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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출신 가이드 서희진씨 “원하던 일 해야 비로소 행복하다는 걸 깨달았죠” 조회수 : 71193

서희진 삼성 출신 관광통역안내사

“원하던 일 해야 비로소 행복하다는 걸 깨달았죠”





고등학교 문과생에서 전파통신공학도로, IT컨설턴트에서 다시 관광통역안내사까지. 약 10년  동안 문・이과를 몇 번이나 넘나든 서희진 씨는 얼핏 보면 이 시대가 원하는 ‘통섭형 인재’의 표본이다. 


하지만 매 순간이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수능 성적에 맞춰 공대에 입학했고 영어를 사랑했지만 취업이라는 높은 벽 앞에 IT회사를 택했다. 


그런 그가 최근 진정으로 원하는 선택을 하게 됐다.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관광통역안내사로의 첫 발을 내딛은 것이다. 덕분에 하루하루가 행복하다는 5개월 차 초보 가이드 서희진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PROFILE]

서희진

1983년생

2015년 2월 코스모진여행사 관광통역안내사

2007년 2월 삼성SDS 입사

2007년 2월 경희대학교 전파통신공학 졸업



영어가 좋았지만 IT업체 입사 “공회전하는 느낌”


“수능 때 수학과 과학 과목에서 뜻밖에 고득점을 받으면서 교차지원으로 전파통신공학과에 입학했어요. 문제는 입학 후였죠.”


첫 수업부터 고등학교 때 배우지 않았던 미・적분과 3차원 그래프가 등장했고 서씨는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그의 관심은 학과공부에서 멀어졌다. 


3학년 2학기, 부모님의 만류를 무릅쓰고 떠난 영국에서 그는 대신 영어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존칭이 없는 영어의 언어적 특성 덕에 다양한 계층의 사람과 어울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 사귀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죽었다 깨어나도 영어는 공부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6개월 뒤 돌아온 국내의 현실은 생각만큼 녹록치 않았다. 졸업이 가까워오자 다른 취업준비생들과 마찬가지로 이곳저곳에 이력서를 넣으며 문을 두드려야했다. 


“처음엔 무조건 해외업무에 지원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고작 6개월의 연수에서 배운 영어실력으로는 경쟁력이 없었죠. 당장 취업을 위해서는 전공을 살리는 길밖에 없다는 걸 깨닫고 삼성SDS에 이력서를 넣었어요.”


삼성은 당시에도 별도의 서류전형이 없어 1차 전형은 어렵지 않게 통과했다. 삼성직무적성검사(SSAT)도 참고서를 사서 대비한 효과를 봤다. 면접에서 역시 밝은 성격과 어학실력이 빛을 발한 덕에 서씨는 삼성SDS의 사원증을 목에 걸 수 있었다.


하지만 합격의 기쁨도 잠시, 입사와 동시에 주어진 ‘시스템 구축 및 운영’이라는 업무는 늘 바깥세상을 동경했던 그에게 아무런 동기부여가 되지 못했다. 특히 프로젝트 업무의 특성상 평균 1~2년 단위로 근무지를 옮겨야하다 보니 곁에서 끌어줄 선배가 없다는 점이 가장 힘들었다. 또 고객사 앞에서는 늘 당당한 모습을 보여야 했기에 모르는 문제에 부닥치면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늦은 밤까지 기다렸다가 혼자 몰래 해결책을 찾아내야 했다. 





결국 3년 8개월 만에 퇴사를 결정했다. 그리고 곧바로 모아둔 6천만원을 들고 미국 샌디에이고로 떠나 1년 동안 UCSD의 비즈니스 경영코스를 공부했다. 하지만 그를 찾는 곳은 여전히 1년 전 도망쳐 나왔던 IT업계뿐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전에 프로젝트 차 근무했던 삼성의 다른 계열사에서 역시 비슷한 제의가 들어왔고 지칠 대로 지친 서씨는 제의를 수락했다.


“일을 구했지만 조금도 기쁘지 않았어요. 자동차 엑셀을 열심히 밟는데 엔진이 계속 공회전하는 느낌이랄까요. 큰돈을 들여 미국까지 다녀왔는데도 변한 게 없다는 생각에 자책감마저 밀려왔어요. 이대로 가다간 속빈강정이 될 것 같았죠.”


그러던 어느 날, 사내 메일함으로 이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회사 심리상담사로부터 온 상담 권유 메일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무심코 넘겼을 단체 메일이었지만 마침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던 그는 바로 상담약속을 잡았다. 


