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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지식향연 인문학 특강 “나폴레옹의 도전정신 배우자” 조회수 : 13923

이 기사는 신세계 ‘지식향연’ 나선 정용진 부회장 “역사책을 읽고 편지를 쓰고 토론하라”에서 이어집니다.



지난 2014년 개최된 신세계그룹 ‘2014 지식향연’ 강의모습. 사진: 신세계그룹



이진우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석좌교수 “현대사회 문제의 해결책은 중용”


철학이라는 것은 자기가 직면한 문제부터 시작해 고민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의외로 철학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오늘 함께 고민해보고자 하는 문제는 ‘삶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까’라는 것이다. 현대는 자본주의사회다. 2008년도에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터지고 세계금융위기가 도래했을 때 어떤 학자는 ‘탐욕의 시대에 이어 중용의 시대가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비합리적인 과잉은 냉철한 현실주의로 대체돼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익추구의 자리는 다시 도덕이 대체해야 한다.


자본주의 시대에서 어떻게 도덕과 중용을 실현할 수 있을까. 탐욕이 아닌 절제의 시대로 들어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균형을 잡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가지고 여러분들과 함께 고민해보려고 한다.  



첫째, 자본주의는 극단을 추구한다

둘째, 시장은 중도를 배척한다

셋째, 극단은 중도를 요구한다

넷째, 중용은 균형의 힘이 필요하다



시장은 중도치를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튀어야 팔리고 아주 맛있고 자극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끊임없이 극단을 추구하다 보면 균형을 잡지 못하고 우리의 삶이 피폐해질 수 있다. 그러면 결국 극단은 다시 중용을 요구하게 된다. 그래서 균형의 힘이 중요하다. 오늘 균형의 힘에 대해 사유해보자.


자본주의는 극단의 힘을 추구한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터지면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경향도 많이 생겼다. 2008년 미국에서 연구년을 지냈는데 당시 미국은 고용은 불안한데 CEO들은 높은 연봉을 계속 받았다. 이런 현실에 의문을 가지면 여러분은 이미 철학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정말 막강한 역동성을 강조하기 위해 터보, 슈퍼 등을 강조하는데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위기를 스스로 해결해가더라.


요셉 슘페터가 있는데 오늘날 시장경제를 정립한 유명한 경제학자다. 그는 저서를 통해 자본주의는 창조적 파괴를 필요로 한다고 역설했다. 참 재미있는 모순 어법이다. 한편으로는 기존 체제를 붕괴해야 새로운 체제를 만들 수 있다. 끊임없이 변화해야 하는 게 바로 자본주의다.


요즘 언론 역시 수많은 담론으로 우리를 압도한다. 하지만 이런 담론에 너무 얽매이면 중심을 잡을 수 없다. 위험사회라는 책을 써 개념을 만든 율리히 벡은 ‘부의 사회적 생산은 위험의 사회적 생산을 체계적으로 수반한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직면한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원전이 보급됐는데 이 원전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을 동시에 수반하고 있다. 우리에게 어떤 행복과 복지를 가져올 수 있는 새로운 기술도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스마트폰을 거의 대부분 사용할 텐데 독일의 한 학자는 스마트폰 때문에 약속을 안 지키는 경향이 더 심해졌다고 말한다.


제가 74학번인데 당시에는 전화도 보급이 안됐다. 대신 여자친구에게 편지를 150통을 썼다. 어느 어느 다방에서 만나자고 결정하면 독감이 걸려도 나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수시로 연락해 약속을 취소할 수도 있다.


세 가지 극단적인 사례를 소개하겠다. 요즘 문제가 되는 IS가 바로 그중 하나다. 왜 종교가 인류에게 비인간적인 살상행위를 자행하고 수많은 죄를 야기하는가. 최근 읽은 한 칼럼은 유일신이 문제를 야기한다고 말하더라. 


