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희의 잡토크
[한경잡앤조이=이진이 기자] 일하는 공간을 만드는 디자인 스튜디오 ‘일공오일공(105-10)’의 김란(35) 대표는 사람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디자인을 한다. 그는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건축과 공간을 소재로 공간 창업 컨설팅부터 오피스 디자인, 출판 등 다양한 일을 하고 있지만 일하는 공간을 만들 때가 가장 즐겁다고 말한다. 건물을 새로 짓기보다 이미 지어진 건물을 잘 쓰고 싶다는 김란 대표는 공간 재생과 리모델링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다.공간 디자이너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공간 기획부터 설계, 연구, 아카이빙을 하고 있다. 다양한 업종의 오피스를 디자인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퍼블리 디지털 리포트 ‘오피스 디자인 가이드’를 작성했다. 회사를 운영하는 대표들에게 일하는 공간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싶었는데 의외로 HR팀의 반응이 뜨거웠다. 또 빈집을 청년들의 창업공간으로 활용하는 프로젝트의 코디네이터를 맡기도 했다. 강원도의 빈집 10여 채를 카페, 사진관, 게스트하우스 등으로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창업과 인테리어가 처음인 멘티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창업 가이드’ 책을 썼다.”공간 디자인을 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고등학생 때 건축 전시를 보러 갔던 게 기억에 남는다. 건물 하나를 짓기 위한 스케치와 도면이 수백 장, 수십 개의 건축 모형이 압도적이었다. 막연하게 이런 도면을 이해하고 그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정말 가고 싶었던 대학교의 건축과에 갔다.공부는 정말 재밌었지만 적성에는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건물을 새로 짓기보다 이미 있는 건물을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컸다. 독립 후에는 자연스럽게 공간 재생,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맡았다.”왜 건축가보다 공간 디자이너로 불리는 게 좋은가“예전보다 설계사무소의 문턱이 낮아졌다고 하지만 건축가는 여전히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대단한 건물을 지어야 할 것 같고 예산이 넉넉해야 할 것 같지 않은가. 일공오일공은 정말 소소한 고민 상담부터 쉬운 건축 수업까지 진행한다. 특히 공간 창업을 준비하는 클라이언트는 내 또래거나 어린 경우도 많다. 몇 년 동안 회사 생활을 열심히 해서 모은 돈으로 드디어 자기만의 공간, 카페나 서점 등을 준비한다. 개개인의 사정을 듣다보면 허투루 돈을 쓸 수 없다. 그래서 건축가 선생님 보다 공간 디자이너 언니라는 호칭에 익숙해진 것 같다.”다양한 공간 디자인 중에 창업 공간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내가 일할 때 가장 즐겁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작업실부터 잘 만들려고 애썼다. 백색 소음의 정도, 최선의 책상과 의자 조합, 시간대별 간접 조명과 직접 조명, 프로젝트별 참고 자료의 위치 등을 조절하는 게 즐겁다. 내가 뭔가를 이뤘다면 절반 이상은 내 작업실 덕분이다. 그만큼 나에게 일하는 공간의 존재가 소중하다.”기억에 남는 작업을 소개한다면“모든 작업이 소중하지만 위시컴퍼니의 오피스 디자인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일하면 정말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일공오일공이 일하는 공간에 집중하게 된 계기가 됐다. 오피스 디자인을 마무리할 때마다 ‘새로운 오피스에서 회사가 더 성장해서 다음 오피스로 갈 때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고 인사를 한다. 그래서 위시컴퍼니의 매출과 직원이 늘어나고 오피스를 확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상당히 기뻤다.”공간 디자인을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그 공간에 오래 머무는사람이 편안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최우선이다. 사진을 찍으면 멋지게 나오지만 실제로 인터넷이 수시로 끊기고 방음이 전혀 되지 않는 사무실에서 하루 8시간씩 일하는 건 별로 멋지지 않다.”디자인할 때 어디서 영감을 얻나“국내외로 여행을 많이 다닌다. 하지만 올해는 맘껏 돌아다닐 수 없으니 책을 많이 읽었다. 혼자 읽는 것도 좋지만 좋아하는 책을 주제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영감을 많이 얻는다. 최근에 공간 창업을 준비하는 분들을 위한 ‘나만의 공간 온라인 북클럽’을 시작했는데 벌써부터 후기가 올라온다. 포스트 코로나시대에 맞는 공간 창업의 힌트를 북클럽에서 얻을 수 있을 것 같다.”공간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역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꼭 건축과를 졸업하거나 실내디자인을 공부해야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순수미술이나 시각디자인을 하던 분이 공간을 만들 때 훨씬 멋진 결과물이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내 공간을 만드는 것과 공간 디자이너로 일하는 건 전혀 다르다. 정해진 기간과 예산 안에 가장 최선을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일하면서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반대로 고충이 있다면“밤에 잠이 안 오면 인스타그램에 예전에 만들었던 공간들이 잘 있는지 한 번씩 둘러본다. 기대 이상으로 잘 운영되는 공간을 보면 뿌듯하다. 반면 사라진 공간을 다시 보면 슬퍼지기도 한다.”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창업 가이드’ 책에는 직장인 A의 서점에 방문할 수 있는 입장권이 들어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도 공간을 만들고 운영해야 한다. 내 책의 독자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앞으로의 계획은“‘이런 곳에서 창업을 했어요?’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공간 사례를 수집하고 있다. 건축가보다 더 훌륭한 눈을 가진 창업자들의 시선에 감탄하게 된다. 다음 책의 주제가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흥미진진하다.”공간 디자이너를 꿈꾸는 대학생들에게 조언 한 마디.“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취업’ 밖에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파리에 교환학생을 가서 가장 놀랐던 것은 내 또래 친구들이 취업보다 독립을 준비하는 모습이었다. 졸업 작품 전시를 내 회사의 첫 프로젝트라고 생각하는 태도 역시 인상적이었다. 한국도 예전에 비해 20대, 30대에 독립하는 공간 디자이너가 많아지고 있다. 대학교에 다니는 동안 본인의 관심사나 키워드를 찾아봤으면 한다. 자기만의 키워드로 몇 년 동안 꾸준히 학습하고 SNS 계정에 기록하다 보면 분명히 기회가 올 것이다.”출생연도 : 1985년생학력 :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건축과 졸업, 성균관대 글로벌경영학과 대학원 졸업경력 : 저서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창업 가이드’, 위시컴퍼니·슬로워크 등 오피스 디자인 다수 진행, 동해안 공간 기반 청년 창업 코디네이터 등zinysoul@hankyung.com[사진 제공=일공오일공]