“심리상담사가 1년 후에 뭘 하고 싶은지 묻기에 무심코 ‘아프리카에 가서 위기에 처한 야생동물을 구하고 싶다’고 했어요. 그러자 왜 1년 뒤냐고 다시 묻더군요. 왜 하필 아프리카인지, 야생동물인지도요. 처음엔 별 것 아닌 대화라고 생각했는데 함께 이유를 찾다보니 제 삶의 맥까지 잡혔죠. 마지막 상담 날엔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제 앞에서 웃고 있는 손님 보면 행복해요”


수차례의 상담 끝에 서씨는 마침내 ‘관광가이드’라는 답을 찾아냈다. 가이드가 되기 위해서는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이 필수라는 것을 알게 된 뒤 곧바로 두 번째 직장을 그만두고 종로 일대의 학원을 돌아다니며 자격증 관련 정보를 얻었다. 


그러다 의전관광을 전문으로 하는 코스모진여행사의 사내 학원인 코스모진아카데미를 찾았고 6개월 간 학원을 다니며 자격증을 준비했다. 


“1년에 한 번밖에 없는 시험이라 공부하는 내내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마음가짐이 달라지니 하나도 힘들지가 않더라고요. 특히 관광 국사를 배우는 동안 한국에 대한 자부심이 커졌어요. 하루빨리 진짜 가이드가 돼 외국인에게 우리 문화를 전파하고 싶었죠.”


자격증 취득 직후인 2014년 12월, 아카데미와 연계된 코스모진여행사에 한 차례의 면접을 거쳐 9명의 동기들과 함께 입사했다. 두 달 간의 교육 후 서씨는 지난 2월, 본격적으로 가이드로서의 첫 발을 내디뎠다. 


“현재 제 주 업무는 관광객 투어예요. 비즈니스로 방문하는 기업이나 정부관계자를 의전하는 VIP투어도 맡고 있죠. 보통 오전 8~9시까지 호텔로 바로 출근해 손님을 모시고 투어를 하면서 중간에 함께 점심을 먹고 이후 일정을 소화한 뒤 오후 5시쯤 호텔까지 모셔드리면 하루일과가 끝납니다. 특별히 분위기가 좋은 날에는 공식적인 후원이 종료된 후에도 함께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기도 하죠.” 


운이 좋게 입사 후 얼마 안 돼 감동적인 에피소드도 생겼다. 첫 대규모 투어에서였다. 그동안 소규모 투어만 진행했던 그에게 40명을 한꺼번에 관리하는 대규모 투어는 부담 그 자체였다. 이날은 특히 DMZ 투어였는데 외국인에게 남북 간의 관계나 북한의 실상을 자세히 설명하기란 쉽지 않았다. 


전날 스케줄을 배정받고 뜬눈으로 밤을 지샌 그는, 오가는 버스에서 그동안 공부한 모든 정보들을 최대한 성심성의껏 쏟아냈다. 그가 막 설명을 마친 직후, 갑자기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무사히 투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뒤, ‘덕분에 즐거웠다’는 장문의 감사편지도 도착해있었다. 그동안 그가 가장 목말라했던 ‘성취감’이라는 갈증이 비로소 해소된 순간이었다.  





“컴퓨터는 고맙다는 말을 못해요. 하지만 요즘은 제가 성의껏 설명을 하면 손님들이 환한 얼굴로 앞에서 웃고 계세요. 바로 피드백이 오는 거죠. 하루하루가 행복해요.”


물론 힘든 점도 있다. 매일 돌아다녀야 하는 데다 손님이 원하는 스케줄에 맞추다 보면 식사시간을 거르는 일도 허다하다. 새로운 사람과 대화를 풀어가는 일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 스케줄에 따라 급여가 주어지다보니 수입이 안정적이 않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서씨는 대신 ‘사람’을 선물 받았다고 말한다. 


“한남동의 이집트대사관에서 이집트 커피를 마시고 와인에 박식한 프랑스 손님과 카페에서 와인을 즐겨요. 마음이 맞으면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고 다음 약속을 기약하기도 하죠. 비록 몸은 한국에 있지만 매일 전세계인을 만나며 식견을 넓히고 있죠.”  


“늘 긍정적인 마음과 담대함을 가지세요. 모르는 질문을 받을 수도 있고 어려운 고객을 만날 수도 있지만 자신감 있게 대처하면 문제없어요. 또 이 일을 장기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특수 분야를 개척하는 것도 중요해요. 의료, 지리 등 전문분야를 구축한다면 더욱 보람차게 일할 수 있을 거예요.”


이도희 기자(tuxi0123@hankyung.com) 

사진 김기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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