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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민기자의 시니어취업스토리] “진정한 ‘꼰대인턴’은 자세를 낮추고 먼저 인사하는 것에서 시작”…스타트업 ‘플레이시드스쿨’ 인턴 이강호 씨 2020-06-19 18:44:00.0 수정2020-06-22 11:18:31.0 조회수 : 2315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서울50+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적경제기업‘플레이시드스쿨’에취업한 이강호(63) 씨.[한경 잡앤조이=김지민 기자] 이강호(63) 씨가 근무하고 있는 ‘플레이시드스쿨’은 중장년, 경력단절여성, 탈북민, 다문화가정 등을 대상으로 민주주의와 민주시민에 대해 교육하는 사회적 기업이다.플레이시드스쿨이라는 기업명은 ‘놀이 기반 교육’이라는 의미다. 그래서교육용 보드게임을 통해 교육을 진행한다.게임은 △민주시민 △평화통일 △사회적 경제 △세계시민 분야로 나뉜다. 4가지 분야에서 세부적으로 7가지의 보드가 마련돼 있으며 총 12가지의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예를 들면 ‘가정 민주주의’ 주제의 보드게임의 경우, 빨래나 식사준비 등 일거리를 쌓아두고 분담한다. 이는 사회의 각종 문제, 특히 도시재생 문제에도 적용할 수 있다.△플레이시드스쿨의 놀이 기반 민주주의 교육 보드게임판. (사진 제공=플레이시드스쿨)이 씨는 2019년 6월부터 플레이시드스쿨과 인연을 맺었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 ‘서울50+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이 기업에 인턴으로 고용됐다. 2020년 1월 인턴 계약기간이 종료됐다가 탁월한 기획과 마케팅 능력을 인정 받아 재고용됐다. 일주일 3회 출근, 57시간 근무를 조건으로 일하고 있다.“인턴 채용 현장에서 플레이시드스쿨 대표가 저를 제일 먼저 선택했어요. 제가 원하던 곳도 환경문제, 다문화 가정 문제를 다루는 곳이었어요. 플레이시드스쿨이 가려는 방향과 맞았어요.”플레이시드스쿨의 목표는 ‘바른 민주시민 의식 고취’다. 민주주의와 관련된 부정적인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일을 하는 것이다. ‘바른 민주시민’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 묻자 이 씨는 “‘자유를 누리면서도 책임질 줄 아는 배려심 있는 시민’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꼰대인 내가 먼저’, “인사도 대화도 먼저 하는 게 인턴활동의 기본자세예요”이 씨는 이전에 유니세프에서 오랜 기간 근무한 경력이 있다. 1994년 공채 1기로 입사해 정년까지 몸담았다. 마케팅 부서에 있으면서 기금모금, CRM(고객관계관리) 마케팅, 감정마케팅 등 여러 경험을 거쳤다.“플레이시드스쿨의 기획 업무는 이전에 했던 일과 비슷해요. 처음 제가 이곳에 들어왔을 때 수입원이 부족해서 가장 먼저 채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사회적단체나 비영리단체는 특히나 비전과 미션이 뚜렷해야 한 방향으로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는데 그 부분도 부족하단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다시 대표님과 직원들과 함께 기반을 잡기 시작했어요.”방향성과 목표를 다시 재정비한 플레이시드스쿨은 2019년 서울, 인천 등지의 10개 학교와 어르신센터에서 교육을 진행했다. 지난해 경기도 화성시의 한 어르신센터에서는 ‘치매예방에 도움이 될 것 같다’며 교육을 재차 요청하기도 했다. 탈북민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도 진행했다. 이 씨는 “한 탈북민 직원이 ‘민주주의에 대해 가장 자세히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하더라고요. 중학생들은 ‘친구들에게 유식하단 소리를 들었다’, ‘학업 성적이 올랐다’며 교육에 대해 흥미를 가졌고요”라고 전했다. 그는 “게임을 통해 민주주의에 대해 제대로, 깊이 있게 배우는 거죠. 교육 후 교육생들이 ‘책임’이나 ‘배려’와 같은 단어를 쓰는데, 민주주의에 대해 정확히 알게 됐다는 생각에 보람됐어요”라고 말했다.이 씨를 제외하면 플레이시드스쿨 직원들의 평균 연령은 30세. 이 씨는 “제가 젊은 사람들 기를 다 빼놓는다”며 젊었을 때 열정을 떠올리며 재미있게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꼰대’가 먼저 나서는 것이 인턴생활을 잘할 수 있는 팁이라는 귀띔도 했다. 이 씨는인턴의 태도에 대한 4계명을 직접 만들었다. 중장년대상특강이 있으면 다음 네 가지를 예비 취업자들에게 얘기해준다고.‘꼰대인 내가 먼저’ 4계명1. 인사는 꼰대인 내가 먼저2. 대화시작은 꼰대인 내가 먼저3. 긍정적인 시각과 생각은 꼰대인 내가 먼저4. 젊은 세대에게 배운다는 마음을 꼰대인 내가 먼저‘늘 나이 많은 내가 먼저 인사하고 직장 동료에게 기분 좋은 한마디건네기’. 이 씨가 출근할 때갖는 마음가짐이기도 하다.“‘서울50+인턴십’ 프로그램 통해 ‘갭이어’ 가졌죠”이 씨가 처음 서울시50플러스재단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16년 불광 혁신파크 서부캠퍼스에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부터다. 당시 서부캠퍼스에서 운영하는 인생학교를 다녔다. 이후 2017년 중부 캠퍼스 학습지원단 모더레이터, 사진동호회, 다문화가정 지원단체 ‘아시안 허브’ 봉사활동 등을 경험했다. 2019년 6월 ‘서울50+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플레이시드 스쿨과 인연이 닿았고 올해 재고용돼 계속 근무하고 있다.서울50+인턴십은 만 45세~만 67세 서울시 거주자를 대상으로 원하는 분야의 기업 및 기관에 매칭한 후 교육과 현장 실습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교육 이수 후 3~5개월 동안 현장에서 근무할 수 있다. 인턴으로 선발된 중장년들은 새로운 분야에서 일을 배우는 동시에 이전까지 쌓아온 경험과 경력을 활용해 제2의 인생(앙코르커리어)를 개척할 수 있다.이 씨는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 ‘서울50+인턴십’ 프로그램을 ‘갭이어’에 비유했다. 갭이어는 대학 입학 전 다양한 활동을 체험해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 기간을 말한다. 이 씨는 재단이 운영하는 인턴십 프로그램 내 교육과정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를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중장년들을 대상으로 교육할 때도 ‘갭이어’를 가지라고 꼭 얘기해줘요. 다음 인생에 대해 너무 초조하게 생각하지 말고 경험하면서 생각할 시간을 스스로 갖자는 거죠. 쉽게 말해 퇴직 후 연금으로 바로 사업할 생각보다는 ‘내가 무얼 바라는지, 무얼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보는 것이 중요해요.”이 씨는 주 3회 근무시간 외에 강의나 봉사활동을 하며 즐겁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서울시50플러스재단에 있을 때 사진 동호회를 만들었어요.금요일에는 서울로7017에서 봉사활동을 해요. 사진도 찍고 외국인 관광객에게 홍보도 하고요. 서울로7017에 256개의 화초들이 있는데 물도 주고 사람들하고 얘기도 나누고요. 즐거워요.”min503@hankyung.com[사진=김기남 기자]

  • [합격 비밀노트] ′야간에는 보안업무, 오전에는 수화공부′ 포기하지 않고 꿈 이뤄낸 김지혁 수화통역사 2019-12-13 18:03:00.0 수정2020-01-02 10:25:43.0 조회수 : 9804

