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희의 잡토크

문순이vs공돌이의 ‘인문학’ 배틀 [내가 선택한 직업] 조회수 : 11671

문순이 VS 공돌이의 ‘인문학’ 배틀

지난 22일 오후 3시, 4인의 대학생이 한국경제신문사에 모였다. 올 한해를 휩쓸었던 기업의 ‘인문학 평가’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애초에는 실제 대상자인 취준생의 시선으로 바라본 기업의 ‘인문학 평가’ 트렌드에 대해 가볍게 대화하는 시간으로 구상했지만 웬걸, 문과생 2명, 공대생 2명은 인문학을 사이에 두고 불꽃 튀는 ‘맞짱 토론’을 벌였다.


<4인의 좌담 참가자>

구희성

명지대 법학과 4학년 2학기. 졸업 유예 준비 중. 언론사 입사를 목표로 3학년 2학기부터 신문사 활동.


신수인

연세대(원주) 경영학과 4학년 2학기. 내년 졸업예정. 취업컨설팅 업체에서 조교로 일하는 중. 인사 관련 취업 준비 중.


양준호

광운대 화학공학과 3학년 2학기. 구체적인 진로는 정하지 못했지만 공단쪽으로 생각 중.


이태인 

광운대 화학공학과 3학년 2학기. 고분자 관련 취업 준비 중.



현재 인문학은 어떻게 공부하고 있나?

이태인

교양과목으로 철학을 선택해 공부하고 있다. 하지만 인문학을 잘 모르다 보니 수업이 많이 어렵게 느껴진다. 지금 듣는 과목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통해 교수님과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수업이다. 책을 전부 읽고 요약을 해 철학과 교수님과 문답도 해야 한다. 내용도 어렵지만 무엇보다 힘든 건 인문대생들과의 경쟁이다. 인문대생들은 내용을 이해도 잘 하고 발표도 잘 하는데 공대생들은 여전히 객관적 사실만 중점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양준호

교양으로 준비한다. 하지만 학점이 중요하다 보니 인문학 수업을 듣는 데 따른 리스크가 걱정되긴 한다. 법과 관련된 교양을 들으면 법학과 학생들이 많고 미디어 과목을 신청하면 미디어 전공자들이 넘쳐난다. 물론 열심히 공부하면 따라잡을 수는 있겠지만 사실 공대생들이 전공과 관련 없는 교양을 듣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무엇보다 전공 공부가 너무 힘들어 시험기간에 부담이 많이 된다. 하지만 전공 수업 중 이론을 설명하는 등의 문제를 풀 때는 확실히 인문학 수업을 들었던 게 도움이 됐다. 기승전결 구조를 짜거나 주장에 대한 근거를 뒷받침 하는 방식이 자연스러워졌다.

신수인

저도 주로 교양을 통해 공부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대학 시간표가 정말 듣고 싶은 과목보다는 시간이 맞는 과목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형태로 짜여지다 보니 기업에서는 대학 때부터 인문학 소양을 기르도록 요구하지만 실제 대학이 서포트를 제대로 해주지 못하는 느낌이 든다. 또 혼자 철학 책을 읽는다고 해도 함께 이야기나 논리를 풀어나갈 사람이 없다는 한계에 부딪히곤 한다. 스터디 역시 대부분 토익이나 자격증 등 당장 스펙에 직결되는 공부를 하느라 바빠 인문학 스터디를 꾸리기도 어렵다.

구희승

따로 시간을 내기 보다는 영화나 책을 통해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것도 좋다. 영화를 본다면 ‘저 주인공은 왜 저렇게 얘기했을까’ ‘주인공의 행동의 숨은 의미는 무엇일까’ 든 다양한 시각에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문과생과 공대생 4명의 ‘취업인문학 맞짱토론’이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양준호, 신수인, 구희승, 이태인 대학생.