이 유일신은 대개 자신의 이야기를 진리라고 말하고 이를 상대방에게도 요구한다. 이게 바로 극단이다. 반대로 내가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중도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나는 내가 알지 못한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다’고 얘기한다. 우리 모두 진리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함께 얘기를 통해 공동의 진리를 찾아야 한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요즘 익스트림 스포츠도 많다. 우리 사회는 계속 안정적인 삶이 아닌 극단에서 오는 쾌락을 즐기도록 자본주의는 부추긴다. 웬만해서는 감동을 받지 않는다. 월스트리트 역시 마찬가지다. 21세기는 수많은 극단의 징후에 지배된 극단사회다. 이념갈등, 자본주의, 쾌락주의 등으로 대표된다. 누군가는 국제시장이 우리를 대표한다고 한다면 다른 누군가는 변호인을 말한다.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에 계속 극단을 요구한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만족하지 못한다. 이것들이 우리가 직면한 21세기의 문제가 아닐까 한다. 


우리의 자본사회는 어떻게 발전하고 있나. CEO의 연봉이 80년대에 평균 노동자의 40배였다가 90년대에 400배가 된다. 


현대사회는 비만현상도 심각하다. 칼로리 섭취량이 성인 여성은 필요에너지의 2배, 남성은 3분의 1을 초과한다. 우리는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을 소비하고 있다. 이것이 21세기를 사는 우리사회의 문제점이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극단을 추구한다. 이익의 극대화에서 고통을 당하는 것은 바로 인간다움, 인간성의 상실이 바로 이것의 이면일 것이다.


우리가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모두 나름의 인격을 가지고 있음에도 어떤 집단에 들어가면 집단의 이익을 위해 절약해야하는 숫자에 불과해진다.


시장은 대부분 중도를 배척한다. 시장이라는 것은 탐욕의 문화공간이다. 시장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인위적이어야 한다. 


오늘 여러분을 만나기 위해 유행하는 스타일을 찾아보니 통이 슬림한 스키니한 바지가 인기가 많다더라. 이런 유행 역시 바로 시장이 만든다. 파리, 밀라노의 패션쇼에서는 이미 다음 시즌의 옷을 만들어 보여주고 여러분은 이것을 통해 잇지도 않은 욕구를 가지게 된다. 여러분이 가장 짜증나는 게 백화점에서 옷을 사 입고 나왔는데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이 앞에 있을 때가 아닐까. 이런 고민은 3~5세기에도 마찬가지였다.


탐욕(PLEONEXIA). ‘불만족은 더 많이 더 나은 것을 끊임없이 요구한다.(The Insatiable desire to have more the more the better).’ 


자본주의의 문화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게 하는지를 묻는다. 첫 번째는 유연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 자신의 것에 집착하면 안 된다. 끊임없이 변해야 한다. 하지만 또 그 이면을 살펴봐야 한다.


유연성이란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사람은 때로 유연할 줄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제도를 보면 과거에는 개혁을 하더라도 과거의 것이 남아있고 영속성이 있었는데 지금은 어제의 것은 오늘 이미 상실되고 오늘의 것이 내일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불안한 사회에 살고 있다. 그래서 계속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요즘 사회는 발표를 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입을 열심히 열었는데 또 그렇게 잘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럼 뭘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과거에는 사회가 변하더라도 연속성이 있어서 세대간 갈등도 그렇게 크지 않았다. 


하지만 21세기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게 만들어지고 있다. 또 사회가 급속도로 변하는 사회에서 여러분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러기위해서는 중심을 가져야 한다. 대학을 지원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지금 인기 있는 전공에는 줄이 길다. 절대 긴 줄에 서지 마라. 5년 뒤, 10년 뒤 그 전공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는데 요즘 인문학 구조조정에 독문과는 1순위더라. 하지만 당시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컴퓨터공학도 조금씩 쇠퇴하고 있다. 그래서 예측하기가 힘들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다. 이게 중심을 찾는 길이 될 것이다.


21세기의 사회 특징에 대해 리처드 세넷은 리스크가 일상화가 됐다고 말한다. 여러분 나름대로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여러분 나름의 고유한 삶의 길을 찾을 필요가 잇다.


오늘날 사람들은 머무르는 것은 퇴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목적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질문을 던지지 않고 무조건 떠나라고 강요하는 게 바로 21세기의 사회다. 여기서 뒤집어 묻고 싶다. 이 길을 계속 달리면 어떤 목적지에 도착할 것인가.