    [캠퍼스 잡앤조이=한종욱 인턴기자] “아직도 몇몇 분들이 청각장애인들에게 ‘귀머거리’라는 말로 비하하곤 하는데, 청각장애인들이 우리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는데 힘 보태고 싶어요.”중학교 시절부터 수화에 관심을 갖고 있던 김지혁(33)씨는 올 4월 서울시 수어통역센터지원본부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6년간 보안업체에서 근무하다 33살의 나이로 새로운 직장에 입사한 그를 만나 ‘수화통역사’ 합격 스토리를 들어봤다.[PROFILE]김지혁1987년생2013년 군산대 전자공학과 졸업2018년 12월 수화통역사 자격증 시험 합격2019년 4월 서울시 수어통역센터지원본부 입사수화통역사자격증, 봉사 동아리 ‘다솜’ 4년 활동입사한 지 얼마 안 됐다. 업무는 적응하고 있나“올 4월에 입사했으니 입사 8개월 차다. 업무에 있어 미숙한 점도 있지만 빠르게 적응 중이다. 수화와 관련된 직장을 다니다 보니 새로 배우는 것도 많고 매일 새로운 경험을 한다.”업종을 아예 바꾼 것으로 알고 있다. 적성에 안 맞았던건가“서울스퀘어 보안팀 소속으로 5년간 도·감청 업무를 맡았다. 일은 잘 맞았지만 야간근무 특성상 체력적으로 조금 힘들었다.”수화는 언제부터 관심을 갖게 됐나“어릴 적부터 수화에 관심이 있었다. 중·고교 시절 봉사활동을 통해 청각장애인 독거노인을 만났는데, 당시 수화를 못해 간단한 소통 밖에 할 수 없어 아쉬웠다. 아쉬웠던 기억이 마음에 걸려 수화를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다. 대학교에서 4년간 봉사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동아리 원들과 수화를 배웠다. 다니는 교회에서 성탄절 때 수화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여러모로 수화와 밀접한 삶을 살았다.(웃음)”수화통역사를 꿈꾼 계기가 있나“보안팀에서 3년 근무했을 때 많이 지쳤었다. 그러던 중 ‘하고 싶었던 일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말했듯 수화에 대해 꾸준한 관심이 있었고, 그 관심이 직업적으로 연결됐다. 그때부터 바로 수화통역사가 되기 위해 자격증을 준비했다.”수화통역사 자격증 공부는 어떻게 했나“근무와 공부를 병행했다. 수어도 영어·중국어 같이 ‘언어’이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질보단 양이 합격을 가른다. 근무할 때 틈나는 대로 수화 관련 교육영상도 보고 연습도 했다. 아침에 퇴근하면 서울수어전문교육원과 경기도수어교육원을 다니면서 공부를 했다. 평상시에는 길에 있는 간판, 지하철역명, 버스 정류장을 보면서 사소한 단어들을 익혔다. 주말에는 잠을 조금 줄이면서 교회에서 공부하고 청각장애인들과도 만나 수어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려 노력했다.”국가공인 수화통역사 자격증이란?국가공인 수화통역사 자격증은 수화통역사가 갖춰야 하는 필수 조건이다. 만 19세 이상의 내·외국인은 응시가 가능하다. 국가공인 수화통역사 자격증은 합격까지 2년이 소요되는 고난도 자격증이다. 1차 필기시험(한국어의 이해, 장애인복지, 청각장애인의 이해, 수화통역의 기초)은 평균 60점 이상, 각 과목당 40점 이상 득점해야 하며 ‘한국어의 이해’와 ‘수화통역의 기초’과목에서 각각 60점을 넘어야 한다.1차 필기시험을 통과해야만 2차 실기시험이 응시가 가능하다. 2차 실기시험(필기통역, 음성통역, 수화통역)도 평균 60점 이상, 각 과목당 40점 이상 득점해야 하며 ‘음성통역’은 60점 이상이어야 한다. 필기시험에서 합격하고 실기시험에서 탈락한다고 하더라도 3년 안으로 실기시험에 통과하면 자격증을 획득할 수 있다.수화통역사 시험과목1차(필기)- 한국어의 이해, 장애 복지론, 청각장애인의 이해, 수화통역의 기초 (1과목 당 25문항)2차(실기) - 필기통역: 녹화된 수화를 보고 문장으로 표현- 음성통역: 녹화된 수화를 보고 음성으로 표현- 수화통역: 녹음된 음성을 듣고 수화로 표현3차(합격 연수)- 합격자 연수 (2회에 한하여 연기 가능, 사유서를 연수7일 전에 제출해야 연기 가능)실기시험, 필기시험에서 한 번씩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좌절하진 않았나“한 번씩 떨어졌을 때 정말 힘들었다. 쪽잠을 자면서 열심히 공부했는데 탈락을 하니 허탈감이 밀려왔다. 실기·필기시험에서 한 차례씩 떨어졌는데 그때마다 의지가 꺾여 한두달 정도 방황하기도 했다.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이었기 때문에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김지혁 씨가 공부했던 책△필기시험, 실기시험 문제집통역센터가 아닌 지원센터본부로 지원한 이유가 있나“통역센터로 입사한다면 통역 업무가 주가 된다. 통역도 재밌지만 우선 업무 프로세스를 이해하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기초부터 차근차근 쌓아가기 위해 본부로 지원했다.”입사할 당시 경쟁률은 어땠나“수화통역사 시험은 합격하기 위해 2년에서 3년의 공부가 필요하다. 자격증을 취득하기가 어렵기 때문에수화통역사 직에 경쟁자는 많지 않다. 서울권에서는 통역사 직군의 경쟁률이 치열한 편은 아닌 것 같다. 경기도는 통역 인력이 포화상태라고 알고 있다.”면접 때 어떤 질문을 받았나“면접 때 긴장을 많이 해서 그런지 질문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본부는 통역업무에 비해 행정업무가 많은데 괜찮냐″는 질문을 들었다. 기초부터 쌓기 위해 지원했기 때문에 당연히 ″괜찮다″고 했다.”추가적으로 요구하는 자격증은 있나“수화통역사 자격증 외에는 없다. 한자자격증은 개인적으로 취득한 것이다.(웃음) 다만 사회복지사자격증 2급 이상을 보유하고 있으면 가산점이 있는 것으로 안다.”어떤 업무를 주로 하나“수화통역사는 주로 통역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현재 근무하는 곳이 지원본부다 보니 행정업무가 더 많다. 서울시청에서 요청하는 일반 행정안건들, 한국농아인협회와 관련된 업무를 처리한다. 수화와 관련된 행사도 진행한다. 매년 9월에서 10월 사이에 열리는 ‘수어문화제’에서 체험부스를 운영하며 수화를 가르치고 홍보한다. 물론 청각장애인들이 긴급 통역 요청을 할 때는 통역을 위해 현장으로 나가기도 한다.”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나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있나“청각장애인들에게 도움이 될 때 보람을 느낀다. 모든 수어통역사들이 그럴 것이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최근 긴급 통역업무로 경찰서를 다녀온 일이다. 가해자(청인)와 피해자(청각장애인)간 진술 차이가 있어 통역을 맡았다. 경찰서는 새삼 가보지 않았기에 기억에 남는다.”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병원으로 긴급 통역을 수행했을 때다. 청각장애인들은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아 자세하게 진찰을 받거나 자신의 병명을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통역업무를 통해 청각장애인의 불편함을 해소해주고 감사인사를 받으면 그것만큼 벅찬 순간이 없다.”앞으로의 포부가 있다면“수화통역사로서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준비 중이다. 앞으로 차근차근 수화실력을 더욱 높여 청각장애인들의 불편함을 해결해주는 통역사가 되고 싶다.”수화통역사에 도전하는 구직자들을 위해 조언 한마디 해 달라“수화를 처음 배우기 시작할 때 주위에서 ‘수화 통역 실력이 떨어진다’는 소리도 들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생각해보면 더욱 열심히 수화를 공부할 수 있었던 기폭제였다. 남들보다 똑똑하거나 끈기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누구보다 수화를 좋아했던 마음이 합격의 문을 열었다고 생각한다. 정말 힘들다면 잠시 쉬어도 괜찮다. 다만, 포기만 하지 않길 바란다.”나만의 합격 Tip수어는 눈으로 직접 보고 몸을 익혀야 하기 때문에 다른 언어를 공부하는 것보다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한다. 시간을 들이지 않고 수화 실력을 올릴 수는 없다. 한국농아방송(DBN)을 보며 수화를 따라하는 것도 팁이다. 스터디가 있다면 영상과제를 통해 한 문장씩 셀프로 촬영을 해서 스터디원들과 공유하는 것도 추천한다.jwk108@hankyung.com[사진=김기남 기자]

  • [합격 비밀노트] 유수지 집토스 공인중개사, 금융 회사 포기 후 28세에 새로운 시작… 직업 만족도 100%예요” 2019-11-05 17:21:00.0 수정2019-11-15 09:27:29.0 조회수 : 9845

    [합격 비밀노트]유수지 집토스 공인중개사[캠퍼스 잡앤조이=이도희 기자] 매달 들어오는 고정적인 급여에 부모님이 차려주시는 밥, 앞으로 좋은 남편을 만나 가정만 꾸리면 ‘금고출납직원’ 유수지 씨의 삶은 안정적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27세, 서른을 앞둔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 스타트업에서 공인중개사로 꿈을 키워가고 있다.집토스는?집토스는 2015년 7월, 집토스 1호 공인중개사에서 시작해 이듬해 1월, 주식회사 집토스 설립과 함께 본격적으로 스타트업 형태의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후 중개수수료를 임대인 또는 매도인에게만 받는 ‘중개수수료 0원’ 차별화 서비스로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서울에서 총 13개의 중개사무소 직영점을 오픈했다.[PROFILE]유수지 지점장1990년생2011년 2월 대구 영진전문대 호텔외식학과 졸업2017년 12월 공인중개사 자격증 취득2018년 1월 집토스 공인중개사 입사2019년 8월 집토스 성신여대점 지점장전공과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고등학생 때 학교선생님이 ‘어울릴 것 같다’고 추천해주신 곳이 호텔외식학과였다. 하지만 준비 없이 지원한 탓에 입학 후에야 이 일이 적성에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정적으로 현장실습 전, 유니폼을 입고 머리모양을 단정히 하는데 마치 내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실습을 포기하고 다른 진로를 찾기 위해 취업계로 졸업인증을 얻었다.졸업 후, 공인중개사 자격증 취득 전까지 공백기가 길다일자리를 찾다가 관공서에서 6개월간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그때 담당 공무원 주사님이 공인중개사를 추천해줬다. 그 길로 참고서를 구경해볼 겸 서점에 가 봤는데 책이 정말 많더라. 그냥 포기하고 도망 나왔다. 그 뒤에 이곳저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여행도 다녀오니 어느덧 25세가 됐다. 다행히집 근처인 경남 합천의 새마을금고의 출납업무채용공고가 났고서류전형과면접전형을 거쳐최종합격,새 일을 시작하게 됐다. 20대 중반에 부모님 댁에서 출퇴근 하니 돈도 많이 절약되고, 더할나위없이 안정적인직장생활이었다. 하지만 조금씩 역시나 정적인 일은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결혼하고 출산해도 행복하겠지만 조금 더 열정적인 일을 찾고 싶어졌다. 입사 2년째 되던 어느 날, 문득 다시 공인중개사가 떠올랐다.오랜 만에 시작한 공부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처음 시험을 준비할 때 신청해 둔 1년짜리 패키지 강의가 있었다. 당시 강의료만 80만원에 책값도 40만원에 육박했으니 버리는 것보다는 한번 공부라도 해 보자 마음먹었다. 내용도 생각보다 쉬웠다. 그러다 첫 시험에서 떨어졌다.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그 뒤에 정말 죽어라 공부했다.△ 유수지 지점장이 7개월 간 독파했다는 참고서△ 매일 공부해야 할 내용을 적어놓은 계획표최근 3년간 20~30대 공인중개사 합격자는 2016년 37.7%, 2017년 34.4%에 이어 2018년 40%로 꾸준히 높은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공인중개사 시험과목1차: 부동산학 개론, 민법 및 민사특별법2차: 중개사법 및 실무, 부동산공사법, 부동산세법, 부동산공법어떻게 공부했나7개월간 하루 10시간 공부하고 외출은 한 달에 두 번 정도만 했다. 매일 오전 10시에 일어나서 가장 싫어하는 ‘공법’ 강의를 들었다. 점심 먹을 때도 인터넷 강의를 틀어놓았고, 잠깐 쉬었다가 다시 4시간을 내리 강의를 들었다. 또 틈틈이 전날 공부한 내용을 복습했다. 저녁식사 후에는 모의고사를 풀었다. 공부에 익숙하지 않아서 책을 읽을 때는 ‘바를 정(正)’자를 쓰며 많게는 10번씩 읽었다. 암기가 필요한 내용은 화장실이나 책상 옆에 메모장을 붙여 외웠다. 자기 전이나 이동할 때는 강의를 음성파일로 다운 받아서 들었다.자격증을 취득했어도 중개사로서 일을 시작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앞서 말한 유럽여행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그때 만난 언니가 ‘이재윤 집토스 대표의 전월세 강의를 들었다’며 ‘이 회사에 지원해보라’며 연락을 해 왔다. 마침 막 시험에 합격해 놀기 바빴는데 전화를 끊고 집토스를 검색해봤다. 대표가 나보다 어렸지만 열정이 넘쳐 보였고 특히 서울대생이 부동산을 꾸렸다는 게 신기했다. 이런 회사에선 나도 같이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 대표님 페이스북에 CS직원 추천을 요청하는 글이 있었고 바로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2018년이면 집토스도 막 성장하고 있을 때다.그때 지점이 3개에 소속 공인중개사도 없었다. 그런데 용감하게 공인중개사를 구하는지 물었고 마침 대표님이 한 명 채용 예정이라며 바로 면접을 제안해왔다. 그리고 다음날 합격통보를 받았다. 합격 후 개인사정으로 한 달 뒤인 2018년 1월, 마침내 집토스 신대방점의 오픈멤버로 입사했다.처음 중개사로 일했을 때의 소감은 어땠나당시 중개팀 이사님과 나를 포함한 중개사 2명이 오픈매장을 꾸려나갔다. 손님을 만나는 일이 정말 재미있었다. 물론 처음이라 힘든 일도 많았다. 나이가 어린데다 많이 서툴다 보니 전화해서 욕을 하며 불평하는 손님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꼼꼼하게 계약서도 두세 번 확인하고, 옆 사람에게 크로스체크도 하면서 많이 단련했다. 간혹 저녁에도 방을 보러 오는 손님이 있어서 출퇴근 시간이 고정돼 있지 않다는 점도 어려움일 수 있는데, 일한 만큼 보상이 있기에 만족한다.보통 하루 일과는오전 10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한다. 집토스는 예약제를 기반으로 해서 거의 매일 예약이 잡혀 있다. 출근 후엔 방문할 손님이 찾는 방을 미리 보고 상담내용을 준비한다. 그리고 손님과 함께 매물 위치나 사진을 보여주고 함께 방을 보러도 간다. 예약이 없는 날은 직접 매물을 확보하기도 한다. 이렇게 매일 약 2~3명의 손님을 만난다.일반 공인중개사로서의 삶과 집토스 소속 중개사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집토스는 매물관리, 사업확장, 중개팀 이렇게 나뉘어 체계적으로 업무를 분담한다. 하지만 일반 중개사들은 이 모든 일을 다 한다. 특히 가장 좋은 점은 기본급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거래당 인센티브가 추가된다.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첫 손님이 첫 계약을 해준 일이 있다. 지방에서 온 여성 직장인 고객이었는데 정말 추운 날, 운전도 서툴러서 긴장한 탓에 같은 집을 두 번 간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손님이 ‘이 집이 운명인 것 같다’며 바로 월세계약을 해 줬다. 입사 일주일 만에 계약을 따낸 것이다. 또 첫 전세계약을 맺은 직장인 손님이 일 년 뒤 다시 찾아와 신혼집을 의뢰하기도 했다. 이럴 때 정말 뿌듯하다.공인중개사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한 마디지금 이 일에 대한 만족감은 100%다. 활동적이고 사람 만나기 좋아하는 사람에게 강력 추천한다. 대신 일을 잘 해내려면 필요한 역량도 많다. 우선 임기응변 능력이 중요하다. 온갖 요청사항에도 유연하게 잘 대처해야 한다. 생각해 보고 온다는 손님을 붙잡을 수 있는 기술도 필요하다. 이런 점을 갖추고 있는 청년들이라면 공인중개사를 적극 추천하고 싶다.tuxi0123@hankyung.com[사진=이승재 기자]