기업이 인문학 소양을 평가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양준호

인문학 자체가 사람에 대한 학문인데 공대 역시 만드는 제품이나 시스템이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인문학이 필요하다는 데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게다가 토익은 점수가 높다고 100% 영어를 잘 한다고 확신할 수 없지만 인문학에 해박하면 사람에 대해 잘 안다는 것을 어느 정도 방증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토익 같은 기존 스펙에 인문학까지 준비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는 건 사실이다.

구희승

역시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건 다른 스펙에 대한 부담이 전혀 줄지 않았다는 점이다. 좋은 인재를 뽑으려는 기업의 노력에는 긍정적이지만 또 하나의 스펙이 추가된 것 같은 어려움은 있다.

이태인

인문학을 반드시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문학 소양이 있다고 업무의 효율도 늘어날까에 대한 점에는 의구심이 든다

신수인

난 반대다. 인문학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신제품을 개발할 때, 단순히 ‘성능이 좋은’ 제품이 아니라 얼마나 실생활에 도움이 되고 편리한지를 따지는 게 요즘 추세라고 생각하는데 이를 뒷받침하려면 인문학이라는 베이스가 있어야 한다. 스마트폰만 해도 사용자가 실제 사용하기에 얼마나 유용한가에 초점을 맞춰 개발하지 않는가.

구희승

동의한다. 앞서 업무에 도움이 안 된다고 했는데 기술이 아무리 중요해도 최종 결정은 결국 인간이 하는 것이다. 또 조직원과 협업을 할 때도 인문학 소양이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최근 급속히 산업화를 이루는 동안 놓쳤던 정성적 요소들도 인문학이 되찾아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양준호

공학계열의 입장에서는 조금 의견이 다르다. 영업이나 마케팅 등 사람을 대하는 업종은 인문학 소양이 필요할지 몰라도 공대생은 기계를 다룬다. 우리는 학부 내내 효율과 품질에 대한 내용을 배운다. 물론 소통도 중요하지만 더 좋은 제품을 생산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이태인

현대자동차는 공대생들에게만 역사에세이를 출제하고 있는데 공대생은 전공지식과 인문학 두 개를 동시에 준비하기는 버겁다. 인문학 소양이 필요한 업무는 인문대생에게 맡긴 뒤 나중에 협업하면 되지 않나.

신수인

물론 나도 인문학 소양을 공대생한테까지 요구하는 건 무리가 아닐까 생각하긴 한다. 하지만 기업이 도입한 이유가 있을 거다. 일부러 떨어뜨리려고 도입한 건 아닐 테니 말이다. 아까도 잠깐 나왔지만 조직원과의 협업이 중요하기 때문인 것 같다. 기술 개발을 하더라도 최종적으로 결과보고 같은 건 다른 부서와의 협업을 통해 나온다.

구희승

인문학은 공대생과 문과생 두 가지로 양분화하는 현재의 교육제도를 완화할 수 있는 도구일지도 모른다. 우리 학교는 자연대와 인문대가 아예 캠퍼스 차원으로 나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대 수업을 듣고 싶어도 캠퍼스간 거리가 멀어 들을 수 없다. 결국 자기 전공에만 매몰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창의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처럼 공부 내용이 획일화돼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마 공대생도 인문학을 배우면 새로운 점이 보일 것이다. 기술에 철학까지 덧붙여지면 우리나라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인문대 역시 기술적인 지식도 있어야겠지만 말이다.

양준호

맞다. 요즘 우리나라 중등교육과정의 구조는 수학이 싫다는 것 하나로 문과를 가고 언어가 싫어서 이과를 가는 형태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 문장이 조금만 길어지면 이해를 못하는 공대생들이 많다. 사고력이 떨어지는 공대생들이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공대생들의 인문학 소양이 확대된다는 것에는 긍정적이다.

인문학을 사이에 두고 불꽃 튀는 맞짱 토론

준비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나?