60년을 산 제 고민은 무엇일까. 내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다는 것이다. 매일매일 내게 요구하는 것은 변하라, 새로운 과제들이다. 그러면 여러분은 목적지가 없이 떠나게 된다.


여기에서 조언하고 싶은 것은 떠나되 그 목적지에 바로 도착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루고자 하는 것은 생각하고 떠났으면 좋겠다. 목적지는 생각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절제와 중용을 상실한 사회다. 그래서 아무리 지나쳐도 결코 지나쳐보이지 않는 사회다. 그래서 여러분은 중심을 잡기 어려울 것이다.


극단은 그래서 중용을 요구한다. 극단은 늘 위험하다. 극단이 위험하다면 중간은 안정과 지속의 장소다. 중간이 있다는 것은 그런데 요즘은 어려워졌다. 이게 얼마나 힘들었기에 고대 그리스시대에도 ‘황금의 중용’이라는 표현을 썼을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길, 중용은 두 악덕, 즉 지나침에 다른 악덕과 모자라에 다른 악덕 사이의 주용이라고 말한다. 


최근에 아주 치욕적인 사건이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 기회를 줬음에도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이 중간을 취할 수 있을까.


- 우리의 삶에는 극단에 의해 파괴되는 것이 있다.

바로 중독이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은 스마트폰을 두고 다닌다. 늘 사무실에 근무하는 사람은 일주일에 한 번 밖에서 산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어떤 극단이 나를 괴롭히는지 찾아보자.


- 성격적 극단은 지나침과 모자람이다.

중용의 덕을 취해야 한다. 중용은 극단의 가운데이다. 용기가 지나치면 무모함이 된다. 반대로 용기가 없는 경우에는 비겁함이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특히 말을 많이 하면 경박하다고 말한다. 또 말을 안 하면 냉담하다고 평가한다. 연인들 사이에서도 사랑한다는 말을 너무 많이 하면 믿을 수 없게 된다.


- 올바로 살려면 극단의 악덕을 피하고 중용의 덕을 취해야 한다


- 중간을 강조하는 중용의 덕성은 최선의 삶이다.



중용은 균형의 힘이 필요하다. 역동적인 균형을 획득하려면 항상 자기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자기만의 가치를 가지고 있어야 균형을 지킬 수 있다. 


중간의 과녁을 맞추는 것은 어렵다. 양극단 사이의 균형을 이루려면 실천적 지혜가 필요하다. 특정 지식인의 말을 들으면 또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만큼 좋은 사회도 없다. 이 양 극단 사이에서 균형 잡힌 시각을 갖는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 이럴 때도 문제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게 왜 어려운가. 네 가지 이유가 있다.


- 중용은 산술적 중간이 아니다

한 정치인이 정치에서는 진보이지만 경제에서는 보수일 수도 있다. 


- 중용은 극단의 감정에 대한 태도이다

우리가 중용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중간을 정확히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감성이 더욱 많은 역할을 한다. 


- 감정은 끊임없이 변화 한다

그래서 균형을 잡기가 힘들다. 


- 중용은 극단과의 관계에서 중간이다



* 중도의 역설

- 중도는 안정을 가져 온다

- 안정의 절대화는 삶을 지루하게 만든다

- 모든 것이 중도이면 중도를 알 수 없다

- 중도가 계속되면 극단을 요구한다



너무 시대의 변화에 휩쓸리지 말고 여러분의 가치를 찾는다면 균형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끝으로 좋아하는 글귀를 소개하고 싶다.



독재 권력이 나의 자존심을 고양시키지 않았으며 추방이 나의 자존심을 꺾지도 않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위대한 사람들이 어떤 삶의 상황에 처하더라도 한결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행운의 변화가 그들을 높일 수도 또 낮출 수도 있지만 그들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늘 확고하고 의연하며 자신의 생활양식에 완전히 충실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운명이 그들에게 어떤 힘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곧바로 알 수 있습니다. 


마키아벨리 <로마사 논고> 



송동훈 문명탐험가 “그랜드투어로 나폴레옹의 도전정신을 배우자”


그랜드투어는 괴테뿐 아니라 당시 유럽의 많은 귀족이 다녀왔다. 그리고 20세기에는 미국에서 이 그랜드투어가 유행했다. 이 그랜드투어는 애덤스미스, 존 로크, 토마스 홉스 등 교과서에서 볼 수 있는 많은 학자들이 직접 이끌고 교육했다.