  • [청춘만찬] 민병희 강원도 교육감, “수학을 공부한 사람은 옳지 않은 것을 보면 그냥 넘어가지 못하죠” 2019-02-01 16:50:00.0 수정2019-02-01 17:45:16.0 조회수 : 10284

    △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사진=서범세 기자)[하이틴잡앤조이 1618=박인혁 기자] “수학에는 철학이 들어 있다. 수학을 공부한 사람은 옳지 않은 것을 보면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양심에 반작용이 생긴다.”민병희 강원도 교육감은 어려웠던 유년 시절을 버티고 수학교사로 교직 생활을 시작했다. 마침내 민선 교육감 3선에 성공한 그는 교육으로 청년들이 더욱 다양한 진로를 꿈꾸고 도전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말한다. 취재진이 1월 24일 강원도교육청에서 민병희 교육감을 만났다.△ 장난꾸러기였던 유년시절. 맨 왼쪽이 민병희 교육감(사진 제공=본인) 유년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하다. 어떤 학생이었는가.“6·25전쟁 정전 협정을 맺은 1953년에 태어났다. 당시에는 사회가 혼란하다 보니 나이나 호적도 뒤죽박죽인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동생과 형의 호적이 바뀐 경우도 본 적 있다. 나도 우여곡절 끝에 학교를 남들보다 이른 5살에 들어갔다. 키 순서로 번호를 매기는데 늘 5번에서 7번 사이였고 많아봤자 17번 정도였다. 고3 졸업할 즈음에야 체격이 비로소 비슷해졌다. 어려서부터 온갖 말썽을 피우는 장난꾸러기였지만 절대 남을 괴롭히는 일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계속 괴롭히는 친구가 한 명 있었다. 너무 심하게 괴롭히기에 하루는 날을 잡아서 지지 않고 대들었다. 하루 마음을 먹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옷이 찢어져 없어질 때까지 항복하지 않고 맞서 싸우니까 녀석이 그제야 먼저 그만하자고 했다. 소신과 집념을 토대로 포기하지 않고 추진하는 성격은 지금까지도 그대로다.△학교를 일찍 입학해 또래보다 작았던고등학교 재학 시절(사진 제공=본인)고등학교 시절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는가.고등학교 교복에 1학년은 First의 F, 2학년은 Second의 S, 3학년은 Third의 T 모양의 배지를 다는 규정이 있었다. 입학하고 배지를 사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2학년 올라간 선배한테 얻었다. 그런데 어느 날 다른 2학년 선배가 멀리서 깍듯이 경례했다. 그러더니 가까이 다가와서 ‘뭐야 놀랐잖아’라며 벌컥 화를 냈다. 알고 보니 배지가 닳아서 F의 가운데 한 획이 떨어지니 T처럼 보였다. 초면에 서로 민망했던 기억이 난다.수학교육과를 졸업했다. 여러 과목 중에 수학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원래 국어, 영어, 수학 중에서 수학은 중간 정도 성적이었고 가장 자신 있는 과목은 국어와 영어였다. 그런데 어느 날 주번 종례를 하고 왔는데 영어 교과서가 없어져 버렸다. 다시 사달라는 말을 집에 차마 못했는데 교과서 없이 1년이 지나고 나니 그다음부터 진도를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대학도 처음에는 법학과나 신문방송학과를 가고 싶었다. 서울에 원서를 내려고 했는데 같이 가기로 한 친구가 약속 장소인 춘천역에 나타나지 않았다. 휴대폰이 있던 시절도 아니고 혼자 가기도 찝찝해서 망설이다가 가지 않았다. 당시 강원대에 교육학부가 새로 생기면서 국영수와 체육 중에 선택할 수 있었다. 영어는 아무래도 따라가기 어려울 것 같고 국어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국어 선생님들이 수업시간에 책에다가 빈틈없이 무언가를 적어오고 시험문제 낼 때도 자필로 빼곡히 출제하던 걸 보아왔기 때문이다. 수학은 분필 하나로 모든 걸 가르칠 수 있는 명쾌한 과목이고 매력적인 학문이라는 생각에 수학교육과를 선택했다.수학의 어떤 점이 매력적인가.사실 수학은 정답이 중요한 학문이 아니다. 수학을 공부하면 논리적인 사고력과 추리력,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력이 생긴다. 그리고 수학은 문장이다. 가장 명확하고 간략하게 구성된 문장이 수학이다. 문장의 ‘그리고’를 수학에서는 콤마(,)만으로 간결하게 표현한다. 그만큼 논리적인 내용이 수학에 집약됐다는 뜻이다. 수학은 증명되지 않으면 인정하지 않는다. 옳지 않으면 그 이상 진행되지 않는다. 제대로 수학을 공부한 사람은 옳지 않은 것을 보면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양심에 반작용이 생긴다. 그래서 수학이 철학적이라고 말한다.△ 강원대학교 수학교육과 1학년 시절(사진 제공=본인)그럼에도 수학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인가.최근에는 많이 달라지고 있지만 그동안 수학 교육이 정답 맞히기에만 치중해왔기 때문이다. 미분과 적분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예를 들어 유리컵의 부피를 재야 하는데 모양이 복잡해서 잴 수가 없다. 이때 컵을 쇠그릇에 집어놓고 가루가 되도록 부수면 그게 미분이다. 그걸 주워 담아서 다른 용기에 넣고 재면 그게 적분이다. 이런 개념을 먼저 이해시켜야 하는데 그동안의 수학교육은 어려운 문제를 만들어 기계적으로 풀게 했다. 물론 처음에는 쉽지 않다. 나도 처음에는 수학교육과 선택을 후회할 정도로 공부를 따라가기 어려웠다. 유급을 거쳐 마지막 학기까지 고생한 끝에 간신히 졸업했다. 나중 수학에 심취해서 공부한 끝에야 이렇게 심오한 학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수학을 공부하며 고생했던 기억 때문에 학생들이 이해를 못 한다고 다그치거나 혼낸 적은 없다.첫 교직생활부터 3선 교육감에 이르기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나.강원대학교에서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정선여자중고등학교에 수학교사로 발령 났다. 군대 다녀와서 복직 발령받고 교사의 길을 걷다가 1989년 전교조 주동자로 해직 명령을 받았다. 4년 반을 거리의 교사로 있다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이 되면서 1993년 소양중학교로 복직했다. 그 후 몇 개 학교를 거쳐서 교육위원이 됐다. 4년 임기를 두 번 채워 8년 동안 교육위원을 했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주도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교육감에 도전했다. 주민직선제로 도민들의 선택을 받아 초대교육감으로 당선됐고 그 후 3선까지 하게 됐다.3선 교육감으로 특성화고 관련해 어떤 정책을 펼쳤는가.강원도교육청에서는 취업지원관을 2006년부터 배치하고 취업에 활용해왔다. 취업지원관은 취업하고 싶은데 적성을 모르고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모르는 학생들을 위한 전문 인력이다. 강원도교육청 본청은 물론 지역마다 취업지원관이 있다. 학생들은 취업지원관에게 상담을 신청하고 취업지원관은 우수 취업처를 발굴해 학생과 연결한다. 특성화고등학교에 대한 재정 지원도 꾸준히 지속해왔다. 강원도는 이미 6년 전부터 특성화고등학교에 진학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급식비를 포함해 돈이 전혀 들지 않는 무상 교육을 시작했다.특성화고 지원으로 좋은 결과가 나타난 구체적 사례가 궁금하다.태백기계공업고등학교의 경우 학교 리모델링도 하고 체육관도 제대로 짓는 등 그럴듯하게 투자했더니 교사와 학생이 모두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했다. 시설이 좋아진 만큼 존중받는 느낌을 받게 되니 특별한 생활지도 없이도 사건 사고가 줄어들고 학생들이 공부도 열심히 한다. 교육감으로 처음 취임했을 당시 태백기계공업고등학교 취업률이 14% 수준이었는데 취임 이후로는 매년 50% 이상을 기록했다. 홍천농업고등학교도 좋은 예다. 과거에는 많은 농업고등학교가 있었고 졸업생들이 농업은 물론이고 정치와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했다. 그런데 많은 농업고등학교가 신입생 입학이 줄어드니 이름을 ‘농생명고등학교’와 같이 바꾸면서 순수 농업고등학교는 거의 남지 않았다. 2019년 현재 순수 농업고등학교는 전국에 두 곳뿐이고 그중 하나가 1946년 개교한 강원도 홍천농고다. 2017년 홍천농고를 창조농업 선도학교로 지정하고 기숙사와 실습장을 최신 현대화 시설로 마련했다. 현재 학생들이 농사지은 농작물에 대한 홍보와 판매도 이루어지고 있다. 학생뿐 아니라 농사짓는 사람들이 와서 재교육을 받을 수 있는 농업교육의 메카로 거듭나는 것이 목표다. 앞으로 홍천농고의 변화를 통해 농업학교가 왜 중요하고 왜 필요한지에 대해 일깨우고 누구나 농업학교에 가고 싶게 만들겠다.강원도 내 마이스터고등학교에 대한 소개 부탁드린다.강원도의 마이스터고등학교는 2010년 의료기기 관련 전공으로 문을 연 원주의료고등학교와 2013년 발전설비 분야로 개교한 삼척마이스터고등학교가 있다. 원주의료고는 의료기계과 및 의료전기전자과를 개설해 매년 80% 넘는 취업률을 유지하고 있다. 산업수요 변화를 고려해 2019년부터는 지정 분야를 일부 변경해 바이오의약 분야 신입생을 두 학급 선발할 예정이다. 2013년 첫 신입생을 선발한 삼척마이스터고는 2015년부터 3년 연속 취업률 100%를 유지하고 있다. 두 마이스터고는 강원도 직업계고의 취업 선도모델 역할을 한다.2018년도에는 소방청장과 심도 있는 협의를 진행한 끝에 영월공업고등학교가 소방 분야 마이스터로 지정됐다. 2020년 4개 학급 80명 신입생을 전국 단위로 모집할 예정이다. 소방공무원은 현재 전국단위 모집을 하는데 마이스터고 설립을 계기로 강원도 학생들이 많이 합격할 것으로 예상된다.특성화고 취업률을 높이기 위한 강원도교육청만의 정책은 무엇인가.취업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현재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상이 무엇인지 파악해서 그것에 맞게 교육과정을 바꿔줘야 한다. 강원도형 마이스터학과가 대표적인 사례다. 마이스터고등학교는 교육부가 지정해야 하지만 마이스터학과는 교육감 권한으로 가능하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신기술을 필요로 하는 신산업이 등장하는데 기존에 있던 학과들은 연계되는 부분이 미흡하다. 강원도 내 학교들이 새로운 산업과 지역 요구에 맞게끔 학과를 개편하기 위해 강원도교육청에 신청하면 선정위원회를 열어서 자료를 토대로 강원도형 마이스터학과를 지정한다. 기존 학과를 지역 특성에 맞게 개편하니 일반 학과와 비교하면 마이스터학과가 2배 이상 취업률이 높다. 2017년 기준으로 직업계고 전체 평균 취업률이 36.5%인데 마이스터학과는 63.3%에 달한다.△ 강원도 특성화고 정책을 설명하는 민병희 교육감(사진=서범세 기자)특성화고에 대한 편견이 많다.학부모나 학생들이 아직도 대학은 꼭 가야한다는 생각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독일은 초등학교 4학년까지 담임선생님이 바뀌지 않는다. 아이가 어떤 분야에 적성이 있고 흥미를 느끼는지를 파악하는 기간이다. 담임선생님이 그 아이가 진학이든 취업이든 어떤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권장하면 부모는 99% 따른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다르다. 특성화고를 권장하면 부모가 왜 특성화고에 보내야 하냐고 항의한다. 학생으로서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다양한 길들이 서열화 됐기 때문이다. 1등부터 100등까지 여러 삶의 길들에 서열을 정하고 1등과 2등 사이에서 다시 서열을 나눈다. 낮은 서열로 분류된 사람들은 임금을 적게 받아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싹트면서 특성화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시작된다. 이런 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특성화고 입학을 권유하기 어렵다. 더 원론적으로 분석한다면 중소기업이 이윤을 창출하며 사업을 영위할 만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특성화고를 졸업한 학생들은 대부분 중소기업에 취직한다. 가고 싶은 중소기업을 만들어야 한다. 중소기업에서 노동인권이 보장되는 환경에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임금을 받으면 특성화고에 더욱 우수한 학생들이 오게 되고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다. 그런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밀어붙인다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중소기업이 사업을 통해 이윤을 남길 수 있게 하고 그 이윤을 오너가 독식하지 않고 구성원들이 함께 나눌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런 변화야말로 특성화고등학교를 살릴 수 있는 길이다.특성화고등학교에 대한 편견을 개선할 도 교육청 차원의 방법은 무엇인가.평가를 바꾸면 생각이 바뀐다. 강원도교육청은 초중고 교육을 바꿔서 대입제도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초등학교는 행복성장평가제, 중학교는 배움성장평가제를 시행한다. 초등학교 학생들은 일제고사를 보지 않고 가르치는 선생님이 평가하는 제도다. 초등학교의 경우 등수가 존재하지 않고 중학교도 자유학년제를 진행할 때는 성적을 매기지 않는다. 이처럼 교육 현장의 변화를 통해 조금씩 인식을 개선하고 있다. 물론 제도적으로 인문계고의 학급 수나 학급당 정원을 감축해서 직업계고 입학을 유도할 수도 있지만 학생들의 진로선택권을 제한하는 방법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취업률이 높은 학교는 신입생 경쟁률도 높고 관련 분야에 대해 학생들이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 찾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과체험이나 진로박람회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학생과 학부모들의 인식을 개선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다양한 경로가 있음을 인식시켜야 한다.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중고등학생들에게 어떤 교육이 필요할까.하고 싶은 걸 스스로 선택하게 해야 한다. 부산에 한 초등학생이 지은 ‘여덟 살의 꿈’이라는 시가 화제가 된 적 있다. ‘나는 OO초를 나와서 / 국제중을 나와서 / 민사고를 나와서 / 하버드대에 갈 거다 / 그래 그래서 나는 / 내가 하고 싶은 / 미용사가 될 거다’ 부모가 하라는 대로 하겠지만 결국 나는 미용사가 되겠다는 이야기다. 만약 부모가 아이에게 미용사가 되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아이는 미용사가 되기 위해 미용과 관련된 책도 보고 미용실에 가도 관심 있게 봤을 거다. 세계적인 헤어디자이너가 되는 것을 상상하며 영어 인터뷰를 대비해 영어 공부를 하거나 파마에 대해 심취해서 연구하다가 화학 공부를 했을 수도 있다. 꿈에 대한 응원이 동기 부여가 되고 자연스럽게 학습을 유도한다. 획일화되고 서열화된 길을 따라가기보다 다양한 길을 걸었을 때 각자를 그 분야의 승리자로 만드는 교육이 필요하다.hyuk@hankyung.com