- 구글에서 이직한 이유는 “서비스와 함께 성장하고 싶었기 때문”- 모범생의 대담한 도전 “쉽게 포기하지 않는 능력이 성공 요인”- 테크 회사, 스타트업의 전문 전략가로 성장- 청년들에게 “도전의 결과는 성장이니 두려워하지 말아야”[한경잡앤조이=조수빈 기자] 서가연(38) 틴더 한국 지사장은 10년간의 해외 생활을 마치며 틴더와 함께 국내로 복귀했다. 서 지사장은 국내에 ‘틴더 붐’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국내 서비스 이용자들의 패턴을 분석해 한국만의 ‘틴더’를 일궈낸 서 지사장은 청년들에게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했다.학창시절 서울대 진학을 목표로 공부만 했던 모범생이었다고 자신을 소개한 서 지사장은 대학 진학 후 자신의 꿈을 위한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갔다. 그는 틴더 이전 자신의 삶을 한 글자로 요약한다면 ‘도전’이었다고 설명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해외 근무를 결정하게 된 것도, IT 글로벌 대기업 구글을 그만둔 것도 자신의 성장을 위한 거대한 도전들이었다.10년간 날카로운 전략가로서 일해 왔던 그는 현재 한국의 가장 트렌디한 서비스를 이끄는 수장으로서 더 새로운 혁신을 고민하고 있다. 11월 30일 틴더 한국지사에서 서가연 한국 지사장을 만나 그의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Profile서가연 틴더 한국 지사장2006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2007~2009년 Bain 틴더 한국 지사장2018년 틴더 한국 및 동아시아 지역 총괄2019년~ 틴더 한국지사장 겸 동남아시아 총괄 디렉터학창시절 어떤 학생이었나“고등학교 때는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매사 성실한 그런 학생. 한 가지 목표를 설정하면 그것을 이뤄내기 위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한 가지를 꾸준히 오랜 기간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을 ‘그릿(Grit)’이라고 하는데 그런 능력이 돋보이는 학생이었다.(웃음)”대학생 때는 어떤 직업을 꿈꿨나“경제학을 주로 공부하다보니 미래에 대한 상상력도 관련 분야로 좁혀졌던 것 같다. 주로 선배님들이 취직한 컨설팅, 투자증권 쪽에 관심이 있었다. 방학 때 직접 인턴도 해보며 현장을 경험해본 결과 컨설팅 분야에 적성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때 경험들은 첫 직장인 베인앤드컴퍼니(Bain한 브랜드와 서비스를 처음부터 키워볼 수 있는 기획자로서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이 기회를 놓치기 싫다는 마음이 강했던 것 같다. 물론 주변의 반대와 걱정도 많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도대체 왜?’ 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킬 만큼 도전적인 선택을 했을 때 비로소 성장을 마주할 수 있었다.”틴더 한국 지사장직은 어떻게 맡게 됐나“먼저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미국으로 출장을 갈 일이 있었는데 그때 틴더에서 일하고 계시던 분에게 연락을 먼저 했다. 커피챗을 하는 동안 지사장직에 대한 나름의 욕심과 목표를 많이 이야기했다. 다행히 틴더 쪽에서도 좋은 반응이 와 2017년도부터 한국 지사장직을 맡게 됐다.”한국은 인구가 적어 시장 규모도 작을 텐데 한국 지사를 둔 이유가 있나“한국 시장은 작지만 큰 시장이다. 인구는 적지만 국내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제1서비스가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실제 구글 플레이에서도 매출이 가장 큰 세 국가를 꼽자면 미국, 일본, 한국이다. 특히 한국은 스마트폰 보급률도 높고 인터넷과 같은 통신 인프라, 결제 수단 등이 잘 갖춰져 있어 모바일 앱, 플랫폼 기업에는 진출하기 매력적인 시장이다. 물론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전략적 접근이 중요하다. 또 하나를 꼽자면 한국은 동남아시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중요한 테스트베드다. 한국에서 서비스가 잘 운영된다면 그것을 바탕으로 동남아시아 시장을 위한 전략을 짠다.”해외 지사와 한국 지사 근무 시 느껴지는 차이점이 있다면“아무래도 문화적인 차이는 있다. 대부분 의사소통 방식이나 업무 스타일에서 차이가 나타난다. 제가 주로 근무했던 플랫폼, 테크 회사는 지사별 차이가 있다기보다는 여러 지사들이 하나의 팀처럼 움직인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고 느꼈다. ‘틴더’라는 문화, ‘구글’이라는 문화. 하나의 서비스를 구축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업무가 돌아가기 때문에 회사라기보다는 하나의 팀, 하나의 문화로 업무를 했던 것 같다.”코로나19로 인해 업무형태도 변화가 많겠다“많다. 대부분이 화상회의로 전환됐다. 작년에는 한국에 있는 시간을 손으로 꼽을 만큼 해외에 나가 있는 시간이 길었다. 처음에는 출장이 줄어드니 좋다고 생각했는데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대면 미팅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틴더는 이러한 화상회의나 원격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어 적응해야 할 것은 크게 없었다. 다만 해외 여러 지사들과 소통을 하려면 밤낮이 없다는 점이 조금 힘들다.(웃음)”틴더의 국내 성공 비결은“한국은 고맥락 문화 사회다. 같은 취미를 갖고 상대를 이해하는 ‘맥락’이 있어야 새로운 사람과 친해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기존 틴더는 상대방의 프로필 사진과 간단한 소개를 보고 스와이프로 좋고 싫음을 결정할 수 있는 상당히 심플한 서비스였다. 그래서 최근에는 프로필에 취미 작성란을 추가했다. 또한 올해 9월에는 ‘세계 종말이 일어난다면 당신은?’이라는 주제로 사용자들이 선택지를 고르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틴더 프로필에 ‘스와이프 나이트’ 선택 결과를 추가해 좀 더 상대를 깊게 이해한 후 매칭을 할 수 있도록 했다.”△틴더가 운영하는 유저 스토리 캠페인 화면.단순 데이팅 앱이 아니라 ‘소셜디스커버리앱’이라는 호칭을 붙였다“틴더가 한국에서는 ‘데이팅 앱’으로 소개되기에는 문화적 차이로 인해 이해도가 떨어지거나 거부반응이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래서 틴더는 실제 사용자의 반응을 반영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처음에 틴더는 글로벌 데이팅 앱으로 소개됐지만 실제로 한국 멤버들은 틴더를 어떻게 사용하나 봤을 때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니즈가 크다는 것을 알았다. 준거집단 위주로 주변이 형성돼 있는 한국에선 자신과 접점이 없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힘들다. 그러한 점을 고려해 한국에서는 틴더를 ‘소셜디스커버리 앱’으로 재정의해 마케팅을 시작했다. 금방 새로운 사람과 연결돼 이야기도 해볼 수 있는 서비스의 직관성 역시 빠른 대중화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젊은 서비스다. 트렌드를 발 빠르게 읽는 비결은 무엇인가“유저 리서치를 빠르게 해내는 팀원들이 비결이다. 만 18세부터 25세까지, Z세대는 어떤 옷을 입고 무엇을 보는지 항상 관심 있게 찾아본다. 그런 노력의 일환이 틴더 대학생 서포터즈인 ‘틴더 플레이메이커’ 프로젝트다. 대학생들과의 지속적인 스킨십과 프로젝트를 진행해볼수록 실제 인지도 상승이나 젊은 분위기를 선도하는 등의 긍정적 변화가 느껴진다.”글로벌 리더로서 갖춰야 할 필수 소양이 있다면“Cross-functional collaboration subinn@hankyung.com[사진 제공=틴더]
[한경잡앤조이=조수빈 기자] “인도에서 한 여자아이를 만났어요. 정말 어렵게 사는 친구였죠. 그 친구에게 ‘너는 지금 행복하냐’고 물었는데 ‘행복하다’고 답하더군요. 그래서 ‘행복이 뭐냐’ 물으니 ‘걱정이 없는 게 행복이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정말로 불행하지 않냐’ 물었더니 ‘불행이 뭐냐’고 묻더군요. 한 방 맞은 것 같았죠. 그런 세상을 알려주고 싶어요. 행복하지 않음이 곧 불행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줄 수 있는, 짊어진 짐을 나눠들 수 있는 그런 목사가 되고 싶어요.”김진 목사는 1981년에 신학 공부에 뛰어들어 올해로 40년째 한 길을 걷고 있는 목사다. 그는 최근 종교인에 관한 이슈들에 대해 안타깝다고 답했다. 그는 “특히 목사나 기독교, 특히 개신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구축된 상태”라며 “한국 기독교는 빠른 성장을 이뤄냈다. 그러면서 성숙하지 못한 부분들이 분명 존재한다. 그러한 성장에서 오는 부작용들이 사회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김 목사는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워진 사회에 목사로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한다. 