카로 혼자 찍은 건지 누군가 찍어준 사진인지. 혼자가 아니었다면 바로 강퇴입니다. 그렇다고 솔로들만 모인 것은 아니에요. 애인이 있는 사람도 가입 가능해요. 단 걸을 때는 혼자여야 한다는 거죠.”

오늘도 매의 눈으로 회원들이 올린 사진을 검열(?)하고 있는 ‘나 혼자 걷는다’의 운영자이자 서울지부 회장 이병기(숭실대 언론홍보 3) 씨는 혼자 걷기 예찬론자다. 인터뷰를 위해 북촌을 함께 걷는 동안에도 그는 옆에 선 기자가 머쓱할 정도로 “이런 좋은 길은 혼자 걸어야 제맛”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둘이 함께 오면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게 너무 많아요. 혼자 걸으면 주변 풍경도 잘 볼 수 있고, 원하는 곳에 원하는 시간 동안 머무를 수도 있고요. 저는 먼 곳을 가는 것보다 동네를 혼자 걷는 것을 좋아해요. 한번은 집 근처를 걷다가 이정표에 ‘배수지공원’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발견했어요. 순간 가수 ‘미쓰에이’의 수지가 떠오르더라고요. ‘저기 가면 수지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배수지공원을 찾아 떠났죠. 한 시간여를 걸어간 그곳에 수지는 없었지만 새로운 길을 걷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죠.”

그는 그렇게 매일 정처 없이 발걸음을 옮긴다. 느낌 오는 대로, 즉흥적으로 움직인다. 거창하게 국토대장정을 떠나거나 ‘내일로’ 여행을 가는 것이 아니라 수지를 떠올리며 배수지공원을 찾아 떠나거나 ‘꿀재미’가 있다는 동네 뒷골목 걷기를 즐긴다.




너는 왜 혼자 걷니? 나 동아리 활동 중이야!
“군 제대 후 지난 3월에 복학을 했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답답한 마음에 걷기 시작했어요. 걷다 보니 생각도 정리되고 좋더라고요. 그런데 주변에서 ‘너는 왜 혼자 걸어다니냐’고 묻는 거예요. 할 말이 없어서 ‘혼자 걷는 동아리 하고 있어’라고 포장을 했어요. 뱉은 말이 있으니 책임을 지기 위해 페이스북에 ‘나 혼자 걷는다’를 만든 거죠. 요즘 다들 연합 동아리에 들어가기에 ‘그게 별건가’라는 생각으로 연합 동아리라고 정의했고요. 그런데 모르는 사람들이 가입을 하기 시작하더라고요. 지난 5월에 처음 만들었는데 벌써 ‘좋아요’를 누른 회원이 147명이에요. 아니, 그새 3명이 또 늘었어요! 150명이네요.(웃음)”

이 씨는 ‘나 혼자 걷는다’를 “동아리 발전의 최고봉, 동아리계의 엄청난 혁신”이라고 자랑했다. 기존의 ‘동아리’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썼기 때문이다. 일단 신입생부터 복학생까지 누구라도 언제든 가입할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었다. 번거로운 회의나 모임도 없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감투를 쓸 수 있는 ‘모두의 간부화’ 시스템도 도입했다.



“대학생 중에 감투 욕심 있는 사람이 많거든요. 이력서에 한 줄 쓸 수 있잖아요. 그래서 다들 스펙 동아리, 연합 동아리에 들어가지만 그 안에서 회장, 부회장을 하는 사람은 겨우 한두 명뿐이죠. 저는 우리 회원님들이 이력서에 한 줄씩이라도 쓰라고 회장 직함을 주고 있어요. 그래서 전국적으로 지부가 많이 생겼어요. 경기북부지역 회장, 명지대지부 회장 등 계속해서 회장을 만들어야 하니까요. 조만간 해외 지부도 생길 것 같아요.”


주변에서 ‘너는 왜 혼자 걸어다니냐’고 묻는 거예요. 할 말이 없어서 ‘혼자 걷는 동아리 하고 있어’라고 포장을 했어요.



‘나 혼자 걷는다’의 또 다른 특징은 서로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운영자인 그조차도 인터뷰에 동행했던 학교 후배인 경기북부지역 회장 홍성균 씨 한 명을 제외하고는 만나본 회원이 없으며 만날 생각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끔 회원들의 무심함에 새삼 놀랄 때도 있다.

“한번은 2만 원 상당의 아이스크림 쿠폰을 선물로 걸고 ‘혼자 재미있게 노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이벤트를 진행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회원 중에 단 한 사람도 이벤트에 참여를 안 하더라고요. 결국 그 아이스크림은 그냥 저 혼자 사먹었죠.”




혼자 걸으며 위로받고 꿈도 찾아
이 씨는 동아리를 운영하며 세상에는 외로운 사람이 많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회원들이 글을 정말 길게 남겨요. 자신이 혼자 걸으면서 생각하고 느낀 점들을 담아내는 거죠. 어떤 회원님은 재수를 해서 대학에 입학했는데, 재수하던 학원가를 지날 때면 옛날 생각이 많이 나나 봐요. 학원가를 혼자 걷는 사진을 올리면서 엄청난 장문의 글을 쓰셨더라고요. 그렇게 글이나 사진을 올리는 것 자체에서 위로를 받는 것 같아요.”

이쯤 되면 ‘나 혼자 걷는다’의 회원들을 ‘사회에 불만 많은 외톨이’라고 짐작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다르다. 오히려 많은 사람과 어울릴수록 혼자 있는 시간이 그리워지기 때문에, 회원의 대부분이 학교나 사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 역시 복학 전 학생회 활동을 활발히 했고, 경기북부지역 회장 홍성균 씨도 현재 학교에서 과대표를 맡고 있다.

남들은 취업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 시간에도 이 씨는 한강 공원을 걷고, 마포대교를 걷는다. 주변에서는 ‘너무 속 편한 것 아니냐’ ‘현실 도피 아니냐’는 이야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다른 친구들처럼 도서관에 앉아 영어 공부를 하는 대신, 길에서 방황하며 자신의 진짜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사실 예전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컸어요. 그런데 혼자 걸으면서 달라졌죠. 무심코 지나쳤던 풍경이나 사물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벤치에 앉아 동네 어르신들과 얘기할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됐어요. 그렇게 세상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꿈도 찾게 됐죠. 지금은 휴학을 하고 다큐멘터리 제작 수업을 듣고 있어요. 나중에는 이렇게 혼자 걸으며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 ‘나 혼자 걷는다’ 다큐멘터리도 만들어보고 싶어요.”


글 박해나 기자│사진 이승재 기자
온라인에디터 jobnj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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