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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공대생, 아시아나항공 파일럿이 되다! 조회수 : 80318

취업문 이렇게 뚫었어요



지난 11일 서울 강서구 오쇠동 아시아나항공 교육훈련동에서 김효진 부기장을 만났다. 김효진 부기장이 1층 로비의 모형 비행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범세 기자 



‘파일럿’이라는 단어는 멋지다. 늘 수백 명의 생명을 짊어지고 하늘을 나는 그들의 어깨도 믿음직스럽다. 그래서인지 막연히 대학시절 전공수업에, 인턴에, 토익에 치여 살던 평범한 취업준비생에게는 먼 이야기 같다. 


하지만 아니다. 아무런 자격증 없이, 그야말로 ‘제로’상태에서 파일럿이 되는 길도 있다. 바로 아시아나항공의 ‘운항인턴’ 제도다. 현재 ‘면장’이라고 불리는 조종사자격증 없이도 도전할 수 있는 곳은 국내 대형항공사와 저가항공사(LCC)를 통틀어 아시아나항공이 유일하다.


PROFILE

김효진

1981년생

2007년 한양대 교통공학과 졸업

2008년 아시아나항공 운항인턴 입사

2010년 아시아나항공 부기장 임명



“와, 저거다!” 초등학생 김효진의 입에서 탄성이 새어나왔다. 1993년 최고 46%대의 시청률을 찍으며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파일럿>은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극 중 조종훈련생인 주인공이 손님을 다 내려놓고 혼자 깜깜한 활주로를 가로지르는 장면이 나와요. 그 어둠 속에서 저 멀리 유도등 불빛이 반짝이는데, 그 빛이 마치 저를 부르는 손짓 같은 거예요. 그때부터 홀린 듯 파일럿을 꿈꾸게 됐죠.” 


그렇게 파일럿을 마음에 품었던 초등학교 5학년 김효진은 어느덧 조종간을 잡은 지 만 5년이 된 아시아나항공의 부기장으로 성장했다. 드라마의 여파로 당시 그의 반 남학생들 모두 같은 꿈을 꿨지만, 그 꿈을 정말로 실현한 사람은 그가 유일했다.


얼마 전 만난 동창들도 “개인 커뮤니티 대문에 늘 ‘파일럿’ 세 글자를 써놓더니 정말 파일럿이 됐다”며 놀라워했다. 기계를 다루던 투박한 손으로 그가 가끔 피아노 건반을 두드릴 때는 역시 드라마 <파일럿>의 OST를 듣기 위해서다. 어릴 때 이후 피아노를 놓은 지 오래인 그가 현재까지 기억하는 곡은 이 곡이 유일하다. 그야말로 ‘뼛속까지 파일럿’이었던 그의 이야기가 점점 더 궁금해졌다.


운항인턴 취소 ‘날벼락’에 매일 채용 사이트 ‘F5’


대학시절, 조종사를 꿈꾸던 그의 머릿속에는 단 두 가지뿐이었다. 체력과 영어. 시력을 관리하기 위해 절대 어두운 데서는 책을 읽지 않았다. 꾸준히 유산소운동을 해 체력도 단련했다.

 

영어회화 공부를 위해 1년을 휴학하고 캐나다로 어학연수도 떠났다. 당시만 해도 토익 스피킹이나 오픽 등 영어 말하기시험이 활성화되지 않았지만, 그는 귀국 직후 잘 알려지지도 않았던 한 말하기시험에 응시해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해뒀다.


하지만 곧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가 졸업하던 해인 2007년, 꾸준히 진행되던 아시아나항공의 운항인턴제도가 돌연 취소된 것. 자격증이 반드시 필요한 면장인턴이 아닌 별도의 자격증이 없어도 지원할 수 있는 이 제도는 국내 항공사 중 유일하게 아시아나항공에만 있는 프로그램이자 그의 하나뿐인 희망이었다. 


“할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우선 일반기업에 취업하기로 했어요. 그렇게 한 보험사의 손해사정사로 근무했는데 드라마 <파일럿>의 반짝이는 유도등이 계속 저를 괴롭히는 거예요. 1년간 근무하면서 매일 아시아나항공 채용 사이트를 방문했어요.” 그리고 이듬해인 2008년, 기적처럼 운항인턴 채용공고가 떴다. 


견장 세 줄과 함께 ‘부기장’ 타이틀을 거머쥐다


지원 동기를 특히 중요시하는 운항인턴 채용에 그의 드라마 같은 스토리는 딱 맞아떨어졌다. 미리 취득했던 영어 말하기 성적도 큰 도움이 됐다. 