기본에 충실한, 목사다운 목사가 되자는 초심을 되새기며 끊임없는 수련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웃었다.Profile김진 목사독일 프랑크프르트 대학 신학부 박사크리스챤 아카데미 선임연구원밀알복지재단 사목 및 디아코니아 연구소 소장성공회대, 이화여대 겸임교수‘종교인의 삼인삼색’으로 방송 출연현재 목사이자 비영리단체 상임대표이기도 하다“목사로서 일반교회 협력목회도 하고 있지만 지금은 비영리단체인 ‘(사)글로벌블레싱’의 상임대표로서 활동하고 있다. 이 일을 시작한 지는 1년이 조금 넘었다. 글로벌블레싱은 주로 세계의 장애인을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 중점적으로 하는 사업은 북한 장애인을 돕는 일이다. 북한도 여러 상황이 어렵지만 약자 중의 약자인 장애인들과 함께하고자 시작된 사업이다.”종교인들의 비영리단체 진출은 흔한 편인가“많은 종교인들이 NGO 활동을 하고 있다. 사회에서 선뜻 나서서 하기 어렵고 힘든 일들을 종교인들이 담당한다. 비영리단체는 외국인 노동자부터 장애인까지 여러 방면을 조명하는 갈래가 있다. 실제로 종교기관이 자체적으로 산하 사회복지 기관을 만들기도 한다.”목사의 길을 선택한 계기가 있나“사실 어떤 직업을 선택하는 것처럼 ‘목사가 되겠다’를 결심하는 종교인들은 많이 없지 않을까. 오히려 받아들인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저 같은 경우 7살 때 목숨이 위험한 사고를 겪은 적이 있었다. 기적적으로 깨어난 이후 사춘기와 함께 삶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어떻게 살아날 수 있었을까’, ‘하나님은 왜 날 살리셨을까’와 같은 고민이었다. 그러다 고2 때 갔던 기독교 수련회에서 나름의 영적인 체험을 했던 것 같다. 성경이 읽히기 시작하니 형식적으로 다니던 교회도 재미있어졌다. 평생 성경 연구를 하고 살 수 있는 직업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신학대학을 진학하게 됐고 자연히 목사가 되는 길로 들어섰다.”목사가 되는 과정은 어떻게 되나“두 가지가 있다. 학부 때부터 신학을 전공하거나 아니면 다른 전공을 공부한 후 신학대학원에 진학해 동일한 과정을 밟으면 된다. 학력으로 보자면 원래 목사도 의사처럼 6~7년 과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줄었다. 목사 역시 의사처럼 다양한 분야의 공부가 필요하다. 신학뿐만 아니라 심리학, 교육학, 설교학, 상담학 등 여러 분야를 공부해야 한다. 4년의 대학과정을 밟은 후 3년의 신대원 과정을 지나 강도사, 준목 등 일종의 인턴 과정을 거치고 나면 목사고시를 볼 수 있다. 그것을 통과하면 공식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다.”많은 공부가 필요해 보인다“의사는 육체의 병을 고치지만 목사는 마음의 병을 고친다고 말한다. 실력 없는 의사가 수술이나 진단을 하는 것이 위험하듯 목사도 마찬가지다. 끊임없는 공부가 필요하다. 충분한 공부 없이 목회를 하거나 교회를 운영한다면 이단이 되거나 더 큰 어려움에 처하는 등 문제가 생길 수 있다.”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일반 목사는 주로 새벽 기도회를 나간다. 그 이후에는 목회 관련 행사를 준비하거나 교인들을 만난다. 가장 큰 일정은 예배를 인도하기 위한 설교 준비다. 이외에는 교인들의 일상을 돌아보고 상담을 하거나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다.”많은 사람들 앞에서 설교를 해야 한다.어렵지 않나“교과과정에 ‘설교실연’이라는 과목이 있다. 한 학기 내내 동료들 앞에서 직접 설교하고 평가를 받는 시간이다. 기본적으로 성경을 잘 해석했는지, 말하는 태도는 어떤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을 하는지 등 설교자로서 기본적인 훈련을 한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하기 때문에 실제 교회에서 설교를 해가며 조금씩 성장하는 것 같다.”월급이 따로 있나“목사들은 매월 정기적으로 돈을 받기는하지만 그것을 ‘월급’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사례비’라고 한다. 목사는 수익에 상관없이 일하고, 그것에 대해 교회와 교인들이 감사한 마음의 보답으로 드린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러나 아마 최저임금도 못 받는 목사가 60%는 될 것이다. 최근에는 교인이 적어지고 목사는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더 힘든 상황이기도 하다. 교회 일을 하며 다른 일도 겸하는 이중직 형태도 늘어나고 있다. 새로운 현상 중 하나라고 보면 될 것 같다.”교인이 많이 줄었나“모든 기독교 교단을 불문하고 옛날보다는 많이 줄었다. 목사를 지망하는 각 신학대학의 학부생도 많이 줄어든 편이다.”해외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고. 특별히 기억에 남는 국가가 있나“독일에서 유학을 해서 유럽이 익숙하지만 더 기억에 남는 건 인도다. 인도에서는 10년 정도 생활을 했다. 3년 정도를 투자해 마을 사람들을 위한 공동 센터를 만들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인도의 날씨, 환경, 문화 등 여러 가지 충돌이 많았음에도 목표한 바를 이뤘다는 것이 감격스럽게 느껴졌다.”미디어에 등장하는 목사, 실제 목사가 바라보기에는 어떤가“대부분 영화에서 좋게 나오는 건 신부님이다.(웃음) 목사는 항상 사이비, 나쁜 쪽으로 묘사가 된다. 그러던 중 최근에 신선하게 본 것은 ‘사바하’라는 영화다. 배우 이정재가 종교문제연구소에서 이단을 파헤치는 목사로 등장한다. 이정재가 연기한 목사는 기존의 목사 이미지를 완전히 파괴하는 캐릭터다.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말을 함부로 하는 목사를 연기하는 영화 내 이미지를 보면서 차라리 신선하다고 느꼈다. 가식적이지 않은 모습이 좋았다. 오히려 종교인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높은 기대치를 뒤집어 솔직하게 표현했다. ‘자유분방하지만 잘못되지 않는 목사’의 이미지였다.” 종교인으로서 마주하는 사람들의 편견도 많다고“일종의 선입견의 하나인 것 같다. 물론 종교인으로서 사회에 봉사하고 하나님의 가르침, 사랑과 섬김 등 다양한 덕목을 지켜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런 본질적인 것 외에 외형, 문화적인 면 등에 대한 이미지가 특히 한국에서 강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독일에서는 목사들이 예배 끝나고 교회 앞에 모여서 담배를 피우기도 한다. 제가 파마를 하면 ‘목사님도 파마를 하시냐’고 하는 분들도 있다.(웃음)”목사로 살아가며 가장 어려운 점이 있다면“목사도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일반적인 가치와는 다른 가치를 지향한다. 그렇기 때문에 삶의 현실에서 세상의 가치와 지향하는 가치가 갈등되고, 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가장 힘들다. 모든 종교인이 공감하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타협을 할 것인지, 지향점을 위한 결단을 내릴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쉽지 않다. 그러한 현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더 큰 행복으로 안내하는 과정 또한 힘들다. 삶의 변화에 동기 부여하기란 참 무겁고 어려운 일이라고 느껴진다.”늘 타인의 고통을 공유하는 과정 역시 많은 체력 소모가 있을 것 같다“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내공(영성)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영성을 깊이하고 성숙하게 하는 과정이 없다면 내적으로 탈진하게 된다. 목사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강박이나 우울증 등으로 고생하기도 한다. 그럴수록 기도나 명상을 통해 자신을 잘 돌아보며 다스리는 과정이 필수적이다.”종교인으로서 지키고 싶은 자신만의 철칙이 있다면“목사 안수를 받을 때 다짐한 나만의 화두가 있다. ‘목사답지 않은 목사이면서 정말 목사다운 목사가 되자’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기존의 목사들이 갖고 있던 쓸데없는 권위의식이나 허위허식, 경직성을 버리고 열려있고, 그러면서도 진실한 목사가 되고 싶었다.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전하고 예수님이 이 땅에 보여줬던 삶을 사람들과 함께 펼쳐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 그런 목사가 되기 위해 오늘도 노력 중이다.”취준생에게 해줄 만한 조언이 있다면“취준생의 가장 큰 목표는 직업을 갖는 것이겠지만 자신의 삶을 좀 더 멀리 내다보며 비전을 가졌으면 좋겠다. 특히 ‘실력과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실력은 자기가 하고 싶은 전공 분야, 일하고 싶은 영역에 지식과 경험을 충분히 쌓음으로써 생기는 힘이다. 먼저 이 실력을 갖춰야 한다. 그 다음에는 능력. 즉 그 실력을 제대로, 적절하게 펼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이 두 가지 힘을 기르고 적절하게 균형을 이룰 수 있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subinn@hankyung.com
