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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대기업 신입사원’, 모두 저예요” 정희정 SK이노베이션 신입사원 조회수 : 9082

[욜로 라이프] 작가 겸 대기업 신입사원 정희정 씨  



정희정 

SK이노베이션 홍보팀 사원

‘호주에 건네는 인사’ 저자 


[캠퍼스 잡앤조이=강홍민 기자] “평소 ‘욜로’라는 말을 좋아해요. 제 인생이 욜로거든요.(웃음) 제가 생각하는 욜로는 책임을 질 수 있는 삶이죠. 회사원과 작가 두 가지 모두 잘 해내고 싶어요.” 


대학시절, 교환학생으로 떠난 호주에서의 기록을 엮어 쓴 책 ‘호주에 건네는 인사(출판사 이담)’의 저자 정희정(27)씨는 학창시절부터 작가를 꿈꿨다. 남들이 취업 준비로 자소서를 작성할 때 정 씨는 원고를 썼다.  



정희정 씨의 처녀작인 ‘호주에 건네는 인사’는 호주의 역사와 문화, 여행지 정보가 담겨져 있다.  



“이 책은 2012년 호주 교환학생으로 가서 쓴 책이에요. 그 당시가 진로에 대한 고민이 가장 많던 시기였는데, 우연히 현지에서 만난 친구들과 호주여행을 하면서 제가 겪은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보면 어떨까 생각했죠.”


20대 작가로 입문한 정 씨에겐 또 하나의 직업이 있다. 취업준비생이라면 누구나 가고 싶어 할 대기업의 신입사원이다. 지난해 가을 SK이노베이션 홍보팀으로 입사한 정 씨는 사회생활 경력이 1년이 채 안된 새내기다. 물론 일반적인 수순으로 보면 대학 졸업 후 취업으로 이어지는 게 당연하지만 사실 정 씨는 대학시절 내내 취업과는 거리가 멀었다. 회사원보다 작가를 꿈꿨기 때문이다. 


소녀, 작가를 꿈꾸다!

정 씨가 작가의 꿈을 꾸게 된 계기는 중학교 3학년,일본에 다녀온 기행문이 학교 사보에 실리면서부터다.


“주변 친구들이 제 여행에 대한 감흥을 흥미롭게 읽고 이것저것 오기도 했어요. 제 글이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이 있었죠. 실제로 친했던 무리 중 몇 명은 그 글을 계기로 방학 때 부모님을 졸라 일본을 다녀오기도 했고요. 글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경험을 그때 처음 했던 것 같아요."


고교시절, 성적이 상위권에도 들 정도였던 정 씨는 그때부터 ‘회사원’은 염두 해두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회사원을 하지 않고 먹고 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회사원이 되지 않고자 했던 고민 과정에는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다.

 

“어릴 적 아버지께선 매일 새벽에 출근하시고, 밤늦게 퇴근하셨어요. 감사한 마음과 동시에, 저는 좀더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현재는 회사원과 작가로서의 삶을 병행하는 생활에 만족하지만서도요.


후 호주에서 1년간 교환학생 생활을 하며 그곳 ‘애버리지니’ 원주민들의 생활상을 목격하고, 정 씨는 첫 책을 <호주에 건네는 인사>를 쓰길 결심했다. ‘민낯의 호주도 호주다!’라는 생각으로 진정한 호주를 알리는 데 일조하고픈 바람이었다.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호주 사람들은 영국계 백인들이잖아요. 그들은 자국 내 애버리지니 원주민들의 존재를 숨기고 싶어해요. 호주 밖의 사람들이 관심 가져주지 않으면 애버리지니 원주민들의 인권 문제는 해결될 방도가 없겠다고 느꼈어요.



‘회사원’과 ‘작가’의 공생관계

취업이 아닌 작가의 길을 선택한 정 씨의 결정에 부모님의 만류도 있었다. 이미 경험해본 인생 선배의 조언에서부터 단호한 강경책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정 씨의 고집은 쉽사리 꺾이지 않았다. 


그런 정 씨가 한 순간에 바뀐 계기가 있었다. 지난해 2월 첫 책을 계약한 정 씨는 대학시절 내내 계획에 없던 취업전선에 뛰어 들었다. 졸업 후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책 계약을 하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책만 쓰면서 살기 힘들다는 결론을 냈어요. 제가 유명한 작가가 아니니까 책이 많이 팔릴 리 없잖아요.(웃음) 그렇다고 방송이나 기고를 할 수준도 아니고···. 제가 하고 싶은 걸 하지만 그 일에 책임은 져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하고 싶은 글을 쓰기 위해선 돈을 벌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취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취업에 손 놓고 있었던 정 씨에게 취업의 문턱은 높았다. 지난해 상반기 공채를 실시한 기업에 지원했지만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었다. 글쓰기에는 자신 있었던 정 씨는 그동안 경험했던 일들과 자신의 목표를 잘 녹여낸 자소서로 하반기 공채를 노렸다. 그 결과 두 기업에서 최종합격 통보가 날아왔다. 


“합격한 두 군데를 놓고 고민하다 홍보팀이라는 부서도 맘에 들었고, 무엇보다 제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SK이노베이션을 선택했어요. 처음 하는 일이라 선배들에게 혼도 많이 나지만 배울 점이 많아요. 홍보팀은 보도자료를 쓰는 게 주 업무라 선배들에게 글쓰기를 많이 배우거든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글쓰기를 배우고 나서 제가 쓴 책을 보니 못 읽어주겠더라고요.(웃음) 그리고 부서 특성상 기자나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제 생각의 범위도 넓어졌어요.”





취업을 선택한 그녀의 목표는 바뀌었을까. 아직도 그녀의 꿈은 글 쓰는 사람이다. 오히려 글을 쓰기 위해 취업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그녀 특유의 부지런함 덕분에 두 번째 책도 준비 중이다. 


“작년 한 해 동안 치열하게 했던 고민을 베트남 여행으로 풀어 쓴 이야기인데요. 이 책을 통해 지금 당장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에게 ‘괜찮다’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취업이나 진로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고민의 과정은 누구나, 꼭 해야만 하는 것들이라고요. 언젠가 책에서 읽었는데 ‘상처받은 치유자(wounded healer)’라는 단어가 가슴 깊숙이 박혔어요. 나중엔 저도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치유자’가 되고 싶어요.”  


khm@hankyung.com

[사진=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