  • [업종별 취업가이드-광고] 광고계의 꽃이라 불리는 제일기획 ‘AE′의 신입사원 합격기 2018-06-11 10:04:00.0 수정2018-06-12 09:44:19.0 조회수 : 32981

    [캠퍼스 잡앤조이 강홍민 기자] 광고인을 꿈꾼다면 한번쯤 채용공고를 눈여겨봤을법한 제일기획.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한 이 회사의 신입사원들에겐 뭔가 특별함이 묻어난다. 올 초 제일기획에 입사한 김우석, 채지은 씨를 만나 제일기획 합격 노하우를 들어봤다.김우석(남·26) 중앙대 광고홍보학 졸업(2018년)채지은(여·26) 성균관대 중어중문학 졸업(2018년)-현재 맡고 있는 직무를 소개해 달라.김우석(이하 김) : 둘 다 AE(Account Executive) 직무를 맡고 있고, 올 1월에 입사했다. AE는 클라이언트의 니즈에 맞게 솔루션을 기획하고 이를 진행하는데 필요한 사안들을 준비하는 업무를 하는 직무다. AE는 소위 광고의 꽃이라고 불리기도 한다.김 : 신입사원 교육 과정을 모두 마치고 처음 맡게 된 직무는 글로벌 AE다. 세계 곳곳에서 진행하는 클라이언트의 프로모션을 기획하고 관리하는 업무다.채 : 현재 국내 AE를 맡고 있는데, AE는 프로젝트의 전체 과정 중에서 리더가 되기도 하고 서포터나 외교관이 되기도 한다. 연극의 멀티맨과 같다고 보면 된다. 1인 다역을 할 수 있다는 점이 AE의 가장 큰 매력이라 생각한다.-광고회사에 취업한 이유가 있나.김 : 예전에 스스로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고민을 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거나 재미있어 보이는 일을 노트에 적기 시작했는데, 그때 적어놓은 일들이 전혀 연관성이 없어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봤던 TV 광고 한 편이 내 모든 고민을 해결했다. 누가 이런 광고를 만들고, TV에 집행하는 건지 궁금해졌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광고인이 되고 싶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그 이후로 꾸준히 광고업계에 관심을 갖고 준비했다.채 : 대학생 때부터 항상 재미있는 일을 찾아다니는 스타일이었다. 되돌아보니 축제기획, 박람회 기획 및 홍보, 방송 콘텐츠 제작 등 내 아이디어로 무언가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많이 했었다. 마음이 끌리는 대로 하다 보니 자연스레 광고회사에 오게 된 것 같다.-광고회사에 취업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나.김 : 대학시절, 비교적 일찍 광고업에 대해 흥미를 갖게 돼 다양한 광고 공모전에 참여하고, 방송국에서 콘텐츠 마케팅과 디지털 마케팅 직무로 인턴을 경험했다. 광고회사가 아닌 매체(방송국)에서 인턴을 한 점이 좀 특이한데 광고업계에 가기 위해서는 광고 회사에서 일을 해보는 것보다는 다른 분야의 일을 경험하는 것이 더 도움 될 것 같았다.채 : 광고전공자도 아니고 관련 동아리나 학회 경험, 공모전 지원조차 하지 않았다. 대신 광고 외에 광범위한 영역의 경험을 많이 했다. 다양한 경험을 해 본 것이 광고업의 역동성, 개방성과 맞닿아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면접 준비는 어떻게 했나.채 : 제일기획은 다대일 면접으로 내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한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스스로를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가치관과 꿈을 가지고 있는지 오랜 시간을 두고 깊이 되돌아봤고, 자연스레 나만의 스토리로 진솔한 답을 할 수 있었다.김 : 주로 광고업계 동향과 회사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다. 현재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광고업계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도 공부했다. 그리고 제일기획 홈페이지를 통해 회사가 어떤 업무를 진행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내 경험이 왜 제일기획에 필요한지 어필했다. 또 프레젠테이션 발표를 위해 기획서 작성이나 발표 연습을 하고, 간결하고 명확하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스스로 주제를 잡고 PT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면접 당시를 돌이켜 보면 지원 사유와 직무 역량에 대해서는 차분하게 설명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느낌을 전달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취업 준비 시 가장 도움 되었던 활동이 있다면 무엇인가.채 : 취업준비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많이 예민해졌다. 아침에는 자신감이 넘치다가도 저녁이 되면 우울해지는 생활이 반복됐다. 그래서 영화, 공연, 전시 관람 등 취미생활을 통해 마인드 컨트롤하려고 노력했다.김 : 인턴을 통해 업무나 조직 생활에 대해 간접적으로 경험해본 것이 큰 도움이 됐다. 학생에서 벗어나 사회인으로서 이전까지 느껴볼 수 없었던 점을 보고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짧은 기간이었기 때문에 완벽하게 업무를 배웠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간접적인 경험을 했던 것이 취업을 준비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취업 전과 후 가장 달라진 점이 있다면.김 : 크게 달라진 점은 없지만 아무래도 금전적으로 자립을 하기 때문에 경제관념이 생기게 된 것 같다. 스스로 소비 패턴을 분석해보고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려고 노력하게 됐다. 또 이전보다 여가 시간을 계획적으로 보내려고 하는 것도 학생 때와 다른 점이다. 아무래도 학생 때보다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평소 하고 싶은 것을 미리 정해놓고 계획적으로 바뀌었다.채 : 취업 전에는 제일기획 로비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면 지금은 당당히 사원증을 찍고 들어간다는 점이다.(웃음) 그리고 입사 후 단기간에 너무 멋진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인지 더욱 겸손해진 듯하다.-제일기획 합격 팁이 있다면.채 : 합격 후 면접관이었던 팀장님을 다시 뵙게 됐는데 밝고 자신감 있는 태도를 좋게 봤다고 하시더라. 면접 당시 ‘오늘 하루 재미있게 보내자’라는 마음으로 면접에 임했는데, 꼭 붙어야 된다는 조바심을 내려놓으니 더 당당하게 보였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긴장감을 이겨내는 배짱이 필요한 것 같다.김 :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각자 자기만의 독특한 스토리가 있더라. 대부분 단순한 스펙 쌓기보다는 진정 본인들이 하고 싶은 분야에서 경험을 쌓고 노력해왔던 스토리였다. 광고회사에서는 특히 다양성을 굉장히 높게 평가해주는데, 자신만의 이야기를 갖추는 것이 가장 중요한 팁이라 생각한다.-광고업계에 취업을 준비하는 취준생들에게 조언 한마디 해 달라.채 : 광고업은 정보가 많이 없고 또 광고업계 취업희망자들 중에 실력이 뛰어난사람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광고업계 취업을 준비하면서 막막한 부분도 있었지만 힘을 뺐더니 좋은 결과를 얻은 것 같다. “재미없는 정답보다는 매력적인 오답을 찾아라”는 선배의 말을 전해주고 싶다.김 :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학생이었던 내가 감히 조언을 드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정해져 있는 답은 없는 것 같다. 얼마나 진지하고 끈기 있게 자신의 일을 해왔고 그러한 경험이 광고를 하는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어필한다면 분명히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khm@hankyung.com