-세종시 아파트 분양권 포기“아쉽다기보다 잘한 결정이라 생각”-어린 시절부터 확고했던자의식“현모양처가 아닌 내이름 석자로 살고 싶었다”-대학생 때는 기자가 되고 싶어 언론고시를 준비하기도-공직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청렴’, 필요한역량은‘조직 내외 관통하는 커뮤니케이션 스킬’-청년들에게“스스로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지고 매사집요하게 임해야”[PROFILE]김경선 여성가족부 차관1969년생2020.09 ~ 여성가족부 차관2019.09 고용노동부 기획조정실 실장2018.10 고용노동부 노동정책실 근로기준정책관2017.02 고용노동부 고용정책실 청년여성고용정책관2016.01 고용노동부 고용정책실 노동시장정책관2014.03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상임위원2012.01 고용노동부 대변인2011.12 대통령실 국정기획비서관실 선임행정관2010.08 고용노동부 노사정책실 노사협력정책과장2008.03 고용노동부 노사협력국 노동조합과장2006.08 고용노동부 여성고용팀장2004.08 고령화 및 미래사회위원회 파견2003.07 고용노동부 고용정책실 노동시장기구과1992.04 제35회 행정고시 합격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박사미국 인디애나대학교 로스쿨 석사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정책학과 석사서울대학교 영문학과 학사영주여자고등학교 졸업[한경잡앤조이=김병일 편집장 / 장예림 인턴기자] 김경선(52) 여성가족부 차관은 고용노동부에서 28년간 노동정책 전문가로 공직생활을 이어오다 올 9월 여가부 차관으로 영전했다. 여성고용과 노사관계 등의 노동정책 수립 최일선에 있었던 김 차관은 ‘가족돌봄휴가’와 ‘배우자 출산휴가’ 등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김 차관은 1969년 경북 영주에서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나 영주여고를 거쳐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서울대 정책학 석사, 미국 인디애나대 로스쿨을 거쳐 서울대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1992년 행정고시(35회) 합격 후 줄곧 고용노동부에서근무했던김 차관이지만 그에게 여성가족부는 그리 낯선 부처가 아니라고 한다. 2004년 고령화 및 미래사회위원회 대통령 직속 자문위원으로 파견 근무를 했던 김 차관은 당시 고용평등을 촉진하기 위한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등 여성 고용과 관련한 정책 수립에 앞장선 이력이 있다. 또남녀 간의 고용차별을 없애기 위한 법안 마련에도 일조했으며, 2017년에는고용노동부 청년여성고용정책관을 지내기도 했다.28년간 노동정책 전문가로 공직생활을 보낸그는 이제 ‘젠더이퀄리티’(성평등)를 위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 중이다. 11월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김경선 여성가족부 차관을 만나 그의 공직생활과 걸어온 길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학창 시절이 궁금하다. 어린 시절 어떤 학생이었나“또래에 비해 자의식이 강한 여학생이었다. 고등학교 윤리 수업 시간 글짓기를 했던 게 떠오른다. ‘수많은 나’라는 주제의 작문 과제가 주어졌다. 그 당시만 해도 같은 반 여학생들은 현모양처나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가 되고 싶다고 써냈다. 반면에 나는 내 이름 석자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작문에도 이 내용을 반영해 썼다. 성별에 맞춰 저의 가능성을 국한하지 않고 ‘나’로서 성장하겠다는 생각이 확고했다.”부모님은 어떤 분이셨나“양친은 경북 영주에서 농사짓던 평범하고 성실하신 분들이셨다. 부친께서는 경상도에서 나고 자라셨고 다소 엄한 부분이 있었지만, 형제들에게 차별은 않으셨다. 저는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집안은 전체적으로 명분과 명예를 중요시하는 분위기였다. 자손이 있는 한 제사를 계속 모시도록 하는 불천위(不迁位)제사를 지낼 정도로 집안이 유교적이고 명예도 중시했다.″어릴적 장래희망은 무엇이었나“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진로교육이 활성화 돼 있지 않았던 시기라, 특별하게 어떤 직업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해 보지는 못 했다. 물론 부모님께서는 한평생 제가 판검사나 공무원이 되길 원하셨다. 하지만 나는 그 당시만해도 공직자가 되어야겠다는 확고한 신념은 없었기에 일단 공부를 열심히 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서울대 영문학과에 진학했고, 대학에 입학해서는 줄곧 언론인이 되고 싶었다.”실제로 아나운서 시험도 치렀다고“대학 입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학내 방송국 아나운서로 지원해 면접을 봤는데 떨어졌다(웃음). 사투리를 쓴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아나운서는 떨어졌지만 기자직으로 붙었다는 걸 꽤 시간이 흐른 후에 알았다. 이후 언론고시 스터디도 꾸준히 하고, 신문도 많이 읽으면서 언론고시 공부를 했었는데 그냥 신문 읽는 건 재미 있어도 매번 발제를 해가는 게 부담이 되더라. 아마 당시 학내 방송국원으로서 활동을 이어갔다면 지금쯤 언론인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언론인을 꿈꾸다가 공무원으로 진로를 변경하게 된 계기는 부친의 영향이 컸다고 본다.”△1991년 2월 김경선 차관(왼쪽 두번째)과 서울대 영문학과 졸업 동기들.(사진 제공=김경선 차관)대학시절 기억에 남는 써클활동이 있다면“영문과 학회활동을 참 열심히 했다. 학부 선배들의 지도 아래 영미문학을 공부하고 발표하는 활동을 했었는데, 그 때부터 여가부에 올 운명이었는지 페미니즘 문학에 대해서 많이 다뤘다. ‘제인에어’나 ‘테스’ 등의 작품을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하는 과정들이 재미있었고 기억에 오래 남아있다.”행정고시에 빨리 합격했다고 알고 있다“수험생활을 1년 반 정도 했으니, 빨리 합격한 편에 속한다. 비결이라고 특별한 건 없는 것 같다. 노력도 했고, 운도 많이 따라준 덕분이 아닐까. 시험과 관련해서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시험 직전에 바꾼 선택과목 ‘사회정책학’에서 최고득점이 나왔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같이 고시 공부를 하던 친구의 책에서 본 개념이 그 해 당락을 가르는 서술문제로 나왔던 것이다. 운이 좋았다.”△1992년 행정고시35회 중앙공무원 연수원에서 김경선 차관(가운데)과 그의 동기들.(사진 제공=김경선 차관)최근 세종시 아파트 분양권을 포기해서 화제가 됐다“세종시 이전기관 소속 공무원에 대해서는 세종시로 주거를 이전하라는 취지로 특별분양형태로 분양권을 추첨에 의해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있었다. 단순 추첨제라 당첨이 되기도 하고 되지 않기도 한다. 저는 운좋게 당첨이 되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인기지역이었다. 하지만 최근 세종시 이전 기관 직원 특별분양제도에 대한 특혜논란이 일부 제기되었고, 제가 여가부로 오게 되면서 세종시 거주 필요성도 없어져서 최종적으로 포기하게 됐다.”아쉬운 점은 없는지“물론 분양권을 포기할 경우 계약금까지 물어내야 하기 때문에 고민을 아예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의도치 않게 공직을 통해 일정 보수 이상의 혜택을 보는 것은 오랜 마음의 짐이 될 것 같아 과감히 포기했다.”포기 결정에시아버지 조언의 영향이 컸다고“그렇다. 시아버님은 방수제 제조 시공업체를 설립해 운영해 오시다가 풀뿌리 민주주의인 서울시 첫 지방의회 의원을 4차례 하시고, 시의회 의장까지 지내신 분이다. 15년의 의정활동 기간동안 개인 사업의 막대한 경제적 손실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나 서울시 산하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계약은 일절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서울시에 업체등록을 자발적으로 취소하셨다. 