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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은 ‘놀이공원’, 종일 걸어도 지루할 틈 없죠”...국내 1호 ‘전통시장 도슨트’ 이희준 조회수 : 1847

△사진=김기남기자


[캠퍼스 잡앤조이=김인희 기자] “이제는 ‘내가 정의한 전문가’가 활약하는 시대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최소 1년간 직접 활동해봐야 합니다. 현장에서 보고 듣고 전문성을 쌓는 것이죠. 자신이 경험한 것을 믿는다면 두려움을 가질 이유가 없습니다”


전통시장을 소재로 사업을 시작하려 했다가 시장의 매력에 푹 빠져든 청년이 있다. ‘전통시장 도슨트’로 활동 중인 이희준(30) 씨다. 전통시장 도슨트(안내인·해설사)는 이 씨가 직접 만든 직업이다. 전통시장의 역사, 상인의 철학과 삶, 시장 상품 등에 대해 안내하는 일을 한다.


“전통시장은 ‘놀이공원’ 같은 곳이에요. 시장에 가면 하루 종일 발길이 닿는 대로 돌아다녀요. 그 지역에서 나는 특산품을 보는 것도 흥미롭고, 한 제품·업종에서만 수 십 년간 장사해온 상인들의 이야기도 재밌어요. 시장에서 삶의 터전을 꾸리며 살아온 인생스토리까지 알게 되면 전통시장 속으로 더 빠져 들죠”


직접 다녀온 전통시장만 834곳…“전통시장 도슨트, 상인들이 인정하기 시작했어요”


이 씨는 지난 2013년부터 국내 전통시장 1400여개 중 834곳을 직접 방문했다. 이 뿐만이 아니라 일본 도쿄, 영국 런던, 태국 방콕,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 해외 전통시장도 둘러봤다. 지난 2015년 7월에는 직접 탐방한 국내 전통시장 가운데 44곳을 선별해 책(‘시장이 두근두근’ 1·2권)을 펴내기도 했다. 


그는 한 시장에 최소 10번 이상을 방문해 상인들을 만난다. 그를 먼저 알아보는 상인이 있을 정도다. 또 “전통시장 도슨트를 해보고 싶다”고 말하는 상인들도 생겼다. 




처음부터상인들이 이 씨를 반겼던 것은 아니다. 이 씨는 한 상인으로부터 무려 3시간 동안 욕설을 들었던 적이 있다. 장사 아이템을 염탐해 베끼려고 시장에 왔다는 오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전통시장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다가가기 어려웠어요. 단순히 사고파는 행위를 넘어서는 상인들의 전문성, 시장의 언어가 있기 때문이죠. 상인들의 마음을 여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죠. 바로 이 점이 전통시장에 끌리는 이유였어요. 전통시장의 가치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확신 했죠”


이 씨가 전통시장을 탐방하고 기록하는 것은 단순히 책을 위한 목적이 아니다. 그는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자신만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바로 전통시장의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해 사업 플랫폼 및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현재는 전통시장 자료를 모아 데이터를 구축하는 과정으로 작업이 80%정도 완료된 상태다.


참기름 방앗간 ‘청년주유소’ 설립 1년, 점포 닫았지만 본격 사업은 이제부터


이 씨는 전국 전통시장을 다니면서 상인들로부터 가장 많이들은 말은 바로 “상인이 아니면 전통시장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지자체에서 각종 지원책을 펼쳐도 전통시장에 대한 고객들의 인식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는 전통시장을 깊이 이해하고, 시장이 침체되는 근본적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직접 상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사업아이템은 바로 ‘참기름 방앗간’이다. 



“서울 구로시장에서 처음으로 생겨난 상점은 방앗간이었다고 합니다. 대전 가양시장에 남은 점포 6개 중 5곳은 모두 방앗간이죠. 전통시장에서 방앗간은 유일하게 기름, 고추, 떡 등으로 제2차 가공품을 만드는 곳으로 생명력이 가장 긴 업종입니다. 전통시장의 중심상점, 구심점이라고 할 수 있죠.” 


이 씨는 전통시장 활성화의 시작은 방앗간을 살리는 길이라고 판단했다. 그에 따르면 서울 중구에 있는 방앗간 점포 수는 2013년 서울 중구 144곳에서 올해 75곳으로 줄었다. 참기름을 만드는 장인들이 관심 있는 청년들에게 기술을 전수해 전통을 잇고, 제품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인증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전통시장 탐방을 통해 발견한 근본적인 문제는 전통시장 판매 제품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것이었어요. 대형마트 및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제품은 ‘대기업’의 이름으로 인정을 받아 신뢰도가 형성돼있는 반면 전통시장의 제품은 그렇지가 않죠. 또 신뢰에 대한 문제보다 불편한 이미지가 강하죠”


지난해 4월 서울 구로시장에 참기름 방앗간 ‘청춘주유소’를 차렸다. 그는 청춘주유소를 열기 전에 2년간 ‘참기름 소믈리에’가 될 정도로 참기름을 연구했다. 


“참기름을 어떻게 하면 신뢰도를 높이고 수익을 낼 수 있는 지 고민했어요. 장인(평균 업력 30년 이상)이 최대 집중할 수 있는 양, 소비자들이 가장 건강한 상태의 참기름을 얻을 수 있는 양을 도출해냈죠. 참기름 30kg 착유해 33병(1병 330ml)을 생산하는 것입니다. 기존 장인들은 방앗간에서 30kg의 참기름을 착유하면 45병을 만듭니다.”


이 씨는 직접 연구한 참기름 착유 기술과 판매 방법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전국 전통시장에서 장사해온 300여명의 장인들 중 매달 10명을 선정해 직접 방문했다. 장인들은 수 십 년 간 고집해온 자신들의 방식을 쉽게 버리지 못했다. 꾸준한 설득과 대화로 변화를 이끌어냈다.   



그가 개발한 기술로 생산한 장인들의 상품은 ‘호시유’라는 이름으로 라벨링돼 판매된다. 지난 1년간 청춘주유소에서 판매된 장인들의 참기름은 5000병이 넘는다. 


그는 지난 6월 구로시장의 청춘주유소 점포를 정리했다. 돈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국의 장인들이 수익을 낼 수있는 참기름 제조법 등 콘텐츠를 나누고 싶어요. 선별된 장인들의 참기름 방앗간의 제품에 ‘청춘주유소’를 라벨링해 판매하는 사업을 계속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는 향후 전국 8도에 각 1곳씩 청춘주유소를 개점할 계획이다. 

 

최종목표는 ‘마켓사업’, 지역적 특색 상품 한 자리에  


전통시장 활성화를 꿈꾸는 이 씨의 최종 목표는 바로 ‘마켓사업’이다. 각 시장의 특산품을 다루는 대표 장인 50명, 각 업종의 롤모델들을 한 곳에 모아놓는 것이다. 


이싸는 국내 주요 전통시장을 거점으로 20명의 전통시장 기획자들과 교류모임도 주최하고 있다. 이 모임에는 각 지역 시장의 전문가나 다름없는 토박이 상인들, 전통시장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청년활동가 등이 참여한다. 


이 씨는 지난 4월부터 도시문화콘텐츠 전문기업 어반플레이의 임원으로 일하고 있다.


kih083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