  • KT 공채 합격 비결은 ‘남다른 경험’ 2018-04-26 10:44:00.0 수정2018-04-26 14:29:10.0 조회수 : 18142

    전국 4개 광역시 돌며 푸드트럭 운영하기도[캠퍼스 잡앤조이=이진이 기자] KT 신입사원 이형주(26) 씨는 2017년 상반기 공채를 통해 입사해 현재 유통 채널 관리 업무를 맡고 있다.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성과를 즉각적으로 확인하는 일이 좋아 영업관리 직무를 목표로 취업준비에 돌입했다.PROFILE이형주 KT 영업관리입사일 2017년 7월출생연도 1992년생학력 동아대 철학과 졸업(2016년 8월)졸업 평점 3.65/4.5만점어학 점수 토익 935점, 토익 스피킹 6급대외활동 롯데백화점 Global Youth 4기,한국방문위원회 미소국가대표10기, 부산IN신문 기자단수상내역 롯데백화점 아이디어 공모전1위, D-CAP 특선, 부산IN신문명예기자상경력 2016년 상반기 SK텔레콤마케팅 직무 인턴영업관리 직무는 다양한 업종에 존재하지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전 세계의 연결고리가 되는 ‘통신의 힘’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는 이 씨.어떻게 하면 대리점의 수익을 발생시킬 수 있을지 컨설팅하는 일부터 크게는 대리점의 채권 흐름을 관리하는 일까지 모두 그의 손을 거친다.사소한 경험이라도 직무 역량과 연결시켜야이 씨는 KT 스타오디션을 통해 서류전형에 합격했다. KT 스타오디션은 학력, 어학성적, 자격증등 스펙을 배제하고 직무에 대한 역량과 경험,열정을 평가하는 열린채용 전형이다. 그는 SKT마케팅 인턴과 롯데백화점 대외활동 경험도 입사에 도움이 됐지만, 전국을 돌며 푸드트럭을 운영한 경험이 주효했다고 설명했다.“동생이 군대에 가기 전에 함께 자급자족 여행을 하면서 푸드트럭을 한 달간 운영했어요. ‘그날 번 돈으로 그날 먹고 잔다’는 취지였죠. 서울,대전, 대구, 부산 4개 광역시에서 장사를 하면서상권의 흐름을 체감할 수 있었어요.”마찬가지로 통신사 대리점도 오피스상권인지주거상권인지에 따라 유동 고객의 특징이 다르다는 것이다. 푸드트럭을 통해 상권 별로 고객의 입맛에 맞는 적재적소의 기획을 하는데 도움이 됐다.입사 후 포부나 직무 관련 항목을 작성할 때는 SKT 인턴 경험을 살려 실무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많이 썼다. 업종의 특성상 이슈에 대한 이해도가 역량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인턴을 하면서 부동산을 방문해 대리점이 입점할 수 있는 상권을 파악하고, 전반적인 프로세스를 익힌 게 큰 도움이 됐어요. KT 입사를 준비하면서 부산지역의 KT를 비롯해 SKT, LGU+ 대리점들을 찾아다니며 다양한 이슈들에 대해 기획서를 썼어요.”그는 손님이 매장을 방문해 상담을 받고, 매장을 나서는 전체적인 프로세스 가운데 세부적인 디테일을 어떻게 바꾸는지에 따라 매출도 큰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주요 이슈 상품을 어떤 프로세스로 녹여내는지 통신사 별로 분석해 고객에게 해당 상품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를 중점적으로 고민했다고.△지난해 하반기 KT 공채에 합격해 신입사원 입문교육을 마친 이형주(왼쪽에서 네 번째)씨.업종특성 파악, 이슈 이해는 필수인적성은 실전 모의고사 문제집 2권으로 대비했다. KT는 다른 기업의 인적성과 달리 NCS 실전판이라 불리는 직무해결능력을 평가하는 영역이 있다. 입사 후 부서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을 문제로 만들어 문제해결 능력, 직무이해도, 상황판단 능력 등을 평가한다.“KT 인적성은 직무적합도를 알아보는 유형의 문제가 있어 NCS도 함께 공부했어요. 특히 KT 인적성은 많이 푸는 것보다 한 문제라도 정확하게 푸는 게 중요해요. 수리영역의 경우 반 정도밖에 못 풀었지만, 정확성에 유의해서 풀었어요.”면접은 1차 실무면접과 2차 임원면접으로 진행됐다. 1차 면접은 직무적합성과 인성을 평가하는 면접으로 PT면접, 토론면접, 개별 기획서 작성, 심층면접 등이 5시간 동안 이어졌다. 2차 면접은 종합적인 평가를 하는 면접으로 1시간 동안 진행됐다.“평소 신문기사를 찾아보면서 KT와 관련된 최신 키워드를 뽑고, 이를 바탕으로 기획서를 작성하는 연습을 했어요. ‘이 상황에서 나는 이렇게 하겠다’는 식의 기획서를 계속 쓰다 보니 면접에서 어떤 질문을 받더라도 기획서가 생각나 깊이 있게 대답할 수 있었어요.”2차 면접은 교내 ‘리더스클럽’이라는 취업동아리를 통해 스터디를 꾸려서 준비했다는 이 씨. 동아리에서 KT 1차 면접 합격자를 모아 스터디를 구성해주고 현직에 있는 모교 선배를 매칭해줘 현직자와 함께 면접 준비를 한 게 많은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2학년 때부터 리더스 주니어로 활동하면서 선배들을 만나 어떻게 하면 좋은 회사에 입사할 수 있는지 많이 들었어요. 본격적으로 취업을 준비한 3, 4학년 때는 선배들과의 1대 1 매칭을 비롯해 태도, 목소리, 논리 있게 말하는 법 등 면접 역량을 꾸준히 길렀죠.”그는 영업관리직 지원자 대다수가 면접 전에 현장을 돌아다니지만, 현장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방법은 천차만별이라고 말했다. 같은 영업관리직이라도 어떤 환경에서 일하느냐에 따라 업무가 다르고 직무에 대한 본인의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 씨는 취업 준비 기간이 1년 6개월 정도로 길었다. 2015년 하반기 KT 최종 면접에서 고배를 마시고 많은 기업들의 면접에서 떨어져 좌절하기도 했다. 그는 한번 실패한 경험에 대해 왜 실패했고, 어떻게 하면 그런 모습을 안 보일지 고민한다면 언젠가 합격한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zinysoul@hankyung.com사진=서범세 기자, 이형주 제공

  • 이거 내 얘긴가?...취준 공감 캐릭터 ‘토끼니’ 작가 인터뷰 2017-09-14 12:48:00.0 수정2017-09-15 22:22:31.0 조회수 : 17116

    [캠퍼스 잡앤조이=이진이 기자] 내 얘기인가 싶은 ‘짤’을 양산하며 취준생 사이에서 팬덤을 자랑하는 감성 인형이 화제다. 3포 세대가 지닌 불만을 자조적으로 담아내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토끼니’가 그 주인공.지난 2월부터 취업 준비를 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를 SNS에 공개한 토끼니는 단숨에 팔로워 5만3000명을 넘어서며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강남역 인근 스터디 카페에서 토끼니를 만났다.토끼니는 미대를 졸업한 취준생이다. “저 같은 디자인 전공자 중에 자신이 다니던 미술 학원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아요. 미술 학원과 명함 가게만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취업 준비에 전념하고 있어요.”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올 상반기 40곳의 기업에 입사 지원서를 냈지만, 매번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귀하의 우수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한정된 채용인원 탓에 부득이하게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지 못해 안타깝게 생각합니다”라는 연락만 수십 통 받았다.“저는 ‘헬조선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런 말이 싫어요. 다들 취업이 어렵고 힘들다고 말하지만 얼마나 처절한지 겪어보지 않으면 몰라요. 2030 세대가 겪고 있는 상황이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취준생 입장에서 자신의 생각을 담아 어려움을 알려주고 싶었다는 토끼니. 토끼니가 만드는 한 개의 에피소드는 취준생이라면 누구나 겪어봤을 법한 상황의 사진 한 장과 제목, 자막으로 구성된다. 냉소적이면서도 주옥같은 ‘말빨’이 웃음 포인트.“사진 한 장이라도 디테일에 신경 쓰려고 무척 노력해요. 여행 콘텐츠를 올릴 땐 감정을 드러내고 싶어서 패드에 비친 눈을 하트로 표현하기도 했어요. 아무도 몰라줘서 조금 섭섭하기도 했지만요.”콘텐츠를 올리면 친구들에게서 다이렉트 메시지(DM)도 많이 받는다. “얼마 전에는 ‘커피 한잔은 밥 한 끼의 희생’이라고 콘텐츠를 올렸더니 커피 쿠폰을 보내주기도 했어요. 오히려 친구들에게 제가 위로를 많이 받는 것 같아요.”토끼니가 가장 애착하는 에피소드는 ‘바탕화면/취업준비/버스_기회_사랑.JPG’다. 일상에서 느낀 감정을 그대로 녹여내 공감과 격려의 댓글도 많이 받았다. 토끼니가 웹툰이 아닌 포토툰을 선택한 이유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서다. 또 취준생이라 시간이 없는 것도 이유다.토끼니는 취준생의 입장을 대변하는 콘텐츠가 없는 것은 자격증, 어학 시험 준비, 봉사 활동 등을 하느라 콘텐츠를 만들 시간이 없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취준생에게는 평범한 일상을 마음껏 누릴 마음에 여유조차 없다는 것이다.토끼니는 콘텐츠를 만들다 보면 반응이 좋을 때도 있고 안 좋을 때도 있지만, 본인이 하고 있는 일을 꾸준히 하라고 조언한다. 안 된다고 쉽게 포기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하다 보면 언제가 잘될 거라고 믿는다고.“지금은 당연히 취업을 빨리 하는 게 목표예요.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일자리를 많이 만든다고 하는데, 여전히 기업의 문턱이 높은 건 사실이잖아요. 취업해서 부모님께 효도도 하고 싶고, 돈도 모으고 싶고, 해외여행도 가고 싶어요.” 토끼니는 대통령이 팔로워하는 순간까지 콘텐츠를 만들 계획이다.zinysoul@hankyung.com