시아버님이 이번 분양권을 두고 이 말씀을 하시며 공직자로서 가장 큰 덕목은 ‘청렴’이라고 강조하셨다. 저도 포기하고 나니 아쉽다기보다 잘했다고 생각한다.”고위공직자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많은 역량들이 요구되겠지만 그 중에서도 현직에서 가장 많이 요구되는 역량은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아닐까 싶다. 법안을 만들고, 예산을 집행하는 데에 있어 이해관계자들에게 그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설득하는 과정은 필수적으로 따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도나 사업의 필요성을 잘 설명하고 이해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중간자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고위직 공무원 시험을 볼 때 역량 테스트로 면접관이 공격적인 질문을 하기도 한다.”△1992년 행정대학원 야간반 MT에서 김경선 차관(가운데)과 그의 동기들.(사진 제공=김경선 차관)여성가족부는 어떤 부서인가“적지 않은 분들이 여성가족부는 여성만을 위한 부서라고 오해하시는데, 여성가족부는 결코 여성만을 위한 부서가 아니다. 사회의 최종 목표인 양성평등을 이룩하기 위한 부서라고 볼 수 있다. 여성가족부의 영문명도 ‘Ministry of Gender Equality and Family’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성부는 특히나 타 부처와 협력할 일이 굉장히 많다. 우리만의 힘으로는 양성평등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산업, 경제, 고용 등 모든 부문에서 노력을 해가야 한다. 앞으로도 다양한 정부기관들과 함께 서로 협업하고 연계하며 양성평등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 갈 것이다.”공직생활과정에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면“제가 공직생활의 대부분을 고용노동부에서 보냈는데 사무관 때 공정거래위원회에서 1년 정도 근무한 적이 있다. 그 당시 공정거래위원회에는 여자사무관이 전무했다. 고용노동부에서는 여자사무관도 주말 일직으로 당직을 했는데 공정거래위원회를 갔더니 당직을 면제를 해주더라. 제가 이상해서 저도 당직으로 하겠다고 했더니 그 당시 운영지원과에서 굳이 안 해도 되는데 왜 하려 하냐고 오히려 당황해하더라. 여자라고 일부러 배려해 준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저는 여자라고 일부러 봐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동일한 기회를 주는 것이 오히려 형평에 맞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여성을 배려한다고 하면서 더 중요한 기회에서 소외하는 것은 결코 여성을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많은 분들이 아실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그렇지가 않았다.”존경하는 분이나 멘토가 있나“제가 사무관으로 지낼 때 두 분의 국장과 함께 공직 생활을 보냈는데, 그 두 분을 참 존경했다. 두 분의 결은 사뭇 달랐는데 한 분은 원리원칙주의 공무원으로 기본적인 소양이 짙으신 분이었고, 다른 한 분은 후배들에게 정도 많고 업무에 대한 열정이 강하신 분이었다. 멘토라고 해서 대단한 사람이 있다기보다 수년간 공직생활을 하며 만난 한 분 한 분 모두가 저에게 멘토이다. 좋은 리더십은 하나로 규정돼 있다기보다 자기 고유의 결을 찾아서 그 결을 잘 발전시키는 데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나무도 제각각의 고유한 결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청년들에게 조언을 하자면“무엇이든지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열정을 가져야 한다.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열정이 없으면 가장 편한 직업이 공무원이다. 공무원뿐만 아니라 어떤 일이든 이 일을 꼭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 이유를 스스로 깊게 고민해 보고 마음 속에 새기길 바란다. 또 자신이 원하는 바가 있다면 끝까지 파고들길 바란다. 스스로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지고 매사에 집요하게 임하길 바란다.”kbi@hankyung.com[사진=서범세 기자]
-씽씽, 2019년 11월 LG전자 로봇 인터랙션팀 리더 김상훈 CTO 영입-국내 최초‘교체형 배터리’로 안전성 확보와 비용 절감-전기전자 전공해 남들따라 대학원 진학… 선배와 함께 한 벤처경험이 인생 바꿔-자율주행 전동 킥보드가 곳곳의 데이터 수집… 영화가 현실화 될 것[한경잡앤조이=이도희 기자] 만 13세부터 전동 킥보드를 탈 수 있도록 한 개정 도로교통법이 12월 10일부터 시행된다. 기존 킥보드 업체는 킥보드 가입 조건을 낮추지 않는다는 계획이지만안전성이 특히 중요해지면서 이들 업체 개발자들도 비상이 걸렸다.공유 킥보드 ‘씽씽’을 운영하는 피유엠피는 2019년 11월,LG전자 출신의 김상훈(44) CTO를 영입했다.김상훈 CTO는 지난해 씽씽 합류와 동시에 국내 최초로 교체형 배터리를 도입했다.특히 중국에서 수입하던 것을 국내 업체와의 협업으로 국산화 하면서 안전문제 발생에 따른 즉각적인 개선을 가능케했다.LG전자에서로봇 인터랙션팀을 이끈김상훈 CTO는 3년 전 출장으로 떠난 미국에서‘전동 킥보드’ 붐을 목격한 뒤인공지능을 모빌리티에 결합한다면 상상을 뛰어넘는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현재는골목 구석구석을 다니는 씽씽을 활용해 도심 데이터를 구축, 자율주행 기술에 적용하기 위한 연구에 돌입했습니다. 가까운 미래에는 ‘씽씽’의 배터리를 직접 교체·수거할 수 있는 자율주행 로봇도 탄생할 것입니다.”도로교통법 개정에 따라 킥보드의 안전성 확보가 특히 중요해졌다. 씽씽은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나“씽씽에 합류하면서 가장 먼저 배터리를 개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존에는 배터리를 중국에서 수입해 사용했는데, 만약 제품에 문제가 발생해도 해외업체와는 즉각적인 소통이나 개선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 상태로라면 배터리가 이 사업의 큰 리스크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씽씽은 국내 최초로 교체형 배터리를 사용하고 있다. 통신 전문업체인 피플웍스와 협력해 국내 LG화학의 배터리 셀을 기반으로 확보해 자체 배터리 팩을 제조하고 있다. 교체형 배터리로 비용도 절감했다. 후발주자로 시장에 진입하면서, 몸체 충전에 상당한 비용이 든다는 것을 발견했다. 다른 업체들은 일체형 배터리를 사용하기 때문에 킥보드를 충전하기 위해선 몸체 자체를 들고 가 충전한 뒤 다시 가져다 놓아야한다. 성수기에는 평균 5000대를 운영하는데 이중 절반인 2500대는 매일 교체가 필요하니 상당한 비용지출이 발생하는 것이다. 교체형 배터리를 적용한 뒤엔 배터리만 갈아 끼우면 돼 운영비를 대폭 절감할 수 있었다.”배터리에 결함이 있을 경우에는 어떻게 대처하나“배터리가 발이 닿는 바닥에 내장돼 있기 때문에 킥보드를 사용할 때마다 배터리에도 충격이 많이 가해진다. 킥보드가 생각보다 험하게 사용된다. 주차된 킥보드를 밟고 지나가거나 차가 치고 지나가는 경우도 많다. 또 기기 한 개당 한 달에 500~600km를 달리기 때문에 쉽게 닳는다. 이밖에 침수, 노화 등 여러 문제에 노출되기 때문에 배터리에 이런 충격이 덜 가해지도록 하는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는 TMS라는 운영 서버를 이용해 원격으로 안전점검 모니터링을 실시해 문제가 있을 경우 수리를 하거나 조기 폐기 처리한다. 또 배달앱 ‘띵동’과 파트너십을 맺고 ‘마스터’라 부르는 라이더들이 배터리 관리와 수리, 서비스 제공 상태 등을 수시로 점검하도록 하고 콜센터도 운영한다. 이밖에도 전문가와 함께 배터리팩 기술 연구를 하고 있다.”이사님의 대학시절이 궁금하다. 어떻게 사회생활을 시작했나“전기전자공학을 전공해 다른 친구들처럼 평범하게 공부하고 또 남들처럼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때 반도체 칩 설계 분야가 붐이었기에 칩 설계를 전공했는데 공부 중에 이 흐름이 꺾이기 시작했고 대신 2차 벤처붐이 일었다. 그러면서 기회가 닿아 선배들과 같이 벤처를 시작해 로우레벨 소프트웨어를 다뤘다. 12년간 벤처에 있다가 LG전자로 이직해 기술기획을 담당했다. 헬스케어, 미용, 인공지능, 로봇 네 가지 영역의 신기술을 연구하면서 ‘프라엘’을 정식 사업화하는 데도 힘을 보탰다. 그 뒤에 로봇 인터랙션팀으로 이동해 리더 역할을 했다. 