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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 취준생들의 ‘잔인한 봄’… “‘SKY’나 ‘취업 깡패’는 옛말” 조회수 : 29277

꽃 피는 춘삼월. 개강 3주차를 맞은 대학생들의 마음은 미세먼지의 습격 따윈 아랑곳 않고 설레기만 한다. 꽃은 피지도 않았지만 트이지 않은 꽃봉오리라도 찾아나서야 할 것 같은 이 날씨에 도서관으로 발길을 향하고, 책상 위에 펼쳐둔 책 위로 시선을 파묻는 이들이 있다. 바로 ‘취업 준비생’이다.


 

3월이 벌써 절반이나 지났다는 사실이 두려워

스펙 갖출 만큼 갖췄지만 50군데 서류 탈락

스스로가 '하자' 인간인가 싶기도

졸업 미루고 도서관 자리 지키는 '화석 선배' 신세

학교 이름 있지만, '인문대 여학생' 자리 좁아

학교랑 전공도 보는 NCS 불안


“가는 곳마다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어.” 

도서관 잠입(?)에 성공한 기자가 친구에게 보낸 메시지다. ‘나는 학생일 때(물론 아주 오래 전은 아니다) 시험 기간에만 공부했었는데’, ‘요즘 학생들은 이렇게 열심히 하나’ 싶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대체 무슨 공부를 하길래? 명문대생 한테도 취업난은 남일이 아니란 말인가?


△신촌 연세대 학술정보원. 게시판에 취업 정보들이 빼곡하게 붙어있다.


연세대 학술정보원 1층. 이 곳은 열람실인가요? 

내가 보기엔 로비같은데, 모두가 공부를 하고 있다. 


‘어둠 뿜뿜’ 연대 공대생… “‘SKY’나 ‘취업 깡패’는 옛말”


3월 16일 서울 연세대 학술정보원. 계단을 오르다 간이의자에 앉아 있는 한 남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검정색 티셔츠에 검정색 바지, 심지어 신고 있는 양말과 슬리퍼도 시커멓다. 팩에 들어있는 오렌지 쥬스를 마시며 멍하니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는 표정도 그늘이 드리워진 듯 어둡다. 멀리서 봐도, 누가 봐도 매우 지쳐 보이는 모습. 조심스레 말을 붙였더니 역시나 ‘취준생’이다. 


“예전엔 3월이면 개강하고 신입생도 들어오고 신났죠. 그렇지만 올해는 확실히 다릅니다. 오히려 3월이 벌써 절반이나 지났다는 사실이 무섭기만 해요.”


컴퓨터과학과 3학년인 A(25)씨는 “명문대에 다니는데다, ‘취업 깡패’라는 공대생인데도 불안하냐”는 물음에 정확히 네 번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 사람들이 전부 그렇게 말해요. 채용 공고 보면 대부분이 공대생 뽑던데 무슨 걱정이냐고. 컴퓨터 공학계열이나 전자계열은 취업 잘 되지 않냐고. 연대생인데 걱정할 게 뭐 있냐고. 그냥 웃어넘기지만, 가슴 속부터 입까지 쓴 맛이 올라와요. ‘SKY’나 ‘취업 깡패 공대생’ 그런 건 다 옛말인 것 같아요.”


그는 “‘아직’ 열 번 밖에 안 떨어졌다”고 스스로 위안하면서도, 이내 “공대생이라 글을 쓴 경험이 적어서 자소서 쓰는 것부터 어렵다”고 털어놨다. 또 “요즘 기업에서는 실무에서 쓰일 기술력이나 업무 능력을 중시한다고 하는데, 그동안 전공 공부 외에 마땅한 실무 능력을 쌓지 않은 것도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취업이 됐다는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불안감은 더욱 커진다. 그는 “축하한다고 말은 하는데, 진심으로 축하를 해 주는 게 아닌 것 같다”며 “질투하는 내 모습에서 ‘내가 이렇게 옹졸했나’ 라는 생각도 들고, 그러면서 스스로도 더 불안해지는 악순환이 계속 된다”고 자책했다. 

 

A씨는 “그래도 아직 3학년이고 졸업하기 까지 시간이 있으니 열심히 준비 하겠다”며 “취업하면 이름 밝히고 인터뷰 하겠다”는 약속을 남긴 채, 다 마신 오렌지 쥬스 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인’에게도 봄이 올까요?”


“50군데 정도에 이력서를 넣었는데 다 떨어졌어요. 스펙이란 스펙은 갖출 만큼 갖췄다고 생각하는데, 자꾸 떨어지기만 하니 그냥 나라는 인간 자체가 하자인건가 싶을 때도 있어요.”


6층 휴게 공간에서 만난 여학생 B(25)씨. 의자에 등을 붙인 채 눈을 감고 있던 그는 자신을 ‘화석 선배’라고 소개했다. 졸업을 유예하고 취업을 준비하며 도서관 자리를 지킨다는 말이란다. 처음에는 얘기하기 싫다고 한사코 거절하더니, 자기 소개와 동시에 최근 대기업 계열사에 서류를 냈다가 탈락했다며 신세 한탄(?)을 시작한다.


“초반에는 친한 친구나 후배들한테 떨어졌다고 말하고 위로를 받기도 했어요. 그치만 이제는 서로가 그저 아무 말도 안 해요. 어떨 땐 도서관에서 아는 사람을 마주칠까봐 조마조마 하기도 해요. 이러다 친구마저 잃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웃음)”


그래도 ‘SKY’인데 걱정하지 말라는 기자의 말에 B씨는 ‘지여인’을 아냐고 되물었다. ‘지여인’은 지방대에 다니는 여대생, 인문대생을 뜻한다. 


그는 “학교 이름을 내세울 수는 있지만, ‘여인’이란 사실은 어쩔 수 없나보다”라면서 “채용 시장 자체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데, 인문대 여학생은 더더욱 자리를 잃어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 안암동 고려대 중앙도서관에서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공기업 취업 희망하는 고대생… “졸업 전 꼭 취업하고 싶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 가는데도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열람실은 붐볐다. 식사를 하러 갔는지 군데군데가 비어있기는 해도, 펼쳐져 있거나 쌓여있는 책들이 그 빈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공기업 입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C씨는 오늘도 샌드위치 두 개로 저녁을 떼운다. 건설사회환경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C씨는 토익 920점에 토익 스피킹 6레벨, 토목기사와 안전기사, 한국사 1급, 한자 2급 자격증도 있다. 그는 “막상 취업을 하려고 하는데 처음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 무작정 준비했다”며 “명문대에 다닌다는 점, 나 정도의 스펙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취업에서 전혀 메리트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기업에 취업하려고 하니 더더욱 그렇게 느껴져요. 요즘 NCS 스터디를 하고 있는데, NCS는 스펙과는 관계없이 직무 중심의 능력만 보잖아요. 심지어 학교랑 전공도 안 보는 곳도 있다더라고요.”


C씨는 “건설직이나 토목직은 뽑는 인원이 적어 불안하긴 하지만, 졸업하기 전에 취업하는 것이 목표”라면서 “내년 봄은 직장인이 되어서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예나 기자 ye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