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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무역인턴] 일본=지진=가공식품? 조회수 : 5069



작년 겨울, 26살에 대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나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올바른 길인지에 대한 걱정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졸업반 강의인 “경력개발과 취업전략”을 듣기로 했다. 그 수업은 이미 취직한 선배들이나 교수님의 후배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매주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강의가 진행되었다.



 한 학기가 지나갈 즈음, 기말고사 대신에 주어진 과제는 자신이 미래에 가고 싶은 기업에 가상 지원서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당시 졸업반이 아니었던 나는 강의 중 알게 된 한국무역협회의 글로벌무역인턴쉽에 지원서를 쓰기로 했고 경험 삼아 작성한 이 지원서는 합격의 기쁨과 함께 학교생활 6년 만에 처음으로 대외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이 인턴쉽은 1개월간 국내교육을 받은 후 6개월간 연수생으로서 세계 각국의 기업에 파견되어 근무를 하게 되는 프로그램이다. 꼭 무역학과가 아니더라도 무역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참여 가능하기 때문에 다양한 학교, 학과의 학생들이 모이게 된다. 때문에 1개월간 무역 아카데미에서 받게 되는 국내 교육에서는 기본적인 무역수업을 받을 뿐만 아니라 서로의 경험과, 자신만의 이야기, 또는 지식 등을 발표하는 시간이 함께 주어진다. 나는 이 시간을 통하여 그들을 거울삼아 나 자신을 돌아 볼 수 있게 되었고, 내가 얼마나 좁은 세상에서 살아왔는지, 얼마나 나태했었는지 알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약 1개월 간의 교육이 끝나면 60여명의 동기들은 미국, 유럽, 남미, 아시아 등 다양한 국가로 파견된다.


내가 파견된 기업은 일본 동경에 위치하여 한식을 일본에 전파하고 있는 CJ JAPAN이다. 이곳에서는 한국인, 일본인, 그리고 재일교포가 함께 일하며 이중 약 60%가 재일교포, 20%가 일본인, 나머지 20%가 한국인이었다. 때문에 한국의 기업문화와 일본의 기업문화를 함께 경험 할 수 있었다.


회사 내에서의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도 한국어와 일본어가 함께 사용되었고 양국 언어의 비슷한 어순 때문인지 한국어와 일본어가 섞여서 사용되어도 커뮤니케이션에 아무 문제가 없는 흥미로운 광경이 연일 계속 되었다.


근무가 시작된 3월경, 공교롭게도 이 시기에는 많은 인사이동이 있어서 환영회와 송별회가 잦았다. 때문에 인턴으로서 이러한 행사를 준비하며 한국과 일본의 관습이 녹아 있는 환영회, 송별회를 경험 할 수 있었다. 이 행사는 단지 함께 모여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진행 순서에 따라 진행되는 일종의 사내 행사였고 나 또한 준비서부터 진행, 마무리 작업에 이르기 까지 직접 참여하게 되어 사진사의 역할을 맡기도 했다. 덕분에 파견된지 1주일도 채 지나기 전에 50명 남짓한 사내의 모든 분들과 인사를 하며 서로의 얼굴을 익힐 수 있었고 빠르게 회사에 적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한창 벚꽃이 만개하는데 일본의 회사들은 벚꽃이 필 시기가 되면 날을 잡아 점심시간을 활용하여 사장을 포함한 모든 직원이 함께 야외로 나와 벚꽃을 배경삼아 한 해를 시작하는 시간을 갖는다.


하지만 벚꽃이 피는 시가가 짧기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몰려있는 도쿄의 경우 좋은 자리를 얻기 위한 쟁탈전이 일어나는데 그 쟁탈전에 주역은 단연 신입사원이 된다. 신입사원은 아침부터 나와 공원의 좋은 자리를 점한 뒤 점심시간이 되기까지의 약 3시간 동안 그 자리를 지켜내야 한다. 나의 경우 인턴이지만 당시 신입사원이 없었던 관계로 그 임무를 맡아 장작 3시간 동안 공원 경비원의 눈치를 보며 자리를 지켰지만 공교롭게도 점심시간부터 비가 내리는 바람에 그날의 추억은 한장의 사진과 기나긴 기다림 뿐이었다.

 

회사에 파견 되자마자 매년 이루어지는 굵직한 사내 행사를 경험해가며 정신없이 적응의 시기를 보내던 중 사내에 많은 동아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인턴생으로 들어와 1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앞서 경험했던 행사들 덕분에 나에게도 동아리 가입의 권유가 들어왔고 망설임 없이 등산부에 가입하게 되었다. 등산부는 10명 남짓의 인원으로 이루어져 후지산을 목표로 하며 매달 도쿄 인근의 산으로 연습산행을 떠나고 있었다. 도시를 떠나 사내에서의 인간 관계뿐만 아니라 사외에서의 관계를 맺음으로서 또 다른 일본의 문화와 자연을 체험할 수 있는 하나의 소중한 창구를 만들게 되었다.