신수인

구체적인 범위가 없다는 점이 아닐까. 인문학이라고 하면 단순히 역사만 가리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인문학이란 게 워낙 주관적이라 면접관마다 평가 기준도 다를 것 같다.

구희승

범위가 추상적이라 준비 시간도 많이 걸린다. 인문학을 중시하는 문화가 최근 갑작스럽게 생긴 거라 이제 와 책을 사서 공부하기에 감도 안 와 준비하는 사람 입장에선 매우 난해하다.

신수인

주변의 금융권 준비생들에게 많이 듣는 이야기가 있다. 은행들이 최근 인문학 책을 읽은 감상내용을 평가하겠다고 하는데 이 인문학 책의 범위가 과연 어디까지일까라는 점이다. 그래서 대부분은 철학책을 선택한다. 하지만 인문학이라는 건 심리학이 될 수도, 문학이 될 수도 있다. 구체적인 범위를 정해줬으면 좋겠다.

이태인

인문대생한테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공대생에게는 인문학이라는 단어 자체가 어렵다. 교양으로 인문학 관련 과목을 듣기도 버겁다. 내용자체도 처음 듣는 게 많은 데다 인문대생이랑 경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양준호

중등교육 과정부터 객관식에 길들여져 있었는데 인문학 관련 주제로 에세이를 쓰라는 건 너무 어렵다.

신수인

문과생에게도 어려움은 있다. 바로 문과생은 모두 인문학에 능통할 것이라는 선입견이다. 물론 중고등학교 때 역사나 윤리 등을 배웠지만 수능공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 않았나. 또 문과도 나름인 게 경영이나 경제는 철학이나 역사보다는 수학과 더 가깝다. 이 점도 감안해줬으면 좋겠다.

새로운 인문학 평가도구를 제시해 본다면?

신수인

오픈북 형태는 어떨까. 단순히 역사적 지식이 정말 중요한 게 아니라면 역사적 사실은 주고 여기에 대해 어떻게 관점을 논리적으로 펴 나가는지를 평가하는 것이다.

구희승

인문학 소양을 단순히 취업시장에서만 요구할게 아니라 문과・이과를 양분화하는 체계자체를 불식시키는 도구로 활용할수도 있을것이다. 질문하는 문화도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답을 정해 놓고 다른사람의 생각을 틀렸다고 이야기하는 의견이 주목받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앞으로도 꾸준히 했으면 한다. 그렇게 되면 미생의 장그래처럼 스펙은 부족해도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 본 인재가 현실에서도 좋은 기업에 입사할 수 있는 날이 올지 모른다. 다만 누가 지시해서가 아니라 인사담당자들이 실제로 인문학 소양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신수인

인적성검사 등을 통해 필기문제로 내기 보다 면접 때 실제로 대화를 해 보는 방식이 좋을 것 같다. 기존에 많은 기업이 면접 때 시사나 상식에 관해 묻는데 이를 철학 등 인문학 문제로 대체하면 어떨까. 평소에 인문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어야지 시험 전 책을 사서 읽고 외워야 하는 문제는 지향해줬으면 한다.

양준호

동의한다. 계속 해줬으면 한다. 최근 단순 스펙이 직무와 밀접하지는 않다는 기사도 많이 나오고 있지 않나.

신수인

유지하는 것도 좋지만 조금 더 취준생의 입장을 고려해줬으면 좋겠다.

이태인

전 고등학교 때 문과에 있다가 교차지원으로 공대에 입학했다. 처음엔 걱정도 많았는데 막상 진학을 하니 전공에 대한 새로운 흥미가 생겼다. 중요한 건 방향인 것 같다. 기업이 어떤 인문학을 얼만큼 볼 건지 가이드라인만 확실히 제시해주면 제가 수학 지식을 극복하고 공대에 적응한 것처럼 인문학이라는 새로운 영역도 한결 수월하게 습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도희 기자(tuxi0123@hankyung.com) / 사진=허태혁 영상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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