  • 농업에 빠진 청년들의 무일푼 세계여행기…“농촌은 기회의 땅이죠” 2017-07-03 11:43:00.0 수정2017-07-04 17:13:41.0 조회수 : 24679

    다큐멘터리 영화 의 세 주인공 유지황, 권두현, 김하석 인터뷰[캠퍼스 잡앤조이=김예나 기자] 세 명의 청년들이 공원에 앉아 ‘대기업 취업’이라 외치며 빵 한 조각을 던지니 비둘기 떼들이 우르르 모여들어 빵을 먹기 위한 쟁탈전을 벌인다. 다른 쪽에 ‘공무원’을 외치며 빵을 던지자 이번에도 마찬가지. 이 때 한 명의 청년이 ‘농사’라고 외치며 열쇠 하나를 던졌더니 모여 있던 비둘기들이 ‘푸드득’ 소리를 내며 너도나도 도망쳐 날아가기 바쁘다. 그 청년은 말한다. “이게 우리나라 취업 시장의 현실이야.”올해 서울시 공무원시험의 경쟁률은 86.2대 1,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대기업의 경쟁률은 많게는 100대 1에서 300대 1까지 치솟았다. 이를 뚫어야만 입사가 가능한 출구 없는 취업 시장에서 벗어나 경쟁률 0대 1의 농부로 태어난 청춘들이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의 세 주인공 유지황(30) 씨, 권두현(29) 씨, 김하석(29) 씨의 이야기다. 세 사람은 ‘농업’이라는 공통분모 하나만으로 무일푼 농업 세계일주 여행을 떠났다. 지난 2013년 9월부터 12개국 35곳의 농장에서 농사일을 도우며 꼬박 2년을 보낸 이야기를 담아 영화로 개봉했다.가 농업 세계 일주에서 만난 농장들은 ‘우핑(WWOOFING, 유기 농장에서 노동을 제공하는 대신 농장주로부터 숙식을 제공받는 것)’이나 땅을 젊은이들에게 임대해주는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농장경영을 실천하고 있었다.세 사람은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통해 여행 자금을 모았고, 라오스 가나안 농장 학교에서 돼지를 돌보는 일을, 인도네시아의 배우는 농장에서 유기농 농사를, 인도에서 지속 가능한 농업을 배웠다.유럽으로 떠난 이들은 전 세계에서 온 젊은 농부들과 살을 부딪치며 농업에 대한 꿈을 더욱 키웠다. 이탈리아에서는 심각한 환경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모인 젊은 이탈리아인들의 농업 커뮤니티를 통해 환경 친화적인 일상을 경험했다. 벨기에에서는 농부와 소비자들이 어우러진 지역 농장을 지원하는 개인 네트워크를 만나 ‘유통 시스템’에 대한 생각을 확장했다. 또 지구를 살리는 유기농 농법으로 운영되는 농장에서 유기농업으로 농사를 하면 땅을 무료로 빌려주는 운영방침과 철학에 큰 영감을 받기도 했다.특히 마지막 여행지인 네덜란드에서는 온 가족이 함께 운영하는 농가에서 직접 양을 기르고 양젖으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판매하며, ‘힐링’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는 농가에서 농업에 대한 아이템을 구상했다.정장을 입고 찍은 증명사진을 붙인 이력서는 한 번도 내보지 않았다는 이들. 그을린 피부와 농사 노하우로 완성한 자신들만의 ‘특별한 삽질 이력서’를 쓰고 있다는 의 주인공 유지황 씨와 권두현 씨를 직접 만났다.△파밍 보이즈의 주인공 권두현 씨(왼쪽)와 유지황 씨. 사진= 이승재 기자Q 농업 세계 일주를 다녀온 이후 2년여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어떻게들 지내고 있나요.유지황(이하 지황) 2015년 9월 한국에 돌아와 직접 농사를 지어보려고 농업기술센터와 지자체들, 농장주 등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알아보고 다녔어요. 틈틈이 강연도 하고, 사회적 경제에 대한 공부도 꾸준히 했고요. 하지만 농촌에 아무런 기반 없이 시작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우선 거주지가 문제였죠. 고민 끝에 저처럼 농사를 짓고 싶지만 기반이 없는 청년들을 위해 집을 짓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건축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서 배워보려고 건축가를 찾아갔는데, 선뜻 1000만 원을 투자해주셨어요. 농사를 짓고 싶어 하는 청년 20명을 인터뷰해 집 디자인을 완성하고 설계부터 못질, 용접까지 하나하나 직접 배웠어요. 생계비는 쉬는 날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해결했고요. 지난해 9월 진주에 드디어 ‘코부기’ 1호를 완성시켰어요. ‘코부기’는 ‘협동(coperation)’의 영어 첫 발음 ‘코’와 거북이가 합체된 말이에요. 현재는 코부기 2호를 짓고 있어요. 정부지원 사업에 선정됐고 건축 전문가도 투입됐죠. 권두현(이하 두현) 한국 돌아오자마자 본격적으로 부모님을 도와 경남 산청에서 농사를 짓고 있어요. 딸기 농사를 짓고 있는데, 작기가 끝나면 벼농사도 지어요. 처음에는 부모님과 농사 방식을 두고 갈등도 있었어요. 저는 과학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농사를 짓고 싶은데, 부모님은 평생 농사를 지어오신 분들이라 옛날 방식을 고수하시려고 했어요.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비닐하우스를 나눠 각자 농사를 지어보기로 했는데 제가 재배한 딸기의 수량이나 초세가 더 좋았어요. 이제는 부모님도 제 농사 실력을 인정해주시고 올해부턴 제가 전부 관리하고 있어요. 하반기부터는 딸기 재배하우스 5동, 모종 재배하우스 1동인 지금의 규모를 조금 더 늘릴 계획이에요. 후계농인 저는 행복한 축에 속한다고 생각해요.함께 떠났던 하석이는 생활소비자 협동조합인 I-COOP 생협에 취직해 ‘자연드림’ 매장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어요. 우리 중 유일하게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죠. 농업 세계 일주를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의 연결고리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고, 세계 일주를 하며 오랫동안 농사일을 한 경험을 살려 유기 농산품을 유통하는 회사에서 일하게 됐어요. 직장인이라 오늘 인터뷰에는 못 왔어요. 직장인이 그렇죠 뭐.(웃음)Q 저는 제 주변에서 농사를 짓겠다는 또래를 본 적이 없어요. 다들 취업만을 바라보는데, 농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지황 제가 원래 하고 싶은 게 많아요. 대학 졸업반 즈음에는 기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국제단체에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막상 봉사활동을 하고 그러다보니 저와는 안 맞더라고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뭘까 고민하다 농업 기술을 배워서 그걸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자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농자재를 배달하는 일을 했는데 농촌 마을에 가서 보니 청년이 없더라고요. 그 때 ‘이 곳이 노다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단순히 농사를 짓는 것 뿐 아니라 마케팅, 홍보 등의 활동도 필요하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일자리가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죠. 그때 하석이랑 같이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하석이도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정하지 못 하고 있었거든요. 제가 꼬셨죠. ‘앞으로는 농사가 뜰거다’. ‘무조건 이슈가 되고 기회가 생길테니 우리가 먼저 앞서 나가 길을 닦고 있자’라고 말이죠.두현 전 사실 농업에 관심이 없었어요. 어릴 때부터 농부인 부모를 보면서 ‘농사는 힘들고 고된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오히려 기계에 관심이 많아 부산에 있는 한 대학의 공대에 입학했어요. 그런데 군대를 다녀온 뒤 복학하기 전에 고향에서 농사일을 돕게 됐는데, 가끔 도시에 있는 친구들을 농장으로 초대했더니 친구들이 직접 딸기를 따고 맛보며 즐거워하더라고요. 그 뒤로 후계농이 되기로 결심했고 경상대 원예학과로 편입했어요. 대학에서 이론을 배우고 나니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농업 현장이 궁금해지더라고요. 그 길로 농업 세계 일주를 결심하고 영어를 배우기 위해 유학원을 찾았는데, 거기서 같은 목표를 가진 청년 2명을 소개받고 연락을 하게 됐어요. 실제로 만난 건 딱 한 번이었어요. 그 뒤로 필리핀에 3개월간 어학연수를 떠났는데, 하석이와 함께 호주에 있다는 지황이형의 연락을 받고 바로 날아갔어요. 딱 한 번 만나고 함께 세계 일주를 떠나게 됐다니.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인연이네요.Q 세계 일주 이야기를 해주세요. 방문할 나라와 기간, 농장은 어떻게 정했나요.지황 단순해요. 구글에 검색했어요. ‘생태 공동체’ ‘농업’ ‘농업 학교’ ‘오가닉’ ‘로컬푸드’ 같은 단어를 쳐서 검색되는 농장을 찾아갔어요. 초반에는 메일을 80군데 보냈는데 답장이 온 곳은 거의 없어요. 그 뒤론 그냥 무작정 찾아가서 비비적(?) 거렸어요. 우리는 농업을 배우고 싶으니 가르쳐 달라고 말이죠. 내쫓기기도 많이 내쫓겼어요. 어떤 곳은 ‘두 명이 잘 곳만 제공할 수 있다’고 하길래 ‘한 명은 아무데서나 자도 된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실제로 텐트를 치고 밖에서 잠도 많이 잤고요. 그런데 막상 시켜보시면 다들 저희를 엄청 좋아하셨죠. 저희가 일 하나는 끝내주게 잘 했거든요. 농장의 밀린 일을 몽땅 다 하고 사랑을 엄청 받았어요.(웃음)두현 일한 기간은 간 농장마다 모두 달랐어요. 한 달 있던 곳도 있고, 2~3일만 머무르다 떠나기도 했죠. 우리가 생각하기에 ‘이건 노동착취다’라는 생각이 들거나, 우리가 생각하는 농업의 취지와 맞지 않는 곳은 하루 만에 미련 없이 떠나기도 했어요.Q 영화를 보면 초반보다 후반에 영어 실력이 부쩍 늘었어요. 언어 문제로 어려움은 없었나요.두현 저 필리핀에서 어학연수 3개월 하고 갔다니까요.(웃음) 진짜 기본 실력만 있었는데 저희가 쓰는 말들의 패턴이 비슷하다 보니 나중에는 점점 살이 붙어 정말 영어 실력이 부쩍 늘었어요. 영화를 보면 우리가 사람들의 말을 다 알아듣는 것 같은데, 사실 못 알아들은 말이 더 많아요. 영화가 만들어진 후 번역해주신 자막을 보고나서야 ‘아 저 때 저 말이 저렇게 좋은 뜻이었어?’라고 안 것도 있어요.(웃음)지황 저희가 원래 리액션을 진짜 잘 하거든요. 