 


 이렇게 파견된 후 한 달 동안은 회사에 적응하는 시간을 보내고, 4월부터는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되었다. 내가 속한 팀은 사업기획팀으로 모든 사업의 밑바탕이 되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업무를 진행하는 팀이다. 대부분의 업무는 당사가 진출하고 있거나 새롭게 진출 하려는 시장의 아이템에서부터 경쟁기업, 시장상황 등에 대하여 분석하고 자료를 작성하여 보고하는 일이다. 또한 다양한 분야에서 선진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 시장의 제품들을 직접 맛보고 평가하기 위한 샘플 수배와 분석 또한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업무를 해나가며 거대한 일본의 가공식품시장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왜 일본에 좋은 품질의, 다양한 식품들이 존재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거대한 가공식품시장이 조성된 배경으로는 일본의 잦은 지진재해와 시장경쟁강도에 있다. 근래의 일본 가공식품 시장 동향만 보아도 동일본대지진이후 오랫동안 비축이 가능하고 손쉽게 조리하여 먹을 수 있는 가공식품의 종류와 판매량이 늘었다. 또한 일본에서는 한국 보다 다양한 가공식품의 카테고리들이 이미 다수 존재하며 각 카테고리마다 수많은 제조사들이 치열한 경쟁을 치루고 있다. 때문에 각 기업들은 새로운 식품 카테고리를 창조하여 새로운 수익창구를 만들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일본의 식품 시장에서는 세계 각국의 수 많은 음식들이 일본인에 기호에 맞게 가동되어 하루가 다르게 들오고 있으며 한식의 경우도 이러한 요인이 한류와 결합되어 일본에 거대한 붐을 일으켰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한 드레싱 회사는 이미 삼겹살 소스나, 닭갈비 소스 등을 직접 제조, 판매하고 있으며 이러한 움직임은 더욱 활발해 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의 연장선으로 일본의 외식시장에서는 다양한 시도들이 행해지고 있는데 이미 이탈리안 음식점뿐만 아니라 중식점, 태국음식점, 브라질 음식점, 인도 음식점 등 다양한 외식점들이 있고 CJ도 한식의 글로벌화를 목표로 한식전문외식점 <비비고>를 전개하고 있다.


이들은 일본의 경제적 불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그 예로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한 이탈리안 음식점을 소개하면 이 레스토랑은 세계 최고급 레스토랑의 요리사들을 스카우트하여 그들의 얼굴을 가게의 점두에 내세워 자신들이 만들 수 있는 최상의 요리를 만들라고 지시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고급 음식들은 아이러니 하게도 다른 고급 레스토랑보다 훨씬 싼 가격에 제공되는데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도쿄에 사는 일본인들의 모습을 잘 파악했기 때문이다.


그 레스토랑에 있는 대부분의 테이블에는 의자가 제공되지 않는다. 즉 서서 먹는 것이다.


도쿄에서 생활하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중 하나가 퇴근 후 회사 주변의 식당에서 선채로 맥주 한잔과 저녁을 때우는 일본인들의 모습이다. 또한 유명한 고로케를 먹기 위하여 100명 남짓의 손님들이 1시간이 넘도록 기다리는 일 또한 비재하다.


이러한 점을 파악한 이 레스토랑은 고객들에게 하나의 선택지를 제시한다. 편히 앉아서 비싼 음식을 먹을 것인가. 비싼 음식을 서서 싸게 먹을 것인가. 이렇게 과감한 시도를 한 레스토랑의 디너 테이블 회전율은 다른 레스토랑보도 약 2~3배가 높다. 때문에 맛있고 질 좋은 음식을 더욱 저렴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일본의 각 메이커들은 지리적 환경과 더불어 시장 내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언제나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며 성장해 나가고 있다. 이로인해 일본의 소비자들은 매 분기마다 새로워지는 상품의 품질과 다양성의 혜택을 누리고 있으며 나 또한 일본에서 생활하는 한 사람으로서 코앞으로 다가온 뜨거운 도쿄의 여름이 어떻게 식품시장을 달궈 줄지 기대하고 있다.


이렇게 팀 안에서 일본의 가공식품시장, 외식시장, 유통시장 등을 알아가고 이를 바탕으로 사업 기획을 제안해 나간 지 어느덧 3개월이 되어 간다. 앞으로 2~3개월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 남았지만, 이 시점에서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나의 땀과 노력이 묻은 작은 씨앗들이 내가 한국에 돌아갈 때 나의 지친 심신을 달래 줄 수 있는 열매가 되어 나를 반겨 주는 것이다.


한국무역협회의 글로벌무역인턴쉽은 나에게 크고 작은 변화를 주었다. 지원서 한 장으로 시작한 이 계기는 나에게 세계에 나갈 수 있는 티켓을 주었고, 나에게 첫 정장을 입혀주었으며, 학생으로서의 책상이 아닌 사회인의 책상을 제공함으로서 내 능력을 펼칠 수 있게 해 주었다. 남은 기간 동안 내 자신이 얼마나 변해 갈지는 알 수 없지만 변화보다 더 기대되는 것은 앞으로 밟게 될 한층 더 넓어진 나의 무대이다.  


온라인에디터 jobnj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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