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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유학생 뽑아 중소기업 보낸다 [최신동향] 조회수 : 5534

중소기업 R&D 인력난 해소 위해 유학생 연 100명 선발

서울대, 졸업 후 5~6년 근무 조건



국내 공대 졸업생의 대기업·서울지역 선호로 중소기업이 겪는 만성적인 연구개발(R&D)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대학이 발벗고 나섰다.


서울대는 중소기업의 R&D 분야에서 일할 외국인 석·박사 유학생을 매년 100여명 선발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서울대가 선발한 유학생의 학비와 생활비를 정부와 기업이 지원하고 이들이 학위를 받은 뒤 5~6년간 중견·중소기업에서 의무적으로 일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서울대 고위 관계자는 11일 “산업계에서 중견·중소기업이 겪는 R&D 인력난 해소를 위해 취업과 연계된 외국인 유학생 선발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와 이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며 “관련 정부 부처, 기업 등과 구체적인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달 수출 중소기업 607곳의 인력 수급 현황을 조사한 결과 연구개발직 부족률이 32%로 모든 직종을 통틀어 가장 높았다.


중견기업연합회가 벌인 설문조사에서도 기업 성장에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고급 연구개발직 등 전문인력 확보 어려움(38.1%)이 꼽혔다.


이우일 서울대 연구부총장은 “미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은 끊임없이 몰려드는 외국인 고급 인력 덕분”이라며 “외국인 유학생이 졸업 후 국내에 머물며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저학력 단순노동인력 중심의 이민정책을 고학력 고급인력 위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 동남아 출신 SW 개발자 > 지난 8일 보안소프트웨어회사 퓨쳐시스템의 경기 판교 본사에서 외국인 유학생 출신 소프트웨어 개발자 두 명이 프로그래밍을 하고 있다. 미얀마에서 온 케이 카인(오른쪽)은 지난해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를 졸업했고, 레탄투안은 베트남 출신으로 공주대에서 컴퓨터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오형주 한국경제신문 기자



판교까지 올라간 '연구센터 남방한계선'…지방中企 R&D인력 '가뭄'


송근상 현대호이스트 사장(59)은 지난해 필리핀을 방문했다. 중국 등 국내외 경쟁사와의 기술격차를 벌릴 수 있는 모터전문가 등 연구개발(R&D)에 필요한 인재를 찾기 위해서였다.


충남 당진에 본사를 둔 현대호이스트는 크레인에 부착해 무거운 물체를 집어서 옮기는 설비인 호이스트 제작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지니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에서 한국이 짓는 원자력발전소에 2020년까지 총 300대(140억원어치)를 공급할 예정이다. 하지만 연구소 인원 8명 중 석·박사급 인력은 서울대 석사 출신인 김욱 연구소장이 유일하다.



송 사장은 “애써 석·박사급 연구인력을 채용해도 다들 몇 달 있다가 대기업이나 수도권에 있는 다른 기업 연구소로 빠져나간다”며 “오죽 답답했으면 연구원을 구하기 위해 필리핀까지 찾아갔겠느냐”고 하소연했다.


서울대가 중견·중소기업 취업과 연계된 외국인 유학생 선발을 추진하는 이유는 이처럼 기업들이 겪는 R&D 인력난이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젊은 연구인력의 수도권·대기업 선호로 지방 중견·중소기업들은 구인난을 겪는 인력 미스매치가 날로 심화하고 있다. 대기업들 역시 협력사들의 부품 및 소재 개발 역량이 떨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북상한 R&D 인력 ‘남방한계선’


서울대 관계자는 외국인 유학생 선발 방안과 관련해 “외국인 인재를 교육해 R&D 인력의 ‘남방한계선’을 뚫는 것이 첫 번째 목표”라고 말했다. ‘R&D 인력의 남방한계선’은 서울을 기점으로 남쪽 방향으로 일정 거리 이상 내려가면 기업이 우수한 R&D 인력을 찾기 어렵다는 의미의 상징적 단어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남방한계선은 한미약품 연구센터가 위치한 경부고속도로 기흥IC 부근이었다. 하지만 기업들의 R&D 인력 경쟁이 심해지면서 최근에는 남방한계선이 판교까지 북상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LG그룹과 대우조선해양 등이 서울 마곡지구에 2019년까지 연구소를 설립하기로 한 것이나 삼성전자가 우면동에 R&D센터를 짓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서울 인근으로 연구소를 옮길 형편이 안 되는 중견·중소기업들은 북상하는 남방한계선에 발만 동동 구르는 형편이다. 지방에 연구소를 둔 기업 538개를 대상으로 한 2013년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조사에 따르면 395곳(73.4%)이 가장 큰 어려움으로 ‘연구인력 확보’를 꼽았다.


연구원 100인 이상인 대기업 연구소의 43%는 수년 내 연구소를 수도권으로 이전하거나 신설하겠다고 답했다.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 조사에서도 지방 소재 기업의 산업기술인력 미충원율은 11.7%로 수도권(7.9%)보다 높았다. 특히 중견·중소기업(10.6%)의 미충원율은 대기업(5.0%)의 두 배를 넘었다.


이에 일부 중소기업은 직접 해외 인재 채용에 나섰다. 판교에 있는 보안소프트웨어 업체 퓨쳐시스템은 작년 8월 베트남인 3명 등 외국인 기술인력 6명을 채용했다. 강연원 퓨쳐시스템 총무부 과장은 “프로그래밍 언어를 잘 아는 한국인은 적지 않은 연봉을 제시해도 작은 회사에는 오려 하지 않아 외국인을 채용했다”고 말했다.


◆대기업 경쟁력 위해서도 절실


중견·중소기업들의 연구인력난은 대기업들에도 위기감을 주고 있다. 이들이 주로 생산하는 부품소재 등의 국제 경쟁력이 떨어질 경우 대기업들의 완성품 제작에도 차질을 줄 수 있어서다. 서울대의 외국인 유학생 선발 구상도 한 대기업 고위 임원 요청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우일 서울대 연구부총장은 “많은 대기업이 1·2차 협력업체인 부품소재 분야 중견·중소기업의 R&D 역량이 갈수록 뒤떨어지고 있는 현상을 우려하고 있다”며 “대학 및 정부와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찾고 싶어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부품소재기업의 99% 이상을 차지하는 중견·중소기업의 R&D 역량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중견기업의 매출 대비 R&D 투자 비중은 2013년 0.88%로 2011년부터 3년 연속 감소했다.


R&D 역량이 반영되는 노동생산성에서도 한국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한국생산성본부의 분석 결과 한국 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 수준은 대기업의 28.8%에 불과해 노르웨이(64.5%), 프랑스(64.4%), 독일(56.6%), 일본(52.3%) 등에 크게 못 미쳤다.


당진=오형주/김낙훈 한국경제신문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