당시만 해도 채용 조건에 영어 말하기에 대한 기준은 없었지만, 외국인 기장과 의사소통이나 교재 등 조종사에게 영어가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알았던 그의 선견지명 덕분에 김씨는 서류전형을 통과해 마침내 면접 응시 기회까지 얻었다. 주로 인성과 지원 동기에 관해 물었던 면접 역시 가볍게 통과했다. 


최종합격자에 선정된 그는 그룹 연수와 아시아나항공 계열사 연수를 각 한 달씩 받았다. 그 뒤 비행기는 어떤 것인지, 운항직만의 별도 교육을 맛보기로 받은 뒤 운항 관련 팀에 배치돼 한 달 동안 티켓 발권 등 항공사 내의 다양한 업무를 경험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에서의 비행교육은 주로 옆 자리에 훈련관이 동승한 상태에서 이뤄졌다. 그리고 두 달 뒤, 드디어 솔로 비행의 기회가 주어졌다. 


“하늘을 난다고 하죠. 이 말이 이렇게 정확히 들어맞을 수 있을까요? 처음으로 혼자 이륙해 착륙까지 했는데 정말 행복했어요.”


아찔한 일도 있었다. 비행 중 가끔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가 있는데, 평소대로라면 금방 걷혔을 구름이 그날따라 계속 쫓아오며 그의 비행기를 뒤덮었던 것이다.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 ‘돌아나오라!’는 교관의 외침이 그를 깨웠다. 그제야 ‘기상 위급상황에서는 기수를 돌려 빠져나오면 된다’는 책 속의 문장이 기억났다. 이론과 실제가 얼마나 다른지 확실히 느꼈던 순간이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훈련은 계속됐다. 잠시 시뮬레이터 교육을 받은 뒤 다시 미국으로 건너 가 제트기도 탔다. 그 뒤 자신의 기종에 맞는 시뮬레이터를 이용해 또 교육을 받았다. 마지막 관문은 OE(Operating Experience)였다. 기장 선배들과 함께 실제로 일본·중국 등지를 편도 60회 다녀오는 비행이었다. 그렇게 그는 드디어 세 줄짜리 견장과 함께 부기장 자격증을 손에 쥐었다.


첫 임무 ‘200명의 승객을 중국까지 안전히 모실 것!’


첫 임무는 승객 200명을 태운 중국행 비행이었다. 책임감이 어마어마했다. “떨려서 전날 잠도 못 잤겠어요”라고 묻자 그는 뜻밖에 손사래를 쳤다. 




“전혀요. 얼마나 잘 잤는데요. 조종사에게 중요한 역량 중 또 하나가 무던함이에요. 바닥에 머리만 대면 자야 돼요. 컨디션이 안 좋으면 비행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치거든요. 그래서 조종사들은 나름의 시차적응 노하우도 가지고 있죠. 어디를 가든 시계를 한국시간에 맞춰 돌려놓는 동기도 있고요.”


현재 그는 일주일에 평균 15~20시간 하늘을 난다. 부기장의 주 업무는 관제지만, 가끔 기장이 직접 조종간을 맡기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옆 자리의 기장이 되는 모습을 꿈꾸며 벅찬 마음으로 조종간을 잡는다. 


“좁은 공간에 기장님과 단 둘이 있다 보니 비행 말고도 여러 가지를 배워요. 이를테면 인생 공부 같은 거요. 짬이 날 때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죠. 치열한 조종석의 소소한 재미랄까요?”


항공사에는 남다른 복지도 있다. 저렴한 여행기회다. 아시아나항공은 기혼 직원에게 1년에 한 번 ‘선진항공’이라는 이름의 비즈니스 항공권을 제공한다. 또 일반 티켓도 세금만 내고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여러 나라를 다니니 각 나라의 문화를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크다.


주변에서는 ‘승무원을 자주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으냐’며 부러워한다. 실제로 그는 함께 비행하던 승무원과 결혼해 두 명의 자녀와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평소에 승무원과 마주치거나 이야기할 기회는 많이 없어요. 가끔 단거리를 갈 때는 현지에 도착해 잠깐 같이 밥을 먹거나 쉬기도 하는데, 그때 마침 한 승무원이 마음에 드는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 밥 한 번 먹자’고 했는데 평생 밥을 같이 먹게 됐네요. 하하하.”


앞으로 그는 어떤 파일럿이 되고 싶을까? 첫째는 안전하게 은퇴하는 것. 무사고 조종사로 명예롭게 마무리하는 게 가장 큰 목표다. 


“하지만 우선은 곧 기장이 됐을 때 후배로 들어오는 부기장에게 떳떳할 수 있고 많은 것을 알려주는 든든한 기장이 되고 싶습니다.”


이도희 기자(tuxi0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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