로봇 인터랙션은 결국 인공지능 기술을 로봇과 인간의 인터랙션 행위에 적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인공지능 전문가는 아니지만 하드웨어·소프트웨어·인공지능의 종합 결과물인 로봇을 연구하며 많은 것을 경험했다.”씽씽에는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벤처에서 대기업으로 이직한 건 체계적인 업무 환경이나 선후배관계 등 문화를 배우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언젠가 스타트업으로 돌아가겠다는 마음은 항상 있었고 지인을 통해 윤문진 피유엠피 대표를 소개받아 합류하게 됐다. 3~4년 전 미국에 출장을 갔을 때 이미 킥보드가 현지에서 매우 유행하고 있는 것을 봤고 씽씽이 모빌리티 업체였기에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서비스 업체에서 CTO역할을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은 있었다. 하지만 막상 와서 보니 서비스에 투자하긴 해도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하는 회사였기에 기여할 게 많을 것 같았다.”현재 씽씽에서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전동킥보드의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개발 그리고 프론트엔드(front-end)와 백엔드(back-end)를 모두 포함하는 서비스 소프트웨어 개발 전체를 책임지고 있다. 벤처기업에서 경험했던 하드웨어 및 시스템 개발, 품질관리 역량과 대기업에서 쌓은 인공지능 및 로봇 분야의 새로운 기술을 접목해 가고 있다.”새로 개발중인 기술이 있나“2021년 상반기 중 블랙박스 기능이 탑재된 킥보드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할 계획이다. 킥보드 사용자가 경각심을 갖고 안전 운행하도록 유도하고, 선명한 사고처리가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킥보드 운행에서 특히 중요한 게 제동력이다. 기존 전기 브레이크는 제동력이 강하지 않아서 후륜 브레이크를 추가해 브레이크 성능을 강화하는 등 모터 및 컨트롤업체와 계속 실험중이다. 브레이크 패드도 노화를 늦추는 강한 물질로 대체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 타이어도 광폭으로 바꾸고 소프트하게 요철구간에 충격이 덜하게 할 계획이다.”전동 킥보드가 교통수단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보나“씽씽은 킥보드를 새로운 교통수단으로 만들기 위해 플랫폼을 공개해가고 있다. 최근 티머니가 운영하는 통합 이동 서비스 플랫폼 ‘티머니고’에 씽씽이 킥보드로 합류하게 됐고 대구 스마트 시티 국책사업에 선정돼 하나의 교통수단으로서 실증 테스트 중이다. 교통카드와의 연계도 준비 중이다. 내년 상반기 중NFC(Near Field Communication) 기능이 탑재된 킥보드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할 계획이다.”킥보드의 미래를 전망한다면“킥보드는 길이 있는 곳은 모든 곳을 다니게 될 것이다. 그러면 모든 길이 있는 곳의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게 되고 카메라 및 몇 가지 센서를 탑재해 향후 로봇이 다닐 수 있는 가상의 길을 만드는 데이터로 활용될 것이다. 씽씽은 킥보드의 자율주행보다는 전동킥보드를 운영하는 장치들의 자율주행에 집중하고 있다. 킥보드의 대여 및 반납 위치와 인공지능, 빅데이터가 결합해 사용자가 필요한 시간 필요한 곳에 킥보드를 배치해 시간대별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위치에 광고를 넣거나 사람들이 많이 찾게 만드는 위치로 만드는 등의 역할을 해 나가게 될 것이다. 아직까지 우리는 수 십 만대 장치들이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데이터를 수집해주는 세상을 영화나상상 속에서만 봤다면 이제 씽씽이 전동 킥보드를 통해 현실화 해 가고 있는 것이고 그 이후는 아무도 모른다.”앞으로의 계획 또는 목표가 궁금하다“궁극적인 목표는 킥보드가 대중교통의 하나로 자리매김하도록 하는 것이다. 계단 외의 모든 지면에 킥보드가 다니게 하고 싶다. 이렇게 되면 킥보드에 카메라나 미세먼지 온·습도 센서 등을 달아 다양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전동 킥보드의 가치는 교통수단 그 이상이 될 것이다.”tuxi0123@hankyung.com[사진=이승재 기자]
[한경잡앤조이=이진이 기자] 최근 부동산 신탁업계가 성장세인 가운데 신입·경력직 인재 채용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부동산 개발사업에서 신탁업계에 대한 수요 증가로 사업 수주가 늘고 있어서 당분간 인재 채용이 지속될 전망이다. 현재 경력직 상시 채용을 진행 중인 KB부동산신탁의 영업본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조성준(31) 과장을 만나 신탁영업 직무는 어떤 일을 하는지 들어봤다.어떤 업무를 맡고 있나“영업본부에서 6년째 근무하고 있다. 주된 업무는 수탁된 부동산에 건축물을 짓고 분양하며 완성 건물로써 가치를 만드는 과정 중에 참여하는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에스크로(escrow) 포지션의 업무를 수행한다. 하나의 부동산 개발사업이 우리 회사에 수탁(수주) 되는 과정부터 해당 사업이 마무리되기까지 프로젝트 전반에 대해 관리하고 모니터링하는 등 대외적으로 건축주의 업무를 수행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근무 분위기는 어떠한가“부동산 관련 금융업을 영위하는 회사로 경험과 네트워킹이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선배에게 질문하고 배우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 작은 실수가 큰 실수로 이어질 수 있어서 근무 분위기 자체는 내부 통제가 강하고 엄격한 편이다. 업무적인 부분 외에는 구성원 간 가족처럼 편안한 분위기다.”신탁영업 직무에 지원한 계기는 무엇인가“회사의 수익창출이 어떤 과정으로 발생하는지 자세히 배우고 싶어서 지원하게 됐다.”신탁영업 직무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한국은 개개인의 부동산 소유욕이 강하고 개인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이 일을 통해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관심을 갖는 한국 부동산이 어떻게 개발되는지 간접적으로 많이 배운다. 이 경험을 하면서 부동산 개발 과정에서 본인이 성취하고 싶은 분야를 더 탐색해보는 것도 가능하다.”일을 하면서 중점에 둬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는 회사의 법률, 기술, 리스크 등 관계 부서의 검토를 거쳐야 한다.”신탁영업 직무를 잘 수행하려면 어떠한 역량이 필요한가“우선 코디네이션 능력이 필요하다. 여러 이해관계자들 중심에서 신의성실 의무를 다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당사자들 간 의견을 조율하고 협의점을 찾아 사업을 원만하게 이끌어가야 한다. 또 영업 직무에 있어서 사람 간 네트워킹 능력은 두말할 것 없이 가장 필요한 역량이다.”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담당하고 있는 프로젝트 1사이클(cycle)을 마쳤을 때다. 수탁부터 수익이 정산되는 전 과정을 마쳤을 때 보람을 느낀다.”최근 부동산 신탁업계가 성장세다. 앞으로의 산업 전망은 어떠한가“지난해 하반기 3개의 신탁사가 설립되면서 신탁시장이 레드오션화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신탁업을 초고속으로 성장시키는데 일조한 책임준공 관리형토지신탁과 같은 상품을 개발하고 보완해 나간다면 현재의 업역보다 훨씬 확장된 신탁시장이 열릴 것으로 기대한다.”책임준공 관리형토지신탁은 무엇인가“앞서 에스크로 역할을 수행한다고 했다. 에스크로를 넘어서 부동산 개발 사업 PF(project financing)에 우리 회사의 신용으로 시공사의 책임준공에 대한 2차 보완을 하는 것이다. 시공사가 책임준공이라는 걸 약속하고 개발 사업을 진행하는데, 한 개발 사업이 2년 정도 걸리다 보니 그동안 시공사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시공사가 부실해서 부도 등으로 건물의 준공이 불가하거나 지연돼 PF 대출금의 회수가 어려워지면 금융기관에서는 자금을 빌려줄 때 신뢰할 수 없다. 이때 우리 회사의 신용을 통해 해당 사업의 책임준공을 한 번 더 약속해 주는 것이다. 회사의 신용보강에 대한 수수료 비용을 받는 상품이다.”KB부동산신탁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는“단기적인 목표는 영업 부서에 있는 만큼 영업을 잘하는 것이다. 제가 키맨이 돼 사업의 담당자로써 회사의 수익 창출에 기여하고 싶다.”신탁사 취업을 희망하는 대학생들에게 조언해 준다면“기본을 갖추고 다른 사람들에게 뒤처지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스펙이 전부는 아닌 것 같다. 저는 이 회사에 대한 관심을 많이 표현했던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당시 면접을 함께 봤던 친구들에 비해 신탁사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다고 자부한다. 높은 스펙을 쌓고 당장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보다 어떤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고민하고 관련 경험을 쌓으면서 이 일이 나와 맞는지 파악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zinysoul@hankyung.com[사진=이승재 기자]