이번 2015 지식향연의 테마는 나폴레옹이다. 워털루 전쟁 발발 200년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비록 나폴레옹은 워털루 전쟁을 통해 몰락했지만 이 때를 계기로 유럽의 근대화가 시작됐다.


나폴레옹의 전성기 시절, 그의 친인척을 포함해 거의 유럽 일대가 그의 손아래 있었다. 유럽에서 나폴레옹에게 독립된 곳이라고는 발칸반도, 영국, 포르투갈 정도였다. 이런 경우는 나폴레옹이 유일하다. 그만큼 위대한 인재였던 것이다.


왜 그 수많은 사람 중 나폴레옹이었을까. 나폴레옹 본인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나 요인 덕이었다. 당시는 어마어마한 난세였다. 이런 시대가 영웅을 만들었다.


1789년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났다. 역사의 결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 봉건제가 절대왕정을 낳았고 절대왕정은 혁명을 낳았다. 이 혁명이 무질서와 공포를 가져왔고 나폴레옹이라는 강력한 권력을 낳았다. 하지만 이 권력은 오만을 낳았고 오만은 패배를 낳았으며 이 패배가 반동을 낳아 다시 혁명을 야기했다.


베르사유궁전은 하나의 장소가 하나의 시대와 사상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세상의 몇 안 되는 명소다. 절대왕정이라는 하나의 시대와 정신과 정치사상을 모두 가지고 있다. 왕이 세상을 모두 지배한다는 것을 온전히 담고 있다. 


왕에게 절대권력이 있는 이 시대가 여러분에게는 어떻게 다가오나. 좋을 리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정용진 부회장의 강연에서도 나왔듯 우리는 역사의식을 가지고 비판해야 한다. 단편적으로 무조건 나쁘다고 해서는 안 된다. 당시 왕권이 강화됐던 건 이전까지의 봉건제라는 시스템이 사람들을 너무 힘들게 했기 때문이다. 


당시 프랑스의 왕은 백성을 배불리고자 했다. 프랑스는 귀족이 아닌 왕이 권력을 가진 사회였다. 하지만 귀족들이 권력을 빼앗겨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혁명이 일어나고 무능력한 국왕은 도망을 결정했다. 당시만 해도 프랑스 국민들에게 국왕은 절대적이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국민들에게 왕은 당연히 있어야 하는 존재였는데 왕이 도망을 가다가 잡히게 되자 화가 난 국민들은 그를 재판에 앉히고 사형까지 결정한다.


하지만 그 후에도 세상은 좋아지지 않았다. 유럽은 모든 나라가 왕이 지배하는 국가다. 그런데 왕이 죽고 공화국이 들어섰다. 그리고 이웃 나라는 이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결국 프랑스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당시 권력가는 전쟁경험이 없는 부르주아였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서 한 사람이 권력을 잡는데 그게 바로 로베스 피에르다. 이 사람은 전쟁을 반대한 유일한 혁명가였는데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바로 편협함이었다. 그래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무너뜨리기 위한 공포정치를 폈다. 이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 


여기에 반동이 일어났고 그는 실각 당했다. 그렇게 청렴하고 능력 있지만 편협했던 로베스 피에르의 세력이 한순간에 정리됐다. 그 후 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게 된다. 프랑스 국민들은 정말 안정과 평화, 질서를 원했다. 


그러나 현실은 최악의 총재정부였다. 그렇게 피를 흘리면서 혁명을 했는데 열매가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바꿀 수 있는 힘은 또 없었다. 그래서 국민들은 절망하게 된다. 이때 화답하는 사람이 바로 나폴레옹이었다.


이때 그의 나이가 20대 후반이었다. 게다가 프랑스 식민지나 다름없는 코르시카 출신이었다.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그를 프랑스 시민들은 받아들일 만큼 당시 상황은 열악했다.


하지만 1799년 당시 나폴레옹의 집권은 모든 프랑스인들의 염원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황제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이때 그의 나이 35세였다. 그리고 1804년 12월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황제로 즉위했다.