영화 보면 고개 끄덕이며 다 알아듣는 것 같아요. 저희는 열심히 고개 끄덕이며 듣고 있는데 농장에 함께 머물렀던 다른 나라 친구들이 저희를 보고 엄청 웃더라고요. 저희 욕 하고 있는데 고개를 끄덕인다면서요.(웃음)두현 그런데 정말 그 분들이 마음으로 이야기해주는 부분이 있어요. 이상하게 무슨 말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마음에 확 와 닿고 감동이 느껴지고 그렇더라고요.Q 2년이란 시간을 함께 고생했어요. 세 사람의 호흡은 어땠나요두현 영화 막바지에 하석이가 네덜란드 농장에서 우쿨렐레를 연주하며 ‘스마일 어게인’이라는 자작곡을 불러요. 치열하게 싸웠던 우리 자신들에게 다시 웃자는 메시지를 보내는 거예요.(웃음) 제가 지기 싫어하는 성격에 고집도 세서 지황이형이랑 정말 많이 싸웠어요. 형도 저랑 성격이 비슷하거든요. 하석이가 가운데서 중재하느라 고생을 좀 했죠.지황 제가 욕심이 많아요. 이것 저것 하고 싶은 것도 많고요. 동생들이 잘 따라주면 좋겠는데 답답한 부분이 있더라고요. 하도 많은 걸 하려다보니 동생들이 힘들어했던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실제로 네팔에서 대판(?) 싸우고 ‘이럴 거면 다 때려쳐’하고 다 같이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지금 생각하니 아찔하네요. 한국에 와서 화해하고 다시 떠났어요.(웃음)△다큐멘터리 영화 스틸컷Q 가장 기억에 남는 농장은 어느 곳이었나요.두현 네덜란드의 사펜스트릭 농장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양을 키우고 양젖으로 아이스크림을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농장인데,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어요. 어느 날 사람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려고 모여 있는데 농장으로 차 한 대가 들어오는 거예요. 차에서 휠체어를 탄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내려 농장을 둘러보고 양들을 직접 만져보고 하더라고요. 그 농장은 정부에서 지정한 ‘케어팜’이었어요. 농장주는 자신의 시동생이 양들을 돌보며 우울증을 치료한 경험을 바탕으로 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농장으로 초대해 양들과 소통할 수 있게 돕고 있었어요. 몸이 불편한 사람이나 마음이 지친 이들이 텃밭을 가꾸고 흙을 밟으면서 건강한 삶을 되찾는 케어팜을 직접 보니 참 인상적이었죠. 농장주의 마인드에 따라 농장이 참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Q 여행을 통해 외국 농부들에게 배운 마인드는 어떤 것인가요.지황 벨기에의 ‘도메인 드 그룩스’ 농장 소유주 엘리자베스가 우리에게 ‘Pay back’라는 말을 했어요. “요즘 사람들은 가져가려고만 하고 자연은 신경도 안 쓴다. 하지만 우리는 자연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말이었죠. 그 말을 여행 내내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었고 지금도 늘 되새기고 있어요. 사람들은 언제나 돈, 돈 하면서 도시에 빈 공간이 있으면 건물을 올릴 생각만 하지, 텃밭을 만들거나 후손들에게 물려줄 생각을 하지 않아요. 도시 뿐 아니라 시골도 마찬가지예요. 우린 항상 자연에게 돌려줘야 해요. 제가 ‘코부기’를 지으며 목조 주택으로 짓고 있는 이유도 나중에 그 집을 해체했을 때 자연으로 돌아가게끔 하기 위해서예요. ‘페이 백’이란 말은 농업에 국한되는 게 아니고 우리의 일상에서도 늘 인식하고 기억해야 하는 말 같아요.두현 프랑스 사과 농장주께서 ‘농부는 항상 정직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아버지께서도 늘 하시던 말씀이었고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말인데, 가슴에 와 닿았어요. 땅이 크든 작든 건강한 밭을 만들어 달라, 땅을 해치지 말고 생명이 살 수 있는 비옥한 땅을 만들어 달라는 당부를 하셨죠. 실제 지금 농사를 지으며 그 말을 실천하려고 늘 노력합니다. 사실 농약을 전혀 안 쓰는 것은 현실적인 여건 상 힘든 부분이 있긴 해요. 하지만 제초제는 절대 사용하지 않아요. 농부로서 땅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욕심 부리지 않고 정직하고 우직하게 정성을 쏟으면, 그만큼 자라나는 식물들과 땅이 알아주는 것 같아요.지황 벨기에 공동체 농장에서 만난 다른 나라의 젊은 농부들이 한 말도 기억에 남아요. 세월호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청년들이 일상에서 정치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더라고요. 젊은이들이 관심을 갖고 무엇인가를 해야만 세상에 변한다는 말이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사회 구성원으로서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고민하라는 뜻이었죠. 그 말을 듣고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으면 청년이나 농업 정책이 생겨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Q 영화를 보면 외국에는 농사를 짓고 싶어 하는 청년들도 많고, 우핑을 하며 농업을 배우고 있는 청년들도 많아요. 그런데 우리나라 청년들은 왜 농사를 기피한다고 생각하나요.두현 너무 힘들잖아요. 단순히 육체적으로 힘든 것도 있지만 농사를 지을 여건을 마련하기도 힘들어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땅을 임대할 수는 있지만 텃밭만 있다고 농사를 지을 수 없고, 시설이 들어서야 하는데 투자비 자체가 너무 많이 들죠. 최근에는 농사를 짓겠다고 귀농하거나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고 젊은이들의 모임도 생겨나고는 있어요. 하지만 준비 과정에 시간과 돈이 많이 들고, 국가가 해주는 귀농귀촌 지원도 실질적으로 청년보다는 자식이 있거나 나이가 있는 어르신들이 우선순위다 보니 체계적으로 준비를 마친 후 시작할 수 있는 청년들이 많이 없어요. 농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 자체도 많지 않은데 열정만 가지고 시작할 수는 없잖아요. 젊은이들이 농촌에서 생활하는 것도 주민들, 특히 어른들과의 소통도 잘 돼야 하고 스타일도 맞아야 하거든요. 청년들에게 나라에서 지원금을 주기도 하는데 ‘돈을 줄테니 알아서 하라’는 것은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체계적인 지원이 있어야 해요.지황 저희가 유럽에서 본 것도 그와 같아요. 농사를 지을 기반이 마련된 땅을 임대할 뿐 아니라 숙식, 지역 사회에의 적응 등을 모두 해결할 수 있도록 하죠. 청년들이 진입하기에 힘든 부분들이 분명히 있기에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마련해주고 시작하라고 해야 할 수 있지, 지원금만 주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요. 독일은 아예 농부를 공공의 일자리로 운영해요. 농부가 되기 위해 7~8년 간 공부한 후 월급을 주며 농사를 짓게 하죠. 오랜 공부와 노력을 통해 농부가 되기 때문에 농업에 대한 철학과 사명감도 철저해요. 우리나라도 그런 의식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전 농업은 ‘1차 산업’이 아니라 ‘0차 산업’이라고 생각해요. 삶의 가장 기본이기 때문이죠. Q 농업에 대해 젊은이들이 가졌으면 하는 마음가짐은 무엇인가요.두현 농업을 위해서 포기해야 할 부분들이 많아요. 일반 직장 생활처럼 필요한 것들이 모두 갖춰진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포기할 부분을 포기해야 해요. 돈을 보고 시작한다면 매우 힘들어요. 수익은 적지만 수확할 때의 만족감, 농촌에서 즐기는 생활의 여유, 몸은 고돼도 욕심을 버릴 수 있는 마인드가 있다면 농사를 통해 삶의 질이 나아질 수도 있죠. 지황 농부는 몸을 쓰는 노동자라는 인식이 있잖아요. 몸은 많이 힘들고 수익은 많지 않죠. 돈만 생각하면 농촌 생활이 지옥 같아질 수 있어요. 고정 수입이 없기 때문이죠. 돈을 자신만의 가치나 기준점으로 둔 사람은 농사를 지을 수 없을 거예요.두현 저도 농사를 지으며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지만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목표가 있기 때문이에요. 물론 농사를 짓고 돈을 벌어서 장가도 가고, 집을 사는 것이 작은 꿈이긴 해도 그것만 생각했으면 지금까지 오기도 힘들었을 거예요. 전 농사를 통해 유럽에서 본 ‘케어팜’을 만들겠다는 확실한 목표와 저만의 기준점이 있기 때문에 몸이 힘들고 지쳐도 버틸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도전했으면 좋겠어요.Q 앞으로 두 사람의 계획은 무엇인가요.지황 ‘코부기’를 통해 청년들의 주거 문제를 해결해야죠. 현재는 청소년 자율 학기제를 활용해 청소년들이 집을 직접 설계하고 지을 수 있는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어요. 앞으로는 청년 농부가 되고 싶은 친구들을 공개적으로 모집해서 그들을 위한 집 한 채를 짓는 프로젝트도 진행할 계획이에요. 물론 그 집은 무기한 임대 조건이고요. 장기적으로는 청년들이 모여서 재밌게 일할 수 있는 청년 공동체를 만들고 싶습니다. 나중에는 ‘코부기 촌’도 만들거고,이 모든 것들을 하려면 우선 돈을 벌어야겠죠.돈에 가치를 두지 말라고 했지만, 사실 제가 이루고 싶은 농업인의 꿈을 위해서는 현실적인 부분도 고려해야 하니까요. 지금은 이상과 현실의 중간 지점을 목표로 잡고 있어요.두현 제일 우선은 딸기 농사를 잘 지어서 돈을 많이 벌고 싶어요.돈을 잘 벌고 싶은 이유는 결국 앞으로 농사를 더욱 잘 짓기 위해서 입니다.잘 키운 딸기가 가격도 잘 받을 수 있으니, 딸기의 수익성을 높이는 농사 기법도 꾸준히 공부하고 익힐 거예요. 그렇게 번 돈으로는농업 세계 일주를 다니면서 본 외국의 농장과 같은 느낌의 농장을 만들 계획입니다. 농장을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힐링’의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죠. ‘케어팜’처럼 농촌에 누구나 와서 자유롭게 어울릴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을 만들거예요. 아직 이뤄지려면 한참 멀었고이상과 꿈에 그칠 수도 있겠지만, 제 두 다리는 언제나 땅바닥에 붙어있을 겁니다.yena@hankyung.com사진= 이승재 기자