[한경잡앤조이=장예림 인턴기자] 하루를 무사히 보낸 우리에게 낯선 두 글자‘죽음’. 이 두 글자와 27년째 함께하고 있는 명장이 있다. 바로 유재철 대한민국 장례문화원장이다. 대한민국전통장례 명장 1호이자 국가 무형문화재 111호 사직대제 이수자인 그가 생각하는 죽음은‘축복’이라고 한다. “죽음을 알면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다. 혹자가 묻길, 어떻게 하면 잘 죽는 거냐고한다. 잘 사는 게 잘 죽는 것이다.”1994년부터 장례 일을 해오고 있는유 원장은 2006년 최규하 전 대통령 국민장을 시작으로 노무현,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장례를 직접 지낸 뒤 ‘대통령 염장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기회라는 게 엉뚱하게 생기잖아요. 친구 따라서 장의사가 됐는데 하다 보니까 잘 맞고 보람도 돼서 여기까지 왔지요. 전통장례 전문가가 되리라고 생각이나 했겠어요.”유 원장은 2002년부터 해인사, 통도사 등 전국의 사찰을 돌며 불교 장례(다비, 茶毘)에 대한 연구도 지속적으로 했다. 2013년 10월부터 지금까지 80번의 다비를 진행한 유 원장은 ‘사람 중심’의 장례문화를 바로 세우는 게 장의사로서 마지막 목표라고 한다.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인생의 손님 ‘죽음’. 그 죽음을 일상에서마주하고 있는 유 원장을 직접 만나보았다.일을 처음 시작할 때 ‘사(死)자’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나“어릴 적부터 집안의 어른이 돌아가면 집안에서 직접 염을 했다. 제가 처음 염을 하게 된 것도 조모 염을 할 때 아버지를 도와드리려고 들어가서 처음 했었다. 당시 나이 20살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다른 집안에서도 염을 그렇게 하는 줄 알았다. 외부의 도움은 받지 않고 관만 사서 오고 나머지는 우리 집안사람들이 다 했다. 수의, 상복도 어머님과 외숙모님께서 직접 지어서 장례를 치르곤 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랐다 보니 장례에 대해 큰 거부감이 없었다.”본격적으로 ‘염’을 하게된 시기는 언제인가“1994년이었다. 친구 중에 장의사 일을 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장의사라는 직업은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직업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그 친구가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며 함께 장의사라는 길을 걷게 되었다. 집안 어른들이 염을 하는 모습을 보며 어깨너머로 배운 것도 (계기로) 빼놓을 수 없다.”역대 대통령들의 염을 직접 하셨다고 들었다“전직 대통령 중에 2006년 최규하 전 대통령이 임종하셨을 때 도움을 드렸던 것이 역대 대통령 중에서는 처음이었다. 그 당시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지 27년 만에 지내는 대통령 장례였기에 정부에서도 매우 막중한 국가 행사로 여겼다. 27년이라는 시간 동안 전문 장의사 혹은 장례전문가가 없었기에, 그 당시 장례 쪽으로 가장 경력이 많았던나에게 자연스럽게 의뢰가 왔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대통령 장례에 대한 분석이나 기록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조선 왕실의 염습 및 입관 의식부터 역대 대통령 장의록을 분석해 명정 문구와 축문 양식 등 세세한 부분까지 문헌의 고증을 거쳐 장례를 진행했다. 그 이후로 노무현 전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까지 제가 직접 염을 해서 마지막 길을 배웅해드렸다.”가장 기억에 남는 장례는 언제인가“10년 전 법정 스님 장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2010년 3월, 딱 10년이 넘었다. 역대 대통령들뿐만 아니라 전국 사찰의 큰스님 마지막 길도 여럿 모셨지만, 제가 일생에 가장 존경했던 인물인 법정 스님을 직접 모셨던 것이 아무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다). 법정 스님이 돌아가시기 전 두 달 반쯤 전에 의뢰가 왔었다. 그때 당시 법정 스님의 일곱 제자 중의 한 분인길상사 주지 스님,송광사 총무, 봉은사 부주지스님과 함께 장례를 기획했다. 일반인 장례와는 다르게 조문객들이 수만 명이 오는 경우를대비해야 했다. 때문에 단순히 장례 진행뿐만 아니라 조문객 맞이, 주차, 식사대접 등 까지 모든 행사의 과정들을 세심하게 기획했었다.”한국의 장례문화에 대한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어떤 부분인가“현재 한국의 장례는 3일 장, 5일 장 등과 같이 장례 ‘기간’에 대한 관례는 있는데, ‘절차’나 ‘형식’에 대한 관례는 마땅치 못하다고 생각한다. 고인의 지난 삶이 중심이 되기보다 조문객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끝나버리는 형식적인 장례문화가 돼 버린 지금의 현실이 안타깝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고인이 떠나기 전 추모식 행사에서 전통 판소리와 국악 연주 등으로 고인을 기리는 장례 식순 등을 만들었다. 또 아직까지 일본식 장례문화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는데, 상주의 팔뚝에 완장을 차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완장 대신 나비 모양 베 상장을 달고, 일본의 국화 대신 다른 꽃을 장례 꽃으로 쓰는 등 전체적인 우리나라의장례문화를 바꾸기 위해 힘쓰고 있다.”원장님이 지향하는 장례문화가 있다면“결혼식, 돌잔치만 해도 사람 중심의 행사이지 않는가. 행사에 온 사람들에게 ‘오늘의 주인공은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명확하게 전달해 준다. 하지만 장례식은 그렇지 않다. 고인이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사람의 일생에 대한 관심은 없다. 지인들끼리 모여 앉아 술 한잔 걸치는 자리가 돼버린 지금의 현실이 참 안타깝다. 고인 중심의 장례문화를 만드는 것이 나의 목표이자 지향하는 바이다.”언제까지 염장이 일을 하실 생각인가“염하는 것뿐만 아니라 장례문화를 위해 일하는 것은 일평생 이어가고 싶다. 장의사는 정년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장의사라는 직업인식 개선과 장례문화 교육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편 딸과 함께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장례지도사에 대한 강의를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전국에 장례지도사 자격증 가진 사람이 15000명 정도 되는데, 그분들에게 우리 장례문화에 대해 제대로 알리고 싶다.”장의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한다면“직업에 귀천이 없는 세상이다. 과거에는 나도‘(직업이 장의사라) 딸 시집 어떻게 보낼거냐’는 탄식 섞인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장례도 문화의 한 갈래이기 때문에,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고 생각하고 임해야 한다. 또한 장례지도사, 장의사라는 업은고인을 만나는 일인 만큼 투철한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 단순히 일로써 접근해서는 어렵다. 정말 열심히 배우고 익힌다는 마음으로 매사 임해야 한다. 끝으로 장례와 관련된 산업은 사회복지 분야 중에서도 그리 공급이 많지 않기 때문에 얼마든지 (장례 분야에서) 본인 스스로 열심히 한다면 두각을 나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원장님이 생각하는 삶과 죽음이란“죽음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손님 같은 것이다. 우리는 그게 오지 않을 것이라고 흔히 생각한다. 스티브잡스의 자서전을 보면‘죽음’은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운명’이라고 하지 않느냐. 그도 17살 때부터 줄곧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여기며 살았다고 한다. 이처럼 오늘이 일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인생의 순간순간 선택에 있어서 확실해진다. 삶은 맞이하는 죽음과 당하는 죽음이 있다고 한다. 이 둘 중 전자의 경우가 되기 위해서는 삶 속에서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가는 것, 그것이 전부라고 본다.”jyrim@hankyung.com[사진=서범세 기자]
