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합격 비결은요

20세 여성용접사 송지혜 “립스틱보다 쇳물색이 훨씬 예쁘던데요” 조회수 : 27121

[젠더타파] 동문엔지니어링 신입사원 송지혜 씨

“예쁜 쇳물색에 매일 가슴 설레죠” 




[PROFILE]

송지혜

1997년생

2017년 2월 한국폴리텍대 남인천캠퍼스 특수용접학과 졸업

2016년 11월 동문엔지니어링 입사


“3주 전이었어요. 좁은 공간에서 용접을 하고 나오다 들고 있던 뜨거운 용접봉이 벽에 부딪혀 튕겨 나오면서 제 얼굴을 찔렀어요. 눈물이 나올 만큼 아팠는데 거울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뺨에 길다란 흉터가 생겼더라고요. 얼마 뒤엔 그라인더 날에 손등이 찍혀서 푹 패이기도 했죠.”


갓 스무 살, 송지혜 씨의 흰 손에는 화장품 대신 텅스텐으로 만든 가느다란 용접봉이 들려 있었다. 이제 겨우 3개월 된 그의 작업복 곳곳에는 기름때와 페인트자국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어렵고 위험한 일은 ‘3D직종’이라며 모두 피하려고만 하는 요즘, 그러나 송 씨는 용접을 ‘천직’이라고 표현했다. 휴식시간이면 ‘아저씨’ 용접사들과 봉지로 휘휘 저어 마시는 커피믹스가 제일 꿀맛이라는 송 씨를 인천 남동공단에서 만나봤다.





“용접소리에 비로소 살아 숨 쉬는 기분 들었죠”


송 씨는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금융업은 적성에 맞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는 일은 그에게 너무 답답하고 지루했다. 마침 직접 축사를 관리하던 아버지 덕에 용접이 친숙했던 송 씨는 2016년 3월, 한국폴리텍대학 특수용접학과에 입학했다. 60명 정원에 입시경쟁률은 10대 1이 넘었다.


“사실 부모님은 많이 반대했어요. 얼마든지 안정적인 금융업에 취업할 수 있는데 왜 남자들이나 하는 거친 직업을 가지려고 하냐고 화도 내셨죠. 하지만 제 결심은 꺾이지 않았어요. 정말 자신 있는 일을 찾았으니까요.” 


동기의 연령대는 매우 다양했다. 송 씨와 같은 고3 학생부터 55세 늦깎이 신입생도 있었다. 업종 특성상 나이 제한이 없기 때문에 아주머니 동기도 많았는데, “나중에 직장을 그만두더라도 기술만 쌓으면 얼마든지 일을 할 수 있겠구나”라는 확신도 들었다.





학과공부도 생각보다 적성에 잘 맞았다. 특히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특수용접기술’이었다. 용접이란 쇠와 쇠 사이를 용접봉을 녹여 메우는 작업을 뜻한다. 방식에 따라 크게 아크, 티그, CO2용접으로 나뉘는데 모두 일반용접으로 분류하는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이중 티그와 CO2는 특수용접으로 떼어놓고 있다. 티그와 CO2는 작업 후의 잔여물이 적어 아크보다 작업환경이 깔끔하다.  


“특수용접할 때 보이는 쇳물색이 정말 예뻐요. 얼굴에 쓰는 용접면의 차광률에 따라 색깔이 파랑, 노랑 등 다양한 색깔로 보이거든요. ‘위잉~’하는 용접 소리도 정말 듣기 좋았어요. 고등학교 때 매일 컴퓨터 자판소리나 필기하는 소리만 듣다가 그제야 비로소 살아 숨 쉬는 것 같았죠.” 





온몸 ‘상처투성이’에도 매일 설레는 출근길


1년제인 학과 과정을 마치고, 학교 추천을 통해 동문엔지니어링 면접 기회가 주어졌다. 회사 작업반장과 팀장이 직접 학교로 찾아와 송 씨를 만났다. 동문엔지니어링은 LG, 롯데, 현대차 등 대기업의 2차 협력사로 열교환기 부품을 제작해 1차 협력사에 납품한다. 마침 휴식시간을 맞아 인터뷰 현장을 찾은 김성수 작업반장에게 ‘여자임에도’ 송 씨를 뽑은 이유를 물었다. 


