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꿀팁

자소서 ‘복붙’, 누구는 하고 싶어 하나요? 조회수 : 20967

‘자소서 생산기계’가 된 것 같아요

매장을 방문해봐라… 타인 행복하게하려 노력한 경험은?





얼마 전, 서울시내의 한 카페에 갔다. 조용한 곳에서 글을 쓰기 위해 일부러 노트북까지 끼고 나선 터라 일부러 한적한 곳을 골랐다. 


메뉴를 고르고 계산을 하는데 갑자기 카페 점장이 물었다.


“요즘 무슨 일 있어요? 면접 같은 거라도 있는 거예요?”


“면접요? 무슨…”


“아니 요 며칠 노트북을 들고 오는 손님이 엄청 많아요. 다들 회사 얘기를 하는데 아무래도 기업 면접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혼자 힘으로는 버거워… '끌어주고 밀어주는' 공채 시즌


그 말을 듣고 뒤를 돌아보니 대학생으로 보이는 손님 세 명이 노트북을 펼쳐놓고 연신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바로 그 옆에도 또 다른 한 명이 노트북 옆에 놓은 신문 스크랩 파일을 한참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몇 안 되는 테이블이 대부분 노트북을 펼친 학생들로 가득차 있었다.


세 명이 있는 테이블 옆에 앉아서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봤다. 기업 입사경쟁률에 대한 논쟁 중이었다.


“롯데백화점 경쟁률이 100대 1이더라고”


“헐 정말요?”


“응, 내가 아까 학교 채용설명회에 갔었는데 거기 인사담당자가 그랬어” 


“하… 그냥 다른 데 써야 하나”



세 명은 다름 아닌 자소서를 쓰는 중이었고 얼핏 보기에는 학교 선후배 사이인 것 같았다. 서로 자소서를 쓰며 ‘너는 어떤 점에 주력해봐라’ ‘이 기업은 이런 일을 하더라’라며 조언을 해주고 있었다.


‘자소서 생산기계’가 된 것 같아요


삼성, 현대차 등 소위 대기업의 하반기 공채시즌이 시작됐다. 동시에 ‘입사지원서’를 일컫는 자소서 제출 시기도 한 데 몰렸다.


요즘 취업준비생들의 일 년 취업 농사는 거의 두 달 안에 결정 난다. 주요기업의 채용 시기가 상·하반기 두 가지로 양분화 돼 있기 때문이다. 4~5달을 기다려 약 2~3주 안에 몰아서 지원하고 또 4~5달을 기다려 다음 시즌을 준비한다.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자소서를 쓸 때 가장 중요한 게 ‘정성’이라며 소위 말하는 ‘복붙(복사해서 붙여넣기)’으로 대충 지원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취준생들은 서류접수 기간이 몰리다 보니 많은 기업에 자소서를 우겨넣을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주변에서는 ‘정말 입사를 원하는 몇 곳만 넣으라’는 조언도 하지만 그렇게 되면 서류 합격가능성이 너무 떨어진다는 고충도 있다.


“요즘은 정말로 매일 밤을 새워요. 자소서를 기업 당 평균 3000자 정도 써야 하는데 넣는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고, 10곳 쓰면 겨우 1곳 붙을까 말까라고 하니 일단 닥치는 대로 쓰는 거죠. 그러려면 하루 종일 매달려도 불가능해요. 그냥 자소서생산기계가 된 것 같아요.”


자신의 성격을 점수로 매겨봐라


3000자도 그냥 3000자가 아니다. 기업마다 요구하는 자소서 질문도 제각각이다.


CJ E&M은 ‘Youtube에 채널을 개설했다는 가정 하에 채널의 구독자를 효과적으로 상승시킬 수 있는 방안’을 쓰도록 했다. 분량은 1000자 이내였다. 200자 원고지 5매에 달하는 양이다. 코오롱그룹은 외향성, 호기심, 배려심, 정서적안정성, 성실성 총 5개 성격을 점수로 표현토록 했다. 


은행권은 조금 더 다양하다. KB국민은행은 ‘본인을 나타내는 인문학 도서 속의 인물을 소개하고 그 이유를 경험에 빗대 약술하라’라든가 ‘현장중심적인 생각을 통해 성취했던 경험 혹은 실패경험’ 등을 쓰도록 했다. 


IBK기업은행은 ‘3인 이상의 팀을 이뤄 공통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했던 경험’이나 ‘가족이 아닌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 노력했던 경험’ 등을 각 1000자 안에 요구했다.


우리은행의 ‘우리은행 영업점과 다른 시중은행 영업점을 직접 방문해 우리은행의 상대적인 우수한 점과 개선해야 할 점을 비교하라’는 항목은 이미 금융업 지원자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기업 채용담당자들은 “우리 기업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지원자 자신에 대해 얼마나 냉철하게 분석할 줄 아는지 보기 위해 출제한 것”이라며 “지원자를 괴롭히려고 낸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구직자들은 여전히 힘들다는 반응이다. 올해 처음 취업을 준비한다는 한 구직자(철학과 졸업)는 배운 거라곤 철학밖에 없고 4년 동안 학과 공부를 하느라 딱히 쌓아놓은 경험도 없는데 자소서를 열어보고 나서 갑자기 막막하더라라며 “졸업을 앞두고 그냥 나에게 맞는 회사에 들어가고 싶었을 뿐인데 이렇게 자꾸 특별한 이야기를 쓰라고 하니 너무 힘들다”라고 전했다.


양광모 경희대 취업스쿨 겸임교수는 “기업들이 정량적인 스펙을 줄이다보니 자소서 항목 같은 정성적인 요소에 집중할 수밖에 없어진 것”이라며 “앞으로도 자소서에 집중해 평가할 것이기 때문에 지원자들도 어렵겠지만 미리부터 충분히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도희 기자(tuxi0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