[한경 잡앤조이=조수빈 기자] 김태년(39)팀장은 띵스플로우에서 운영하는 챗봇인 ‘헬로우봇’의 서비스 서버와 인프라를 담당하는 데이터사업화팀에서 근무 중이다. 데이터사업화팀에서는 사용자가 헬로우봇을 사용하며 발생한 데이터들을 활용해 서비스의 문제점을 찾거나 사용 환경을 개선한다. 김 팀장은 최근 헬로우봇의 데이터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만들기 위한 업무에 매진하고 있다.△김태년 띵스플로우 데이터사업화팀장.띵스플로우는 챗봇을 타로와 융합한 ‘타로 챗봇 라마마’로 유명해진 스타트업이다. 기존 챗봇 서비스는 고객 응대, 문의 답변 등 정보 제공으로 목적이 한정돼 있었다. 하지만 띵스플로우는 정보 제공용 챗봇을 넘어 사용자와 공감대를 형성해 진짜 ‘대화’를 나누는 친구 같은 챗봇서비스를 제공한다. 라마마 외에도 수십 개의 전문 챗봇을 운영 중인띵스플로우의 가장 큰 경쟁력은 ‘자연스러운 대화’다. 사용자들과의 대화를 통해쌓인 데이터를 학습하고 타로, 사주 등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는 에디터들이 각 챗봇에 맞는 콘텐츠를 만든다.이렇게 만들어진 콘텐츠를 구현하는 것은 띵스플로우에서 자체 개발한 챗봇제작스튜디오 ‘헬로우봇 스튜디오’의 몫이다. 김태년 팀장은 이렇게 생산되는 데이터를 띵스플로우의 전 직원이 자신의 업무에 활용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주로 담당하는 업무가 무엇인가“띵스플로우의 전 직원들이 공유할 수 있는 데이터를 관리하고 분석하는 것이 주 업무다. 소비자의 사용 패턴을 분석해 미래 행동을 예측하거나 새로운 사업 콘텐츠 기획에 응용할 수 있게 한다.”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하는 방법이 궁금하다“사용자 데이터는 여러 가지다. 사용자가 직접 남긴 리뷰부터 어떤 챗봇의 어떤 스킬을 사용하는지, 어디까지 사용하는지에 대한 데이터도 쌓인다. 데이터 팀에서는 이렇게 쌓인 데이터들을 각각의 활용 목적에 따라 분류해 저장하고, 직원들이 쉽게 필요한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앱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던 사용자들이 어디서 이탈을 하는지, 어떤 정보에 불만을 갖는지 등을 분석해 페이지를 보수하거나 서비스를 개선하기도 한다. 데이터는 쌓여있는 글자 더미에 불과하지만 목적에 맞게 가공하고 활용하면 서비스의 개선부터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까지 무궁무진한 가치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한다.”‘대화’를 중심으로 이뤄나가는 챗봇 서비스다. 다뤄야 할 데이터의 양이 많을 것 같다“실제로 라마마의 경우 타로 챗봇 서비스이기 때문에 모든 대화에 타로 카드 개수 이상의 시나리오가 필요하다. 또한 서비스되고 있는 콘텐츠 역시 사용자의 반응과 피드백을 통해 꾸준히 개선해야 하기 때문에 다뤄야 하는 데이터의 양은 꽤 많은 편이다.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헬로우봇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데이터 산업에 종사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데이터를 처음 다루기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마케팅 페이지를 구축하면서 소비자의 사용 패턴을 추적하기 위해서 가설을 세웠다. 처음에는 페이지에 나온 설명을 통해 서비스 파악을 하고, 구매 결정을 한 후에 구매에 관련된 문의를 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구매 문의를 했던 소비자들의 패턴을 분석해보니 페이지에 들어오자마자 구매 문의 버튼부터 찾았다. 사이트를 방문하는 소비자들은 이미 서비스에 대한 내용도 알고 있고 구매 결정 역시 마친 상태였기 때문에 오히려 페이지의 설명이 방해가 됐다. 서비스에 대한 설명을 페이지에서 없애고 문의 버튼만 남겼더니 만족도는 높아졌다. 데이터를 통해 나름 자신하던 직관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돼 기억에 남는다.”스타트업으로이직을 결심한 계기가 있다면“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하던 시점이 스마트폰으로 통신 패러다임이 넘어가는 시기였다. 그 시기부터 꾸준히 스타트업에서 성장하는 사람들을 지켜봤고, 그 대열에 합류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지면서 퇴사를 마음먹었다. 중견기업, 대기업을 경험해 보니 규모가 큰 기업에서는 주어진 업무와 역할을 문제없이 잘 해내는 것이 더 중요하고 실제로 생각한 것을 실현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주니어 정도의 위치였기 때문에 더 그렇게 와닿았던 것 같다.”데이터도 관련 직군이 많은데, 어떤 역량이 필요하나“데이터를 다루기 위해서는 세부 과정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데이터 직군은 파트별로 필요한 기술적 역량이 다르다. 데이터 수집과 관리를 다루는 직군은 컴퓨터 공학과 관련이 깊다. 특히 다뤄야 할 데이터의 양이 많을수록 고급 컴퓨터 공학 지식이 요구된다. 수집된 데이터를 분석하는 일은 수학, 통계학 지식이 필요하다. 데이터를 그래프화해 정보의 패턴을 찾고 비교하는 일이 주된 업무라고 이해하면 된다.”데이터를 다루며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데이터 관련 업무의 가장 힘든 점은 회사에 변화를 줄만한 가치 있는 정보를 찾아내고 실제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실무 담당자의 의사결정이 데이터 분석에 기반하지 않는다면 데이터 분석은 큰 의미가 없어진다. 띵스플로우는 모든 구성원이 데이터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다. 데이터로 성과를 측정하고 다음 할 일을 결정하는 문화가 어느 정도 자리 잡혀 있어 어려움을 많이 덜어주고 있다.”앞으로 데이터 산업 시장을 예측해본다면“당분간은 핫한 직군이지 않을까. 데이터는 전통적인 제조업부터 IT 분야까지 거의 모든 산업이 필요로 한다. 사람이 수기로 작성한 정보부터 컴퓨터로 작성한 정보까지 모든 것이 곧 데이터다. 모든 산업에서 기업은 사용자와 서비스에 대한 ‘사실’을 알고 싶어 한다. 데이터는 실제로 사용자가 사용한 결과이기 때문에 가장 사실에 가까운 정보다. 특히 사업의 크기가 커질수록 다양하고 많은 데이터를 다뤄야 하기 때문에 데이터 팀을 별도로 마련하는 대기업이 많아지고 있다”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현재는 중요한 지표들은 자동화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세부적인 데이터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비효율적인 부분들이 남아있는 것 같다. 이러한 부분을 해결할 방법을 찾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다.”데이터 산업에 진출하고자 하는 대학생들에게 조언해 준다면“실무 경험이 가장 큰 힘이 된다. 다른 사람의 경험을 글로 배우는 것보다는 인턴십이나 유관 기관의 실무를 직접 경험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실제 문제를 데이터로 해결하는 대회 참여 역시 도움이 된다. 띵스플로우 역시 상시 채용으로 인재를 모집하고 있으니 띵스플로우에 관심이 많은 대학생들이 실무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될 것이다.”띵스플로우 채용은?직무 개발 전 직군 상시 채용 중인재상 탁월성, 공유 정신, 빠른 실행력띵스플로우 복지는?- 여름방학, 겨울방학 복지 (5일)- 유연근무제- 일할 때 제대로 하고, 쉴 때 확실히 쉬자는 조직문화 보장subinn@hankyung.com
-[직업의 세계] ′스티로폼 조각가′ 조현석 가이아 대표[한경 잡앤조이=강홍민 기자] “코로나19로 매출이 반토막이 났지만 그래도 전 이 직업이 좋아요. 아마 더 큰 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