나폴레옹은 ‘내가 곧 혁명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현재에 안주하지 않았다. 자기 자신에 대해 만족하지도 않았고 새로운 시도에 대한 욕구로 가득했다. 항상 더 멀리 나가고자 하는 욕망을 품었다. 그래서 언제나 도전했다. 도전 없이 안주하는 삶은 그에게 퇴보였고 무료함은 견딜 수 없는 치욕이었던 것이다.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말이 있다. 무엇을 하려면 제도와 사람과 리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하려면 민주주의 제도만 있으면 될까? 지지할 수 있는 시민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민주주의를 이끌 리더가 필요하다. 


나폴레옹은 1793년 국민총동원령에 따른 징병제 ‘국민공회’를 도입했다. 그리고 무보수임에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똘똘 뭉친 65만명의 병사를 모았다. 자연히 다른 나라의 군대와 규모에서부터 차이가 났다. 


나폴레옹 군대의 신무기의 핵심은 열정과 속도였다. 이들은 ‘춥고 배고프고 지쳐도 우리는 나아간다’고 말했다. 이 전쟁은 우리나라, 우리가족, 동료시민을 위한 전쟁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즉 아무런 보급을 받지 않아도 싸울 수 있는 세력이 됐다. 이게 바로 나폴레옹이 만든 새로운 권력이다. 사람들은 나폴레옹을 불꽃이라고 평가했다. 원정 초창기부터 나폴레옹이 등장하면 모두의 가슴에 불길이 솟아올랐다. 그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눈더기를 걸치고 머리는 엉망으로 헝클어진 채 구멍 난 신발을 신고 있는 불쌍한 군인들의 가슴이 뜨겁게 타올랐다. 그는 화약에 불을 당기는 불꽃이었다.


나폴레옹은 승리를 통해 얻는 희열을 병사들에게 선물했다. 이제 그들은 핍박받던 농민이 아닌 나라의 근간이 된 것이다.


그리고 장교단의 성격도 변화됐다. 귀족과 연줄이 구체제의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평민이어도 실력이 있으면 권력을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포병들은 경험을 통해 혁신을 이뤘다. 나폴레옹을 얘기할 때 항상 나오는 게 독서와 사색이다. 나폴레옹은 어릴 때부터 늘 책을 읽었다. 황제가 된 후에도 그는 매일 지적인 활동을 했다. 독서는 그의 존재의 기쁨이었고 삶의 영양제이자 격무 중에 누리는 진정한 휴식이었다.


그는 알프스를 넘을 때 어릴 때 읽었던 한니발의 이야기를 떠올렸고 영국의 지중해 교역을 뒤흔들고 후에 인도까지도 진출하겠다는 통찰력이 있었기에 이집트로 눈을 돌린 것이다. 그 결과 357만 2329대 2569명이라는 압도적인 지지율을 받고 제정국가를 이룩했다. 


왜 나폴레옹이 혁명의 아들로 불릴까. 그가 없었다면 프랑스 혁명이 만들어낸 가치관과 사상을 실제 이뤄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업적은 단순히 권력을 잡았다가 아니라 이를 통해 프랑스혁명이 뿌리내릴 수 있게 했다는 데 있다.


그는 혁명의 성과를 법제화했다. 그리고 새로운 지배계층을 창출했는데 구귀족을 22% 포용했다. 그는 통합과 화합을 위해서도 애썼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았고 미래를 위해서는 화합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전부 그의 유언에 담겨 있다. 여러분에게 소개하겠다.



나는 유럽을 군대로 강하게 다룰 수밖에 없었으나 오늘날의 유럽은 설득해야 한다. 나는 프랑스와 유럽에 새로운 사상을 심었다. 이 사상은 절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뿌려놓은 씨를 내 아들이 가꿔 거둬들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철학의 근원인 역사를 깊이 성찰하도록 하라.



나폴레옹은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도전자였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서 격동적이면서도 피비린내 나는 도전이 무엇인지 배울 것이다. 나폴레옹처럼 실패하지 않으려면 여러분의 도전이 필요하다. 많이 도전해 달라. 


이도희 기자(tuxi0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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