  • 이종구 케이앤컴퍼니 대표… “면접관의 선입견, 뽑히는 ‘패턴’ 을 공략하라” 2017-05-23 17:14:00.0 수정2017-05-30 16:55:00.0 조회수 : 13745

    [캠퍼스 잡앤조이=김예나 기자] “기업마다 정해진 채용 원칙은 있지만 그것은 가이드라인에 불과합니다. 면접관들도 ‘어떤 직원을 뽑아야 한다’는 명확한 답이 없기 때문에 본인들의 경험이나 선입견에 의해 사람을 뽑을 수밖에 없죠. 그렇기에 취업준비생들은 정답을 찾기보다 ‘어떤 유형의 사람들’의 ‘어떤 모습’이 면접관의 선입견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는지, 그 원리를 이해해야 합니다.”이종구 케이앤컴퍼니(KOSNEY AT HOME) 대표이사는 저서 에서 최종 면접에서 합격한 직원들의 특징을 전하며 “면접관의 선입견, 뽑히는 ‘패턴’을 공략하라”고 강조했다.이 대표는 지난 1999년 한국 최초의 라이프스타일숍 코즈니를 런칭한 후, GS리테일, SK네트웍스, 티켓몬스터 등의 임원을 거친 대기업 임원 출신 CEO다. 대기업 임원으로서 다수의 최종 면접에 참여하고, 최종 의사 결정을 통해 최종 합격자를 선택해 온 이 대표를 만나 채용 기술의 ‘ABC’가 아닌, ‘DEF’까지를 들어봤다.- 이라는 책을 낸 배경은.대부분의 취업 준비생들은 정해진 답으로 가득 찬 자기소개서와 면접 답변을 외우고 있습니다. ‘이런 질문,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대답해야 한다’는 식으로, 정답이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정답에 가까운 답변을 말할수록 합격 확률이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시중에 나와 있는 채용 관련 책과 강의 내용들도 대부분 현실감이 떨어지는 조언들입니다. ‘스토리텔링을 하라’, ‘키워드를 모아라’, ‘직무 적합성을 강조하라’ 등 틀린 내용은 하나도 없지만, 이것들은 단순히 ‘이렇게 하면 좋다’는 1차적 내용들일 뿐입니다. 이건 실제로 채용의 최종 결정을 해보지 않은, 실무전형의 담당자들이 저자이기 때문입니다.실무 담당자들은 ‘이런 사람은 뽑으면 안 된다’, ‘이런 사람을 위주로 뽑으라’는 큰 범주의 기업 채용 가이드라인에 따라 지원자들을 걸러내기만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뽑히느냐’가 아닌 ‘어떻게 통과하라’는 내용을 알려줄 수밖에 없습니다. 뽑는 것, 즉 최종 선택을 하는 면접관은 따로 있고 그들은 정해진 답이나 공식이 아닌, 자신들의 경험이나 선입견을 바탕으로 합격자를 고릅니다.그동안의 모든 커리어를 바탕으로 최종 면접에서 합격한 직원의 특징들을 생각해보니 그 사람들은 조건을 떠나 면접관들의 선입견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무언가가 있었고, 그걸 책으로 정리하게 됐습니다.- 채용 시장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요.시장의 지배 원리와 법칙이 변화하듯, 채용의 법칙도 변화합니다. 1970년대는 수요와 공급의 시대였습니다. 물건만 만들어 시장에 내놓으면 잘 팔렸죠. 1980년대는 상품의 차별화와 포지셔닝이 시작됐고, 1990년대는 소비자들이 특정 브랜드에 신뢰감, 충성도, 편안함 등의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브랜딩 전략을 썼습니다.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특정 브랜드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특정 브랜드가 아니더라도, 저렴한 가격으로 품질이 매우 좋은 물건들이 시장에 나와 있고, 또 매우 잘 팔립니다. 굳이 명품 브랜드의 가방을 들지 않더라도, 저렴한 가격의 가방을 구입해 훌륭한 코디를 완성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물건들의 품질이 상향평준화 된 거죠.채용 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1970년대에는 소위 말해 4년제 대학교만 나오면 취업하기 쉬웠습니다. 상위권과 하위권의 편차가 매우 컸기 때문에 객관적인 조건으로, 이성적인 판단으로 사람을 채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모든 취업 준비생들의 역량이 뛰어납니다. 상향평준화된 물건의 품질과 같이, 지원자들의 조건도 모두가 비슷비슷해 객관적인 조건만으로 합격자를 뽑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는 거죠. 이 때문에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면접관들은 자신의 선입견에 더욱 의지하게 되고, 이를 통한 의사결정을 합니다.- 면접관들의 ‘선입견’이란 무엇인가요.객관적인 조건과 정보, 이성적이거나 감성적인 판단이 아닌, 면접관 본인의 긴 경험을 통해 얻은 (사회・문화적으로 축적된) 것들이죠.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살아오면서 주변 환경을 통해 받은 영향들, 직·간접적인 경험들이 쌓여 선입견이 형성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의사결정을 할 때 이성적, 감성적으로 판단하는 것 외에 습관과 선입견을 갖고 판단을 합니다.특히 이 선입견이 특정한 대상이나 상황에 대해 유형화, 고착화 된 것이 ‘패턴’입니다. 우연히 마주친 이성에 대해 호감과 비호감을 결정짓는 데 걸리는 시간은 2초 이내라고 하는데, 이것이 패턴의 작용입니다. 이미 우리의 마음속엔 긍정, 부정의 패턴이 형성돼 있고, 2초란 시간은 상대에 대한 정보를 이성적, 감성적으로 판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아니라 기존에 가지고 있는 패턴에 비춰보는 데 걸리는 시간이라는 겁니다.면접관들의 최종 의사결정도 그들의 패턴이 좌우합니다. 자신에게 긍정적인 패턴을 일으키게 한 사람을 합격 시키는 거죠. 아무리 이성적, 감성적으로 완벽한 조건을 갖춘 사람이더라도, 부정적인 패턴을 일으킨다면 채용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원자들은 면접관의 패턴을 이용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채용에서 합격한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고, 왜 이런 모습들이 면접관들에게 긍정적인 패턴으로 작용했는지 그 원리를 이해하면 됩니다. 그리고 채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여러 요인을 파악하고 조심하면 됩니다.- 뽑히는 패턴, 취직의 기술은 무엇인가요.사실 회사에 꼭 필요한 용도의 지원자라면, 면접관의 패턴을 파악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지원자와 차별화된 완벽한 포지셔닝이 되어 있다면 말입니다. 예를 들면 향수 회사나 화장품 회사에 지원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 맡지 못하는 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곧바로 채용될 것입니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이 이렇게 특별한 포지셔닝을 갖기는 어렵죠. 그렇기에 면접관에게 뽑히는 패턴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가장 먼저 면접의 원리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면접관으로 참석한 임원들 사이에도 서열이 존재하고, 이때 면접관들은 가장 서열이 높은 면접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면접장은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면접관들이 일을 하는 곳이기도 하니까요.지원자들이 면접장을 나간 후 인사부장이 면접관들에게 ‘어떤 지원자가 제일 낫냐’고 질문하고, 면접관들은 한 사람의 지원자를 선택해 대답합니다. 이때 면접관들은 가장 말을 잘 한 A라는 지원자를 선택하지 않습니다. 누가 봐도 A는 면접에서 가장 돋보였지만, 그를 선택하면 본인의 식견이 좁아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면접관들은 “A보다는 B가 가능성 있어 보입니다. 왜냐하면…”이라는 설명을 하며 자신의 능력을 돋보이게 할 지원자를 선택합니다. 면접관들 사이에서도 서로 경쟁을 하고, 정치를 하는거죠. 그래서 지원자들은 면접장 내의 분위기를 보고 노골적으로 너무 잘 하거나 튀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두 번째는 회사와 사랑에 빠지라는 겁니다. 회사의 입장에서 제일 뽑고 싶은 사람이 바로 ‘두 눈에 하트가 가득한 사람’입니다. 웃고 있는 얼굴과 두 눈에 하트가 그려져 있는 것은 다릅니다. 회사에 관심이 많고 진심으로 입사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회사와 입사 후 자신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어 면접관에 눈에 반드시 들어옵니다. 단순히 면접 준비를 위해 회사에 대해 알아보고 회사의 좋은 점을 나열하는 것과는 다릅니다.세 번째는 ‘더 잘 한다’가 아니라 ‘다르게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열심히 한다’와 ‘잘 한다’는 말은 면접관들이 면접 때마다 수도 없이 듣는 말입니다. 지원자가 ‘다르게 한다’고 말하면, 면접관들은 지원자에게 ‘뭐가 다르지?’라는 궁금증을 갖게 됩니다.이와 함께 ‘이 사람은 내가 모르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도 좋습니다. 대부분의 면접관들은 젊은 세대의 지원자보다 정보 습득에 대한 한계를 느낍니다. 실무진 면접에서 어설프게 업계에 대한 정보나 실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마이너스가 될 수 있지만, 임원 면접에서는 사전 조사와 함께 업계의 정보나 실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다섯 번째는 ‘이 회사에 뼈를 묻겠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고, 여섯 번째는 ‘인격자가 돼라’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다른 사람보다 더 말을 잘하려다가 언쟁이 생긴다든지,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모습, 참을성이 없거나 성질이 있어 보이는 듯한 인상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그리고 실무진 면접에서는 업무 능력을 강조해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실무자들은 일을 잘하는 사람보다 궂을 일을 도맡아 하거나 참을성이 있고 믿을만한 후배 직원을 뽑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서류전형에서의 팁은 무엇일까요.서류전형의 최종 목적은 탈락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면접을 보고 지원자를 만나고 싶게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이력서는 서울대, 포트폴리오는 예체능처럼 만들라’고 말합니다. 회사가 제시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의 형식을 마음대로 바꾸는 것은 금물입니다. 정석대로 해야 합니다. 하지만 포트폴리오는 예체능 전공자처럼 다양하게 만드는 것이 좋습니다. 포트폴리오를 제출하라는 이야기가 없더라도, 무조건 만드는 것이 좋습니다. 서류를 평가하는 실무자는 포트폴리오를 임원에게 보여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