“처음부터 여성용접사를 염두에 둔 건 아니에요. 그런데 지혜의 눈빛이 살아있더라고요. 용접은 꼼꼼함과 정교함이 필요한 작업이기 때문에 지혜가 충분히 잘 해낼 거라고 믿었죠.”


송 씨는 매주 6일 작업장으로 향한다. 식사시간을 제외한 휴식시간은 오전‧오후‧야간 각 15분씩이다. 일도 고되다. 첫 출근과 동시에 “대학생이 좋은 거구나”라는 걸 절실히 느꼈다. 아직 초보이다 보니 텅스텐 용접봉으로 몸 곳곳을 찔리는 건 기본. 용접 후에는 이음새를 그라인더 날로 깔끔히 갈아내야 하는데 그라인더의 무게만큼 강한 진동을 감당하기에는 그의 손가락과 손목은 아직 너무 여리다. 





늘 무거운 것을 이고지어야 하는 통에 허리도 남아날 날이 없다. 티그 용접의 동력으로 쓰이는 알곤통이라는 가스통을 수시로 옮기는데 이 통의 무게는 60~70kg에 육박한다. 그러다 보니 매일 퇴근 후 파스를 새로 붙이는 게 일상이다. 쉬는 날에는 틈틈이 물리치료도 나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선택을 후회하거나 이직을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일을 하다 갑자기 설렐 때가 있어요. ‘지금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실제로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요. 또 남자들만 있는 곳의 유일한 여직원이라는 자부심도 있어요. 많은 여성들이 쉽게 도전하지 못 하는 걸 제가 해낸 거잖아요.”





연봉 약 3000만원… ‘내 집 마련’이 꿈


현재 송 씨의 월급은 230만원. 연봉으로 계산하면 3000만원이 조금 안 된다. 사무직으로 일하는 친구들에 비하면 두 배에 가깝다. 이중 매달 50만원씩은 꼬박꼬박 저축한다.


“언젠가 꼭 제 이름으로 된 집을 사고 싶어요. 나중에 결혼하고 아기를 낳았을 때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집이요.”


만약 나중에 딸을 낳으면 이 일을 추천하겠느냐고 묻자 송 씨는 ‘그렇다’고 답했다. 단, 마음이 여리고 의존적인 성향이라면 비추. 야근도, 다칠 일도 많기 때문에 강하고 독립적인 성향이라면 충분히 견뎌낼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송 씨는 아직 스무 살. 친구들을 만나면 맛있는 것도 사먹고 수다도 떤다. “얼마 전 어떤 애가 배신을 때렸다”면서 격분하는 모습에서는 영락없는 소녀가 보였다. 





늘 모임의 리더 역할을 맞는 주도적인 성격의 그이지만 친구와의 대화에서 딱 한 번 소외될 때가 있다. 바로 TV프로그램이나 화장품 이야기를 할 때다. ‘회사-집’이 일상인 데다 퇴근하면 일에 지쳐 바로 곯아떨어지는 탓에 송 씨는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나 아이돌을 잘 모른다. 작업복과 용접면이 유니폼이다 보니 화장품 역시 좀체 사러갈 일이 없다. 


남자친구를 만나러 갈 때만큼은 예외다. 데이트 전에는 여느 20대 여대생처럼 눈썹도 그리고 립글로즈도 바른다. 같은 학과 동기인 남자친구 역시 용접사라 늘 서로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힘이 돼준다. 


“꿈이 없다고 고민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그럴 때는 뭐라도 해 보라고 추천해주고 싶어요. 저도 사육사를 꿈꾸고 상업고등학교에서 금융업을 공부하다가 용접을 전공하고 비로소 제 직업을 찾았잖아요. 비록 지금 몸은 힘들지만 언젠가 이 분야 명장 타이틀을 달고 자랑스러운 엄마도 되고 싶어요.”


이도희 기자 tuxi0123@hankyung.com

사진=김기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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